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나라에 돈이 얼마나 있어야 적절하지? 한국은행에 물어봐!
오늘날 세계 대부분 국가는 중앙은행을 두고 있다.

시장경제 체제에서는 중앙은행의 존재는 필수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앙은행의 역사는 놀랍게도 그리 길지 않다.

중앙은행은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보편화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System)가 1914년 만들어졌고 캐나다 중앙은행이 대공황 이후인 1935년 세워졌다.

20세기 초 중앙은행이 있는 국가는 단 18개뿐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립국들이 생겨났던 1950년쯤에 59개였고,1990년쯤 161개로 증가해 거의 모든 국가에 중앙은행이 설립됐다.

중앙은행의 역할은 물가를 안정시키고,이자율을 조절하는 등의 통화정책을 펼치며,은행들이 유동성 위기에 빠졌을 때 긴급 자금을 빌려주는 최종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로서 행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앙은행의 탄생 초기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화폐를 발행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즉 주조이익(seigniorage)의 중요성을 간파한 정부(또는 중세 영주)가 화폐주조권을 독점하고,자신의 통제에 잘 따르는 은행을 중앙은행으로 키웠다.

중앙은행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영란은행(the Bank of England)은 처음에는 보통의 상업은행이었다.

영국 윌리엄 3세가 프랑스 루이 14세와의 전쟁을 위해 자금이 필요해 윌리엄 패터슨이라는 금융인로부터 대출을 받고 그 대가로 대출업과 은행권을 독점 발행할 수 있도록 인가했다. 1694년의 일이었다.

3년 후인 1697년에 정부에 대한 대출금이 늘어남과 동시에 정부는 영란은행에 은행권 발행업의 독점권을 강화시켜 줬다.

영란은행에 대한 특권은 18세기 말까지 계속됐고 이렇게 영란은행에 부여된 특권 때문에 소형 민간은행들은 동일한 선상에서 경쟁할 수 없었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났을 때 영국 정부는 영란은행에 더 많은 대출을 요구했다.

영란은행은 고객들의 예금인출에 대비하기 위해 쌓아놓는 지급준비금이 부족한 상태에 이르렀다.

그러자 정부는 영란은행이 고객의 예금인출 요구에 응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치를 내렸다.

1833년 영란은행권은 법화(정부의 공식 화폐)로 지정됐다.

초기만 해도 보통의 은행들이 저마다 은행권(돈)을 찍어냈다. 이 돈들은 서로 경쟁했고 결국 정부의 지원을 전폭적으로 받았던 영란은행이 중앙은행으로 부상해 올랐던 것이다.

은행들이 마음대로 자기 돈을 찍는 것이 지금은 이상해 보이지만 당시만 해도 여러 은행이 자기 신용으로 돈을 찍어 유통시켰다.

영란은행뿐 아니라 국가가 통치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화폐를 무작정 찍어낸 사례는 매우 많다.

대부분 과다한 통화발행으로 국가 경제가 파탄났다. 1차 세계대전 후의 독일,2차 세계대전 후 그리스와 헝가리,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등이 그랬다.

최근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발 금융위기의 근본원인을 미국 중앙은행이 너무 오랫동안 돈을 마구 풀었기 때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중앙은행이 정부의 필요나 경기를 부양하라는 대중의 요구에 따라 움직인 결과다.

국가는 세금을 걷어 재정수입을 확보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이는 세금을 내야 하는 대중에게 별 인기가 없다.

대신 손쉽게 돈을 찍어내는 것을 선호하게 마련이다.

또 선거를 앞두고 경기를 부양시키기 위해 돈을 찍어내기도 한다.

정부의 이런 행위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래서 중앙은행은 정부의 통제를 받지만 정치로부터의 독립이 필요하다.

이번 주 커버스토리에서는 중앙은행의 기능과 역할,그 탄생 역사에 대해 알아보자.

정재형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