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로마 교황청,왜 아바타 비판했나 …"자연은 숭배해야할 신이 아니다"
"깜짝 놀랄 만한 기술과 황홀한 이미지는 많지만 진정성 있는 감정은 없다."

"모든 얘기가 너무나 단순한 반(反)제국주의적이고 반(反)군국주의적인 우화로 수렴된다."

"생태학을 21세기의 신흥 종교처럼 믿게 호도할 수 있다."

"자연 숭배와 연결된 정령주의 수렁에 빠졌다."

"자연은 더 이상 보호받아야 하는 창조물이 아니며 숭배해야 할 신도 아니다."

"캐머런 감독은 판도라라는 판타지 세계를 창조하는 데 집중했지만 단조롭게 접근해 어떤 심오한 탐구도 없다."

로마 교황청을 대변하는 일간지 로쎄르바토레 로마노(L'Osservatore Romano)와 방송 바티칸 라디오가 쏟아낸 '아바타'에 대한 논평들이다.

AP통신은 이 같은 비판이 영화의 중심 주제인 '인간 vs 자연'을 겨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교황청 대변인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는 이번 논평에 대해 자연을 신격화하는 위험에 대한 교황 베네딕토 16세(Pope Benedict XⅥ)의 평소 시각을 반영한 것이라고 밝혔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환경 보호 필요성에 대해 자주 발언해 '녹색 교황(green pope)'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다.

그러나 환경에 대해 발언할 때는 항상 환경주의가 신토속종교(neo-paganism)화 또는 유사종교화되는 것에 대한 경고를 함께 얘기한다.

베네딕토 16세는 지난 1일 세계평화의 날에도 "평등주의라는 이름으로 인류를 다른 생물과 동일시하는 개념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개념이 인간 구원의 원천을 인간이나 신이 아닌 자연에서 찾으려는 새로운 원시적 범신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범신론은 세상의 모든 것에 귀신이 들어 있다는 원시적 종교다.

⊙ 과학의 시대,종교 부정의 시대

이야기는 좀 멀리 돌아가야 할 것 같다.

한때 종교가 인간의 정신과 삶을 지배했던 시절이 있었다.

종교는 신앙일 뿐 아니라 진리이기도 했다.

유럽에서는 중세시대에 교황이 왕보다도 높은 권위를 가졌다.

10세기 후반 주교를 임명하는 서임권을 둘러싸고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교황이 대립했다가 교황이 승리했던 카놋사의 굴욕도 그래서 가능했다.

교황은 당시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의 파문과 폐위를 선언했고 하인리히 4세는 교황에게 굴복해 항복문서를 보냈지만 교황이 그를 믿지 못하자 추운 겨울에 카놋사에 있는 교황을 찾아가 눈 속에서 맨발로 3일간 서서 굴욕적으로 사면을 받았다.

이슬람은 성속일체(聖俗一體),즉 종교지도자가 최고통치자인 신정정치 체제를 오랫동안 유지했다.

이란은 아직도 종교지도자가 정치에 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동양에서는 서양에 비해 종교의 영향력이 약했지만 불교나 유교 자체가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채택되었다.

종교의 영향력이 약해진 것은 르네상스 시대 이후이다.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이 강조되고 과학이 발달하면서부터였다.

종교가 독점하고 있던 지식을 이제는 과학이 차지하게 되었다.

과학은 자연의 법칙과 세상이 움직이는 이치를 밝혀내고자 했고 과학적 발견과 발명은 인간의 생활을 비약적으로 개선시켰다.

기독교의 창조론을 부정하는 진화론이 나오기도 했다.

이슬람은 사정이 다르지만 미국 유럽 등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종교가 힘을 잃어가고 있다.

젊은이들은 대부분 교회나 성당에 가지 않는다. 이제 종교는 신앙일 뿐 진리는 아니다.

진리는 종교 아닌 과학 속에 있다는 것이다. 무신론자들이 늘어가는 것은 이런 이유다.

⊙ 자연종교의 복권?

종교가 힘을 잃어가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경제가 발전하고 물질 만능주의적인 경향이 나타나면서 사람들은 정신적 빈곤상태에 빠졌다.

삶은 점점 팍팍해지고 행복이 뭔지도 모르게 되었다.

물질문명의 발달이 정신적 행복까지 보장하지는 않는 듯하다.

종교는 이런 상황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렇게 유사종교가 탄생하기 쉬운 환경이 만들어졌다.

로마 교황청이 아바타를 비롯 최근 대중 문화에 대한 비판의 빈도를 늘리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교황청이 영화에 대해 논평하는 것은 사실 이례적이다.

원래 로쎄르바토레는 가톨릭 복음을 전하고 교황청의 발표를 전하는 신문이었다.

1861년 창간된 이후 줄곧 엄숙한 신학적 이슈들을 다뤄왔다.

하지만 최근 그 영역을 확장해 해리포터나 록 그룹 U2에서부터 마이클 잭슨과 폴 뉴먼의 죽음 등 대중문화까지 점차 주제로 삼고 있다.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으로 선출된 후 나타난 변화다.

그는 종교적 복음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찾는 데 열성적이다.

로쎄르바토레는 영화 '해리포터'에 대해 "영화에서 만날 수 있는 많은 가치 있는 것들에도 불구하고 이 스토리의 밑바탕에는 마법이 긍정적인 이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며 10대 소년 마법사는 아이들의 잘못된 우상이 될 수 있다고 논평하기도 했다.

단순히 재미있는 상상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을 우화화하고 신화화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바타도 그런 경우라는 것이 교황청의 비판이다.

환경을 보호하고 사랑한다는 것이 극단으로 나아가 인간을 폄훼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하며 자연 자체에 영혼이나 정령이 깃들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물신론에 불과한 원시 종교의 한 형태라는 것이다.

종교를 잃은 현대인에게 자연이 새로운 종교로 등장하고 있다는 비판인 것이다.

생글 독자 여러분들은 아바타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하였는지.

3D로 재현되는 지극히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또 나비족을 침공하는 인간을 보고 혹시 인간은 사악한 존재이고 불완전한 존재이며 자연에 죄를 짓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지나 않았는지.

교황청은 바로 그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정재형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 홍혜림 인턴기자 j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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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베네딕토 16세 누구길래…

[Cover Story] 로마 교황청,왜 아바타 비판했나 …"자연은 숭배해야할 신이 아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목회자 출신이 아닌 신학자 교수 출신이다.

젊은 시절인 1962년부터 1965년까지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로마 가톨릭의 개혁과 쇄신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가 참석하지 않았더라면 공의회가 쇄신의 씨앗을 뿌리지 못했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1960년대 독일 대학가를 휩쓴 극렬한 신좌파운동이 오히려 그를 보수적 성향으로 돌려놓았다.

진보적 인물로 찬사받던 신학교수가 학생들에게 강의 마이크를 뺏기고 강단에서 멱살을 잡히는 일이 일어나던 시절이다.

1977년 뮌헨 대주교를 거쳐 1981년 교황청의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발탁된 그는 가톨릭 전통과 전통성을 흔드는 시도에 대해 한 치도 타협하지 않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나치게 정치적이며 동시에 영적 체험을 강조하던 남미 해방신학을 이단이라며 엄단한 것도 그였다.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해 녹색교황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