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낙태논쟁 뒤엔 인구의 경제학이…
미국에서 낙태허용 논란은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상징적 잣대이자 대통령선거를 판가름하는 핵심쟁점이다.

민주당은 낙태를 옹호하고 공화당은 반대하는 것이 전통이다.

2007년 대선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민주당의 낙태지지 강령 때문에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겼다.

재미있는 것은 공화당내에서도 낙태문제가 중도와 정통을 가르는 이슈라는 점이다.

루돌프 줄리아니 당시 뉴욕 시장은 예비선거에서 선두를 달렸지만, 일찌감치 대통령의 꿈을 접어야 했다.

낙태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가 당 안팎으로부터 "존엄한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위선자"라는 딱지가 붙고 당내의 지지율이 뚝 떨어지고 만 것이다.

낙태를 허용하느냐 마느냐는 논란의 중심에는 생명윤리 문제가 있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은 생명은 잉태되는 순간부터 인간이며 따라서 태아의 생명도 존중해야 한다는 생명우선론(pro-life)과 임신과 출산을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여성건강과 가족의 안정을 위한 기초조건이라고 보는 선택우선론(pro-choice)을 축으로 전개되고 있다.

종교와 도덕적 쟁점을 넘어 성(性)평등이나 복지와 같은 다양한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낙태가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낙태를 둘러싼 기나긴 논쟁사는 생명존중이라는 형이상학적 표피를 덮어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구억제와 사회안정이라는 현실문제가 강력한 동인이었음을 말해준다.

고대 로마는 영아, 특히 여아를 죽이는 것이 비교적 용인되었다.

농경사회에 보편적이었던 남아선호 사상은 당시로서는 유일한 인구조절 수단이기도 했다.

참고로 인구의 증감은 남자의 숫자가 아닌 여자의 숫자로 결정된다.

동양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본에서는 근세까지만 해도 먹는 입을 줄이기 위해 태어날 아이를 제한하는 자식 솎아내기(마비키)가 공공연하게 이뤄졌다.

이 모든 것을 바꿔놓은 것은 기독교였다. 생명을 최고의 가치로 꼽는 기독교는 낙태가 영혼을 지닌 생명을 죽이는 죄악 행위라고 설파했다.

물론 이교도에 대한 전쟁과 이단자 처형을 당연시하는 반(反)생명적 교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후 기독교의 생명교리는 서구사회에서 낙태반대론의 원천이 됐다.

60년대 이후 다시 불붙은 낙태논란도 이 같은 사회 · 경제 문제와 무관치 않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베이비붐이 지구적 현상으로 확산되면서 인구과잉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고 산아제한이 대부분 국가의 정책으로 채택되었다.

한편으로는 낙태가 임신 출산의 주체인 여성의 지위향상 운동과 맞물리면서 낙태권리는 여성해방의 상징으로 등장했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해 낙태에 따른 위험부담이 상당히 해소된 최근에 이르면 미혼모 문제에서 보듯 생명에 대한 책임을 밑바닥에 깔고 낙태의 불가피성을 내세우는 목소리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고 있는 낙태 합법화 논란 역시 단순히 생명윤리를 다투는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저출산이라든가 사회복지 같은 기저에 깔린 사회 · 경제적 측면을 아울러 생각해야 할 문제이다.

우종근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rgbac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