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화폐 주조를 독점하고 중앙은행 만들어 이익 누려
[Cover Story] 누구나 화폐를 발행하고 중앙은행이 필요없던 때도 있었다
오늘날 모든 정부는 화폐 주조를 독점하고, 정부의 통제를 받는 중앙은행만이 화폐를 발행한다.

그러나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화폐를 누구나 자유롭게 주조할 수 있는 시대가 있었고 중앙은행 없이 은행들이 자유롭게 화폐를 발행하고 자율조직을 통해 현재 중앙은행이 하고 있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정부가 왜 화폐주조를 독점했고 어떻게 중앙은행이 탄생했는지 그 역사를 되짚어 보자.

주조라는 말도 금속 화폐 시절의 말이다. 지금은 그냥 지폐를 찍는 것이지만 과거의 전통 탓에 주조라는 말을 그대로 쓴다.

⊙ 정부의 화폐주조 독점

아주 오랜 과거에는 조개나 곡물 등이 화폐 역할을 했다.

이후 내구성 휴대성 분할성 등이 뛰어난 금과 은이 그 역할을 했고 이게 귀금속 화폐다. 금속 화폐의 진화된 형태가 주화다.

귀금속을 직접 교환의 매개체로 쓸 경우 매번 금속의 무게를 측정하고 순도를 평가해야 했다.

그래서 금속의 무게를 측정하고 순도를 평가해 사용하기 편리한 크기와 모양을 만들어 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 생겨났다.

이런 업무는 이윤이 커서 많은 사람이 진입해 경쟁이 치열했다.

주화 주조자들은 순도와 무게를 속이면 쉽게 발각돼 신뢰와 명성을 잃어 영업에 지장을 받고 자연스럽게 퇴출되기도 했다.

정부가 화폐제도에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주화 단계다.

주화를 만드는 것이 이윤이 나고 명성이 날 수 있는 것임을 인식한 정치 권력자가 화폐 주조를 몰수해 국가독점으로 만들었다.

화폐주조권을 몰수한 정부는 일반주조업자가 만든 주화의 사용을 금지하고 정부가 주조한 주화만 사용하게 했다.

유럽의 중세 영주나 근대 국가의 사례를 보면 정부는 재원이 필요할 때 발행한 금화(또는 은화)를 다시 거둬들여 모양을 바꾸고 크기와 무게를 줄이고 구리 등 값싼 금속을 섞어 변조한 다음,기존의 것과 동일한 무게와 순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표시하고 문양을 넣은 새로운 주화를 만들어 공급했다.

인쇄기가 발명된 후에는 화폐 변조가 훨씬 더 쉬워졌다. 정부는 심지어 종이조차 화폐라고 선언할 수 있었다.

정부가 돈이 필요할 때(전쟁이 대표적인 경우다) 세금을 올리면 국민들의 저항이 심하고 폭동이 일어나기도 하기 때문에 국민들의 저항을 피하면서 수입을 얻는 방법으로 화폐를 변조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했다.

⊙ 은행의 발달

화폐제도 발전의 다음 단계는 상업은행들의 발달이다.

경제규모가 커짐에 따라 주화를 사용하는 거래비용이 커졌다.

금과 은 또는 금화 은화와 같은 주화를 보관하는 비용과 거래의 지급을 위해 운반하는 비용이 컸던 것이다.

상인과 부자들이 안전하게 금괴나 금화를 보관할 필요성을 느껴 금 장인(gold smiths)에게 보관료를 내고 금괴와 금화를 맡겼다.

대신 금 장인으로부터 맡긴 금괴나 금화에 대한 보관증을 받았다. 어음 중개상,환전상,대금업자 등도 당시 그런 역할을 했다.

두 사람이 물건을 사고팔 경우 물건을 산 사람이 판 사람에게 보관증을 건네주면 판 사람은 보관증을 갖고 있다가 필요할 때 금 장인에게 찾아가 금괴를 받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맡긴 금이나 은에 대해 한 장의 보관증을 써 준 것이 아니라 액면을 달리한 여러 가지 보증서를 만들어 맡긴 금이나 은의 해당 가치만큼 소액보증서와 고액보증서를 섞어줬다.

이런 보관증이 나중에 은행권으로 발전한다.

금 장인들은 일정 기간 동안 예금된 금과 금화의 일부만이 인출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예금의 일부를 대출해줄 수 있고 고객이 인출할 때 그 의무를 이행할 수 없는 위험이 적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대출활동으로 그들은 더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금 장인들은 은행가로 변모했고 예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이자를 주는 등 서로 경쟁했다.

은행들이 발행하는 은행권과 예금증서는 정부 주화보다 많이 사용됐다.

정부는 화폐를 변조하는 방법으로 재정을 확보했고 변조를 거칠 수록 정부의 주조화폐는 점점 실제 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이 은행권(화폐)을 독점하기까지 자유롭게 은행권이 발행된 역사적 경험을 한 나라는 약 60개국이다.

⊙ 결제소의 발달

그 다음 나온 게 결제소다.

처음에 은행들은 다른 은행들의 은행권을 서로 받지 않았다.

그러나 두 은행이 제휴해 다른 은행권을 서로 받아주자 두 은행의 은행권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더 편리해졌고 더 많은 사람들이 두 은행권을 사용했다.

그렇게 은행들 간 제휴가 늘어났고 결국 많은 은행이 여기에 동참해 서로 다른 은행들의 은행권을 받아주게 됐다.

은행들이 받은 다른 은행권들은 서로 건네주고 그 차이를 결제해야 하는데,정기적으로 어느 한 장소에 모여서 하는 것이 편리했기 때문에 중앙결제소가 만들어졌다.

중앙결제소는 사적 이윤동기에 의해 생성 발전했고 결제소협회를 구성해 운영했다.

결제소는 은행들이 은행권을 너무 많이 발행하는 것을 제한했고 일시적으로 유동성이 부족한 은행이 유동성이 많은 은행으로부터 차입하는 매개기능을 했다.

은행이 일시적으로 갑작스런 예금 인출로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을 때는 직접 대출해주는 최종대부자 기능도 했다.

회원은행들은 결제소협회에 은행의 건전성과 유동성을 감시하는 기능을 위탁했다.

규제와 검사 감독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은행에 대한 최후의 처벌은 협회에서의 제명이었다.

⊙ 정부의 은행 규제,은행권 발행 독점

정부는 은행들의 은행권이 정부의 주화 독점에 커다란 위협이 되자 법적 힘을 이용해 은행을 규제했다.

예를 들면 15세기 베네룩스 지역의 국가들에서는 계좌간 직접 자금이전 방식의 어음지불을 금지하는 엄격한 법이 제정됐다.

같은 시기 바르셀로나 지방정부는 예치은행(Bank of Deposit)을 법적 보호를 받는 유일한 법적 예금소로 설립하면서 몇몇 민간은행을 강제로 청산하는 등 은행업의 진입을 규제했다.

은행 규제의 또 다른 배경은 은행권 발행자(중앙은행)의 독점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영국 정부는 영란은행(the Bank of England)의 은행권 독점을 강화하기 위해 6명 이상의 합자 은행에 대해 은행권 발행을 금지했다. 다른 은행들의 대형화를 막는 조치였다.

정부가 화폐시장에서 경쟁자인 은행을 규제하기도 했지만 은행을 정부의 주요 자금원천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전쟁을 하거나 대규모 건축 · 토목사업을 벌일 때 정부는 특정 은행으로부터 매번 대규모 대출을 받았다.

대신 그 은행에 특권을 부여하고 그 은행권에 대해 법화의 지위를 부여했다.

금고에 보관하는 금이나 은 이상으로 은행권을 발행해도 파산하지 않도록 정부가 보호했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모형이 된 영란은행이 대표적 사례다.

영란은행의 독점적 지위 때문에 다른 은행들은 영란은행의 은행권을 사용했고 영란은행은 점점 최종대부자와 국가 화폐제도의 관리자 역할을 하게 됐다.

1870년 영란은행에 이자율 정책의 책임이 주어지면서 공식적으로 중앙은행이 됐고 거의 모든 국가에 설립된 중앙은행의 모형이 됐다.

「시장경제와 화폐금융제도」(안재욱 경희대 교수) 중에서.

발췌 · 요약=정재형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