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재분배 효과 vs 평등주의 함정·도덕적 해이
[Cover Story] 소득 따라 보험료가 다르네! 공적 의료보험 藥인가 毒인가
질병이 나고 다쳐서 병원에 갈 때 의료비 부담이 만만찮다. 그래서 필요한 게 의료보험이다.

미리 일정한 돈을 의료보험료로 적립해 아플 때에 대비하는 것이다.

의료보험은 운영 주체에 따라 공적 의료보험과 민간 의료보험으로 나뉜다.

정부가 주도하는 공적 의료보험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시행된다.

소득의 일정 비율을 보험료로 내기 때문에 소득이 높을수록 많은 의료보험료를 내지만 의료 서비스는 똑같이 받게 된다.

민간 의료보험은 자신이 내는 보험료에 따라 원하는 수준의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소득이 낮은 사람들은 의료보험에서 소외되는 부작용이 있다.

각각의 특성과 장·단점을 더 자세히 알아보자.

⊙ 공적 의료보험, 소득재분배 효과

공적 의료보험은 정부가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의료보험제도를 운영하는 것이다.

국민이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를 보편적으로 누릴 수 있도록 정부가 사회보장제도의 하나로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이 여기에 해당한다.

공적 의료보험에선 소득에 따라 의료보험료가 다르다. 이를 가리켜 '소득비례 의료보험료'라고 한다.

우리나라 직장인의 경우 의료보험료율(월급여에서 의료보험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5.33%이고, 이 가운데 절반은 회사가, 절반은 본인이 낸다.

소득이 많을수록 높은 세율을 적용받는 누진세와는 달리 단일 요율이기는 하지만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의보료도 더 많이 낸다.

소득이 없거나 매우 적은 사람은 의료보험료를 면제받기도 한다.

그래서 공적 의료보험은 소득재분배 효과가 있다고 한다. 부유한 사람이 낸 돈으로 가난한 사람까지 보험 혜택을 누리기 때문이다.

영국과 북유럽 국가들은 한발 더 나아가 '의료비 걱정 없는 사회'를 추구하고 있다.

세금을 기반으로 전 국민에게 무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평소에 의료보험료를 한푼도 내지 않아도 아프면 병원에 가서 공짜로 치료 받는다.

⊙ 평등주의 함정과 도덕적 해이는 문제점

그렇다고 영국의 의료 제도에 좋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영국에선 웬만한 질병으로는 의사를 만나기조차 쉽지 않다. 의료비 부담이 없기 때문에 병원에 가려는 사람은 많지만, 문제는 의사가 부족한 것이다.

힘들게 의학을 공부해서 의사가 되더라도 국가가 운영하는 의보체계에서 많은 돈을 벌기 어렵기 때문에 의사가 되려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의사가 된 사람도 의사 소득이 높은 다른 나라로 이민 가버리는 사람이 많고 그래서 인도 등 과거 식민지였던 영어권 의사들이 이민을 와서 병원을 차지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 때문에 환자들은 오랜시간을 기다려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

'평등주의 함정'에 빠져 의료서비스의 질이 하향 평준화되는 것이다.

공적 의료보험엔 '도덕적 해이'와 같은 단점도 있다.

어차피 본인이 부담하는 의료보험료는 정해져 있으니, '의료 쇼핑' 등 불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받는 일이 빈번하다. 이는 건강보험 재정이 부실해지는 원인이다.

일부 병원도 건강보험 재정 부실을 키우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행위별 수가제'를 택하고 있다.

환자가 병원에 입원하면, 진찰 검사 수술 주사 투약 등 각종 진료행위가 이뤄진다.

병원은 행위별로 정해진 돈을 정부로부터 받는다. 그래서 청구금액을 부풀리기 위한 과잉 진료가 적지않게 벌어진다.

⊙ 민간 의료보험, 돈 많이 낼수록 양질의 의료서비스 가능

의료보장은 정부가 아닌 개인의 선택과 책임에 따라야 한다는 게 민간 의료보험의 논리다.

각자가 원하는 의료서비스의 수준을 골라 거기에 맞는 의료보험료를 내자는 것이다.

공적 의료보험에서처럼 평등주의 함정이나 도덕적 해이가 설 자리는 아예 없다.

오히려 의료분야에서도 시장경제 원리를 활발하게 작동시켜 의료서비스의 질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다.

물론 저소득층이 의료 서비스를 받기 어려워진다는 문제가 남는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발달한 미국에선 전 국민을 상대로 한 공적 의료보험이 아직 시행되지 않고 있다.

대신 노인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메디케어(Medicare)와 저소득층을 위한 메디케이드(Medicaid)가 운영되고 있다.

장경영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longr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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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건강보험은…

고령화·건강중시 풍조로 의료비 느는데 돈 낼 사람은 줄어

우리나라 의료보험은 1977년 7월1일 50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부터 시작됐다.

앞서 1963년 사회보장제도의 하나로 의료보험법이 제정됐지만,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못해 실제 시행은 지연됐다.

그러다 경제성장에 불이 붙으면서 자신감이 생긴 정부는 국가 보조의 부담이 덜한 대기업부터 의료보험을 실시했다.

이어 1979년 초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직원의 의료보험이 시작됐다.

같은 해 7월엔 300인 이상 사업장,1981년 초엔 100인 이상 사업장으로 의료보험 가입 대상이 확대됐다.

의료보험은 1980년대 후반 중요한 변곡점을 맞는다.

1988년 농어촌지역의료보험이 시작된 데 이어 1989년 7월1일 도시지역의료보험 실시로 전 국민 의료보험이 실현된 것이다.

의료보험 첫 실시 후 모든 국민으로 대상자가 확대되는 데 12년이 걸렸다. 독일(127년)과 일본(36년)에 비하면 놀라운 기록이다.

경제를 압축성장한 것처럼 의료보험도 짧은 기간에 온 국민을 대상자에 포함시킨 것이다.

11년 뒤인 2000년 7월1일엔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과 직장의료보험조합이 통합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출범했다.

이로써 의료보험이 사회보장제도로서 제도적 틀을 완벽하게 갖췄다.

노인 인구가 많은 시골마을 지역의료보험과 젊고 건강한 사원들이 대다수인 대기업 직장의료보험조합이 한지붕 아래 모였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질병 치료에 초첨을 맞춘 '의료보험' 대신 병에 걸리기 전 예방 강화까지 포함한 '건강보험'이란 용어를 쓰기 시작한 것도 특징이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인구고령화와 저출산으로 보험료 납부 여력이 줄어 위기를 맞고 있다.

인구고령화에다 건강 중시 풍조가 심화되면서 의료 수요가 커져 의료비 지출이 늘고 있다.

하지만 보험료를 낼 수 있는 인구는 갈수록 감소하는 추세다.

실제로 지난해 보험료 수입 증가율은 6.5%였고, 보험료 지출 증가율은 13.4%에 달했다. 증가율에서 지출이 수입의 2배가 넘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