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한국이 일본 넘어설지는 기업가 정신에 달렸다
"한국 경제가 이미 추락한 일본의 전철을 밟을 것인지,더 큰 성장을 할 것인지는 기업가 정신에 달려 있다."

"대만 사람들은 명함을 두 개 갖고 다닌다. 하나는 지금 일하는 회사,다른 하나는 앞으로 창업할 회사의 명함이다. 기업가 정신이 충만한 대만은 크게 걱정되지 않지만 한국은 일본과 비슷해 걱정된다."

세계적 경영학자인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대 석좌교수가 지난달 19일 세계경영연구원(IGM)이 주최한 특별강연에서 한 말들이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1970년대 이후 일본이 미국 제조업 기반을 파괴하자 미국은 기업가 정신으로 충만한 소규모 벤처회사들을 키웠고,이를 기반으로 결국 살아났다"고 분석했다.

수많은 벤처기업들이 제조업 붕괴 이후 미국을 세계 정보기술(IT) 산업의 맹주로 끌어올린 원동력이라는 얘기다.

반면 일본에 대해서는 "일본은 최고의 자리에 올랐을 때 기업가 정신이 사라져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며 추락의 원인을 기업가 정신 실종에서 찾았다.

기업가 정신이란 무엇이기에,경제와는 무슨 관련이 있기에 크리스텐슨 교수는 기업가 정신을 이토록 강조할까.

⊙ 기업가 정신 충만했던 한국

기업가 정신은 기업 활동을 하려는 의지다.

기업을 설립해 공장 등 사업장을 만들고,직원을 고용하고,제품을 생산해 판매하고…, 이런 활동들을 통해 우리의 삶이 실질적으로 개선된다.

기업가 정신은 모험과 도전이다.

경부고속도로,포항제철,현대중공업,삼성 반도체산업 등은 모두 이 사업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세계적 전문가들조차 한국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했던 사업들이다.

고(故) 이병철 삼성 회장이 1954년 제일모직을 설립한다고 했을 때 미국의 유명 모직 기계 메이커의 한 중역은 "한국 자력으로 건설한 공장에서 3년 이내에 제대로 된 제품이 생산된다면,하늘을 날겠소"라며 새가 퍼덕이는 시늉을 했다.

피를 거꾸로 솟게 하는 모욕이었지만 이병철 회장은 결국 해냈다.

경부고속도로는 국내외의 숱한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돼 국내 기술로 세계 최단 기간,최소 비용 건설 기록을 남겼다.

포항제철의 경우도 당시 외국 정부 및 기업들은 2차세계대전 후 태국 터키 등에서 종합제철소 건설에 나서다 실패했고 우리나라도 그 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결국 성공했다.

"포항제철은 절대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당시 세계적인 철강회사, 독일의 크루프사 등은 결국 포철과의 경쟁에서 패배해 다른 회사와 합병하는 등 수모를 겪었다.

이런 승리들은 국가 대 국가의 경제 전쟁이라는 면에서 그리고 수십년에 걸친 치열한 경쟁이라는 면에서 한국인이 거둔 너무도 값진 승리들이었다.

한국의 현대사는 바로 이런 승리들로 아로새겨져 있다.

고(故) 정주영 현대 회장은 조선소도 없이 울산 조선소 부지 지도를 들고 가 500원짜리 지폐에 그려져 있는 거북선을 보여주며 "우리나라는 500년 전에 이런 철갑선을 만들었다"는 말로 배를 수주했다.

조선소 건설과 배 건조를 동시에 진행하는 유례 없는 작업을 성공시켰다.

현대자동차가 처음 포니차를 미국에 수출했을 때 일본 사람들은 종이로 만든 차라면서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지금 현대차는 세계적인 차들과 당당하게 경쟁하고 있다.

삼성이 1977년 반도체 산업에 진출했을 때는 첨단기술 산업인 데다 막대한 투자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국내 기업이 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회사 안팎에서는 '이러다 삼성 전체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쏟아졌다. 그럼에도 이병철 회장은 조금의 동요도 없이 자신의 결심을 실행했다.

이런 일들은 모두 기업인들이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즉 합리적으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기보다 자발적이며 낙관적인 기대에 따라 열정적으로 행동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다.

남들이 보지 못한 성공의 가능성을 찾아내 끝까지 도전했던 것이다.

⊙ "Stay Hungry,Stay Foolish"

삼성의 반도체 주역이며 '황의 법칙'으로 유명한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은 최근 한 일간지 칼럼에서 한국의 미래를 짊어질 청년들에게 귀감이 될 사람으로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를 꼽았다.

"Stay Hungry,Stay Foolish"(배고픈 채로,바보같이 우직하게)는 잡스가 2005년 스탠퍼드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남긴 말이다.

등 따습고 배부르고 더 똑똑해지고 싶은 건 인지상정(人之常情)인데 잡스는 뒤집어 말한 것이다.

배부르면 간절함이 없고,똑똑해서 일의 결과를 훤히 내다보면 사업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황창규 사장은 젊은 세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스티브 잡스가 행한 아이패드 시연식을 마치 오락프로 보듯 그냥 흘려 보았다면,우리의 미래는 없다.

한국산 자동차가,한국산 원자로가,한국산 선박이 세계시장에 팔려나가는 것을 지금의 청년 세대가 무심하게 보고 있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지식에 굶주렸던 30년 전의 필자가 반도체에 인생을 걸었듯이,우리 세대가 만든 경성(硬性) 과학기술에 젊은 세대의 연성(軟性) 혁신이 잘 조화돼 제3세대의 한국산 IT 소프트웨어가 만들어져야 한다.

단점도 많지만,우리 세대의 장점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개인적 치부욕이나 출세욕을 버렸었다. 반도체로 세상을 열고자 하는 욕망,한 가지로 달려왔다.

젊은 세대에게 "내가 미쳐야 남이 행복해진다"고 말하고 싶다.

저기 '창의(創意)의 바다'가 넘실거리고 있다. 그곳에 몸을 던질 젊은 과학도들을 고대한다.

정재형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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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 정신 외면하는 경제학 교과서

"현재 우리나라 대학의 경제학원론 교과서의 경우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본질적 특성을 체계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기능과 역할에 관해서도 충분한 설명을 하고 있지 못하다."

최광 한국외국어대 교수와 이성규 서울여대 강사는 지난 9~10일 서울대에서 열린 '2010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서 '우리나라 경제학원론 대학 교과서에서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정부의 역할에 대한 서술 현황과 대안 모색'이란 논문을 발표했다.

저자들은 기존 경제학원론 교과서는 두 가지 '편향'이 발견된다고 주장했다.

첫째,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서술이 가격 또는 시장기구에만 편향돼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본질적 특성인 '사유재산권'과 '선택의 자유'가 주요 교과서에서 간과되고 있다는 게 논문 저자들의 시각이다.

특히 선택의 자유는 자본주의 경제행위의 기본인데 이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없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 같은 교과서의 편향이 우리나라 반(反)자본주의 · 반시장 정서나 정책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둘째, 정부 역할에 대한 서술도 시장 실패를 교정하는 기능을 설명하는 데 그치고 있다.

시장이 잘 안 돌아가니 정부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기계적인 설명이 많다는 것이다.

사유재산권을 보장하고 시장의 규칙이 잘 지켜지도록 하는 보호 기능은 경시되고 있다고 본다.

이처럼 자본주의 경제행위의 기본인 '사유재산권'과 '선택의 자유'가 간과되면서 기업가 정신도 외면받고 있다.

비용과 수입,이윤에 대한 설명이 있을 뿐 기업가 정신의 요체를 설명한 경제학원론 교과서는 거의 없다는 비판이 많다.

기업가들은 '경제학자들은 현상을 설명하는 사람이고 기업가는 세계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