[Cover Story] 美 건보 개혁이 100년이나 걸린 사연은…
지난 2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의 이스트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100년 동안 논란을 불러왔던 건강보험(건보) 개혁법안에 서명했다.

11개의 철자로 이뤄진 자신의 성과 이름(Barack Obama)을 쓰는데 사용한 펜은 무려 22개.

철자 하나에 2개의 펜을 이용한 것이다. 서명 시간도 1분30초에 달했다.

백악관 측은 이처럼 많은 펜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건보 개혁법안을 만드는데 기여한 사람들에게 대통령이 서명한 펜을 기념품으로 소장하도록 선물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건보 개혁법안이 이날 오바마 대통령의 서명과 동시에 효력을 발휘함에 따라 미국에서 사실상 전국민 건강보험(Universal Health Plan · 보편적 건강보험) 시대가 열리게 됐다.

2007년5월 대선후보 자격으로 건보 개혁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때로부터 2년10개월, 1912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전국민 의료보험 도입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던 시점으로부터 따지면 거의 100년 만이다. 앞서 미 연방하원은 지난해 12월 연방상원에서 통과된 건보 개혁법안을 21일 밤 원안대로 표결에 부쳐 찬성 219,반대 212의 근소한 차이로 통과시켰다.

건보 개혁법안은 향후 10년간 9400억달러의 재정을 투입해 3200만명에게 보험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전 국민의 건강보험 수혜율을 현행 83%에서 2019년까지 95% 수준으로 높이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건보 개혁이 시행되면 현재 540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무보험자는 2200만~2300만명 정도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건보 개혁법안에는 지난해 11월 하원을 1차 통과했던 건보개혁안에 포함됐던 정부 주도의 공공보험(public option) 도입 방안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게 전 국민이 의무적으로 가입토록 하는 공적보험을 시행하고 있는 한국과 다른 점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건보 개혁에 향후 첫 10년간 9400억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자금은 고액소득자들에 대한 세금 부과(소위 '캐딜락 플랜')와 건보 혜택을 받는 고령층에 매기는 '메디케어 세금' 인상 등을 통해 마련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번 건보 개혁법안에 대해 야당인 공화당이 강력 반대하고 있어 격렬한 정치적 공방이 예상된다.

공화당은 건보 개혁법이 국민 세금 부담을 가중시키고 노인에 대한 건보 지원을 축소하고 있다며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이 법을 철회시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플로리다,앨라배마 등 14개주 검찰총장들은 건보 개혁법이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에 위배된다며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뉴욕타임스(NYT)가 "오바마의 위험한 승리"라고 지적한 배경이다. 적지 않은 미국인들은 자신의 의료보험은 자신이 내는 돈으로 스스로 챙겨야지 국가가 나서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유럽에서 구교의 탄압을 피해 신대륙으로 건너온 신교도(청교도)들이 세운 나라다.

자유를 중시하고 정부 간섭을 싫어한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해리 트루먼, 린든 존슨, 빌 클린턴 등 역대 대통령이 건보 개혁을 추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