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많이 읽고 많이 써야 보석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영국과 일본은 콘텐츠 강국이다.

일본은 두말할 필요없이 콘텐츠 왕국이라 부를 만하다.

헬로 키티,도라에몽,포켓몬스터 등 캐릭터 상품이 있고 '재패니메이션'이라는 조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하루키 등 일본 소설들….

영국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문화 콘텐츠 수출에서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을 제치고 몇 년째 1위를 지키고 있는 문화산업 강국이다.

비틀스와 브리티시 록으로 시작된 영국의 문화수출은 현대 미술,뮤지컬에 이어 문학으로까지 확장됐다.

최근 영국의 주력 수출상품은 해리 포터 시리즈와 반지의 제왕이다.

해리 포터가 출판 영화 캐릭터 관광 등으로 파급력을 넓히며 거둬들인 경제효과가 300조원이 넘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이 할리우드의 막대한 문화 자본을 통해 세계 영화산업을 휩쓸고 있다면 영국과 일본은 문학 만화 애니메이션 등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소재 고갈에 허덕이는 할리우드는 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과 같이 고대 설화와 영웅들이 등장하는 판타지에 매료되고 최근 우리나라 드라마나 영화 중 상당수가 일본 만화와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보다 인구도 적고 자본력이 약한 영국과 일본이 이처럼 콘텐츠 강국이 될 수 있는 배경은 뭘까.

영국은 이 글 첫 부분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서 나오는 고대문학과 신화,기담 등 문화 기반이 탄탄하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모태가 된 것 역시 일본의 샤머니즘 전통과 다신교 문화다.

요괴나 숲을 중심으로 한 기담과 샤머니즘 전통,수백만의 신을 모시는 다신교 문화는 일본에서 요괴담,귀신 얘기 등의 콘텐츠가 꽃피우는 직접적인 토양이 됐다.

세계적 히트작 '포켓몬스터'의 캐릭터들도 요괴가 그 원형이다.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웃집 토토로'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 등에서도 숲속에 사는 신과 정령들의 얘기,깜깜한 숲에서 탄생한 요괴들의 얘기가 나온다.

이런 문화 기반에 더해 핵심적인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게 그 나라 특유의 읽고 쓰는 문화다.

영국과 일본은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고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다.

영국은 독서와 글쓰기 소모임이 발달돼 있다.

각각의 소모임 참가자들은 모임에 나와 자기가 읽은 것에 대해 서로 얘기하고 자기가 쓴 글을 읽어주고 평가를 받는다.

모임 구성도 주변 이웃,직장 동료,동호회 등으로 다양하다.

반지의 제왕을 쓴 톨킨과 나니아 연대기를 쓴 루이스가 그랬듯이 일상적인 모임에서도 서로 쓴 글을 읽어주고 들어주는 게 영국의 문화다.

조안 롤링도 이런 문화적 토양 속에서 탄생했다.

일본은 애니메이션과 게임의 나라인 것 같지만 그에 못지 않게 출판시장 규모가 크다.

일본 사람들은 책을 내면서 사회문제를 공론화하고,책을 통해 해결책을 찾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일본 출판연감에 따르면 신간의 경우 2005년 7만8000여종,14억부가 발행된다.

우리나라는 2007년 신간 발행량이 4만1000종,1억3000만부에 불과하다.

일본은 읽고 쓰기 문화 확산을 위해 정부와 언론사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어린이들이 컴퓨터 게임과 TV 시청에 몰두하고 있어 독서량이 줄어들고 있다고 판단하고 어린이들에게 독서에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 1997년 학교도서관법을 개정사서교사제를 도입해 교육 현장에서 사서 교사가 독서 지도 활동을 했다.

또 등교 후 10분씩 책을 읽게 하는 '아침 독서' 운동도 벌였다.

이를 통해 일본 초등학교 도서관 연간 대출 건수는 1990년대 1인 평균 16권 정도에서 2007년 35.9권으로 53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또 요미우리신문사는 읽기 문화 부흥을 위해 2002년부터 '21세기 활자문화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전국 순회 강연회,대학 독서교양 강좌,어린이 책 읽어주기 교실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매년 '독서 감상문 콘테스트'를 열고 있다.

"활자는 표류하는 정보 세계의 닻이다. 인간은 지금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당황하고 있다. 영상이나 음향을 탄 정보는 자극적이지만 계속해서 흐르고 떠다니면서 도무지 두서가 없다. 일관되게 정리해 의미를 파악하려 하면 그림도 소리도 그 질을 바꿔 버린다. 활자만이 현실을 응축해 의미 있는 것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21세기 활자문화 프로젝트 추진위원장인 야마자키 마사카즈 도아대 대학장의 말이다.

정재형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