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청춘을 담보로 돈 빌려주는 학자금 상환제…善意 속에 숨은 함정
“무슨 대학 등록금이 그렇게 비싸? 한번 오르면 내릴 줄 몰라.대학등록금이 우리 아빠 혈압이야? 한 학년 올라갈 때마다 우리 아빠 얼굴에 주름살만 팍팍 늘어.우리 아빠 뻔데기야.대학총장이 보톡스 놔 줄꺼야?이거 아니잖아.”

“학자금 상환제도…! 아아…! 등록금이 비싸니까 돈을 꿔줄 테니 취업 후에 갚아라? 취업 안되면 안 갚아도 돼? 내가 돈 못 갚으면 나 잡으러 쫓아 다닐꺼야? 니네들이 무슨 추노의 장혁이야? 웃통 까고 식스팩 보여주면서 말 타고 올꺼냐고.오지호랑 이다해를 잡아.언년이를 잡으라고.왜 불쌍한 대학생을 잡냐고.”

지난 1월31일 KBS 2TV 개그콘서트 ‘봉숭아 학당’에서 ‘세상 누구보다 샤우팅을 사랑하는 동혁이형’이 외친 말이다.

관객들은 폭소를 터뜨린다.

대학등록금이 문제가 된 것은 오래 전부터다.

정부는 “돈 없어서 공부 못하는 사람은 없도록 하겠다”며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도(ICL,Income Contingent Loan)를 도입했다.

기존 대학 학자금 대출제도와 달리 대출한도가 ‘4000만원’에서 ‘등록금 전액+매학기 생활비 100만원’으로 확대됐고 대출원리금을 갚는 시기도 ‘졸업후 상환기간이 도래할 때’에서 ‘취업 후 일정 소득이 생길 때’로 완화됐다.

국회는 이 법을 통과시켰다.

국회는 또 학자금 대출 제도를 기화로 대학들이 등록금을 크게 올릴 우려가 있다며 등록금 상한제까지 함께 도입했다.

대학들이 매년 등록금 인상률을 정할 때 직전 3년간 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1.5배 이하로 묶도록 한 것이다.

얼핏 보면 대학공부를 마칠 수 있도록 돈을 빌려주고 소득이 발생할 때부터 갚고,대학이 등록금을 너무 많이 올리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좋은 제도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선의로 도입한 정책이 과연 좋은 결과를 낳을지는 의문이다.

⊙ 학자금 상환제,안 갚으면 어떡하나?

우리나라는 대학 진학률이 84%나 된다.

대학을 졸업한 후 백수는 너무 흔하다.

청년실업률은 적게 잡아도 7~8%대에 달한다.

나머지는 전부 취직이 되냐면 그렇지도 않다.고시 공부를 하거나 군대 가거나 이런 졸업생들은 다 빠진다.

직장을 잡을 때까지 아빠의 가게에서 임시로 일하는 사람도 다 빠진다.

이런 상황에서 돈을 못 갚는 학생들이 늘어날 것은 뻔한 일이다.

그나마 취직이 잘 되는 상위권 대학의 학생들은 상황이 낫겠지만 하위권 대학의 학생들은 큰 문제다.

인생의 출발부터 3000만~4000만원의 빚을 지고 이를 갚지 못한다면 앞으로의 사회 생활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갚지 않았을 때 별다른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졸업 후 직장을 못 잡으면 학자금을 갚을 수 없고 해외로 유학을 가거나 이주한 경우도 대출금 회수가 어렵다.

정부는 졸업 후 3년간 한푼도 갚지 않으면 재산 조사를 통해 상환의무가 있는 경우 강제징수에 나서고 제때 납부하지 않으면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를 물린다는 방침이다.

직장을 다니는 급여생활자는 급여가 국세청에 신고되기 때문에 소득을 파악할 수 있지만 자영업에서 일하면 소득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소득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을 것은 불보듯 뻔하다.

또 고소득 전문직의 탈세를 잡느라 바쁜 국세청이 훨씬 경미한 사안인 학자금 대출자들의 재산을 조사할 인력을 둘 수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미국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 학자금 대출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나라들도 상환능력이 없을 때는 상환유예 또는 면제를 해주고 있다.

미국의 경우 25년 이후에는 상환하지 못한 금액을 아예 면제해 주기도 한다.

과거 우리나라의 농어민 부채 탕감과 비슷하게 될 소지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퍼주기식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학자금 상환제에 필요한 자금은 한국장학재단이 채권을 발행해 조달한다.그 채권은 정부가 보증한다.

학자금 대출을 회수하지 못하면 한국장학재단의 기금이 고갈될 것이고 그러면 장학재단이 발행한 채권은 휴지조각이 된다.

정부가 그 채권을 보증했으므로 모든 부담은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 등록금 상한제의 문제

등록금 상한제는 가격상한제의 일종이다.

대학들은 학교 발전을 위해,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학생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라면 등록금 문제에서 자율성을 가지는 게 당연하다.

등록금 상한제를 도입하면 당장 교육의 질이 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수 교수를 초빙할 수 없게 되고 강의의 질도 저하될 게 뻔하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명문대학의 학생들과 소위 하위권 대학의 학생들이 직면하는 불균형이다.

명문대는 졸업후에 취직도 잘되고 높은 연봉을 받지만 하위권 대학 학생들은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등록금을 통제한다면 모든 대학이 등록금 상한선 근처까지로 등록금을 책정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등록금은 상위권 대학이나 하위권 대학이나 비슷해지고 대학교육으로 인한 혜택은 상위권 대학 학생들이 누리게 된다.

등록금을 똑같이 내려면 취업기회나 연봉도 똑같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같은 등록금을 내고 어떤 대학은 취직도 잘되고 연봉도 높다.

등록금을 자율화하고 대학을 자율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래서 나올 수있다.

대학은 교육을 통해 학생의 가치를 높이고 학생은 거기에 합당한 댓가로 등록금을 낸다.

그래서 미국은 한해 대학교 등록금이 졸업해서 받을 수 있는 연봉과 대체로 비슷하게 책정된다.

그래서 각 대학마다 등록금이 크게 다르다.

우리나라 대학들은 학생들의 가치를 얼마나 높여왔는가.

이미 지방 여기저기에 난립한 신생 사립대의 문제는 하나 둘이 아니다.

학생들 등록금만으로 대학을 운영하고 학교 돈을 빼돌려 땅 투기 하고 족벌경영에 교육기자재를 제대로 들여놓지 않아 학과가 폐쇄되는 일까지 있다.

지역마다 적게는 2~3개,많게는 10개의 학교를 가지고 있는 재단도 있다.

교육 사업이 아니라 교육 장사다.

대학에 입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의 태도도 달라져야 한다.

무조건 대학만 간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이 대학이 나의 가치를 얼마나 높여줄 수 있는가를 따지고,그러면 내가 그 정도의 등록금을 낼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나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없다면 대학 졸업장만을 위해 많은 돈을 지불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정재형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