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선택권이라고 주장한 '보부아르'
[Cover Story] "여자는 아이 낳는 노예 아니다 - 출산 거부가 여성해방"
여자가 생리적인 운명을 완전히 성취하는 것은 모성에 의해서이다.

여자의 모든 기능은 종(種)의 존속으로 그 방향이 정해져 있으므로,여자의 '자연적' 천직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러나 인간 사회는 결코 자연에 맡겨진 것이 아니다.

그리고 특히 약 1세기 전부터 산아(産兒)는 단순히 생물학적 우연에 지배되지 않고,의지에 의해 통제돼 왔다.

조심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가 '걸렸을' 때는 남녀가 다 같이 깜짝 놀란다.

그러므로 반자연은 특히 중대한 형태를 취한다. 그것은 낙태이다.

부르주아 사회가 이 이상으로 위선을 펼치는 주제는 많지 않다.

낙태는 흉악한 범죄이며,그것을 암시하는 것조차 추잡하다.

합법적 낙태에 반대하는 실제적 이유는 조금도 타당성이 없다.

도덕적 이유는 요컨대 낡은 가톨릭교의 주지(主旨)에 귀착한다.

즉 태아에게는 영혼이 있는데 세례를 받지 않고 그것을 말살하였을 경우,그것은 태아에게 천국의 문을 닫는 것과 같다고 한다.

기독교 교회가 경우에 따라서는 성장한 사람을 죽이는 것도 허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전쟁 혹은 사형수의 경우가 그것이다.

교회는 태아에 대해서만 유독 인도주의적이다.

태아는 아직 세례에 의해 정화(淨化)되지 않았지만 그들을 학살하는 일은 공공연하게 인정되었다.

종교재판에 희생된 사람들은 모두 은총을 받고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 단두대에서 사형되는 범죄자나 전장에서 죽은 병사들도 역시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경우에 기독교 교회는 신의 은총에 모든 것을 맡기고 있다.

그런데 많은 젊은 여성을 죽음이나 불임이나 병고에 몰아넣는 법률은 인구 증가를 위해서는 전혀 무력하다.

합법적 유산 찬성자와 반대자가 의견의 합치를 보는 점은,그런 행위는 방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레리스,발타자르,라카사뉴 등 여러 교수의 의견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는 1933년께 매년 50만건의 낙태가 있었다고 한다.

1938년에 작성한 통계에 의하면 100만건을 헤아린다. 1941년에 보르도 시의 오베르탱 박사는 80만 내지 100만으로 추정했다. 사실에 가장 가까운 것은 이 마지막 숫자이다.

낙태는 '계급의 범죄'라고도 한다.

이것은 대체로 사실이다. 부르주아 계급에서는 피임 방법이 한층 더 많이 보급돼 있다.

화장실의 설비는 수도(水道)의 편의를 갖추지 못한 노동자나 농민의 경우보다 그것을 실행하기가 용이하다.

중산층 가정의 처녀들은 다른 가정의 처녀들보다 한결 신중하다.

부부 생활에 있어서도 아이들에 대한 부담은 가볍다.

옥외에서의 여성 노동의 필요성과 가난 및 주택난이 낙태의 가장 큰 원인이다.

부부가 출산을 제한하려고 결심하는 것은 아내가 두 번째 어머니가 되었을 때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낙태한 추악한 얼굴의 여자는,또한 품에 두 금발의 천사를 안고 달래는 숭고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중략)

남자들은 낙태를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이것을 자연의 악희(惡戱)가 여자에게만 주는 여러 가지 사고의 하나라고 보고 있다.

그들은 거기에 관계되는 여러 가지 가치를 고려하지 않았다.

여자는 남성의 윤리가 가장 근본적으로 이완될 때 여성으로서의 가치,즉 자신의 가치를 부인한다.

그녀의 도덕적 세계는 거기서 동요된다.

사실 그녀는 유년 시절부터 여자는 아이를 낳기 위해 태어났다는 말을 귀가 아프도록 많이 들었다.

모성을 찬미하는 노랫소리도 들어왔다. (중략)

여자가 '깨닫기' 시작하는 것은 처음 낙태할 때이다.

세상은 이제 그녀들을 조금도 전과 같은 눈으로 보지 않는다.

그런 이치로,피임법의 지식이 충분히 보급돼 있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 낙태는 굶어 죽을 운명을 가진 그런 어린애를 낳고 싶지 않는 여자에게 열려진 유일한 길이다.

슈피겔은 지극히 정확하게 말했다. "낙태 금지는 부도덕한 법률이다. 그것은 날마다,시간마다 어쩔 수 없이 법해지지 않을 수 없는 법률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신비적 법칙을 자기에게 부과하는 종(種)의 먹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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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를 보는 엇갈린 시각

태아 생명권(pro-life) vs 산모선택권(pro-choice)
[Cover Story] "여자는 아이 낳는 노예 아니다 - 출산 거부가 여성해방"
낙태를 둘러싼 찬반양론은 '생명우선론(pro-life)'과 '선택우선론(pro-choice)'으로 구별된다.

낙태를 반대하는 측은 생명권이 모든 다른 권리보다 우선하다는 인식과 함께 태아는 인간이므로 태아를 생명권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생명우선론'의 입장에 서 있다.

이 견해는 생명권이 모든 다른 권리보다 우선한다는 초역사적 인식과 함께 생명이 잉태되는 순간부터 인간이며 따라서 태아의 생명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윤리적 종교적 입장에 의해 형성됐다.

반면 낙태를 허용하자는 측은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므로 여성의 선택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선택우선론'의 입장이다.

이 입장은 여성들이 물리적 · 심리적 · 사회적 영향을 받고 있다는 현실적 이해와 여성들이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려면 가정 내 역할이라는 기존의 역할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사회에서는 낙태 결정의 주체는 여성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 있다.

특히 여성의 낙태 결정권에 관한 수용도가 고학력을 가진 대도시 출신의 미혼여성에게서 높다는 사실은 낙태가 적어도 여성해방의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오춘호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