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외국어 실력 갖춘 글로벌 인재 양성… 속은 '명문大 가는 통로'

“자율·경쟁 원칙 훼손해선 안돼” 외고 폐지론 반박도

외국어고가 존폐 논란에 휩싸였다.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외고가 어학 영재 양성이라는 원래의 설립 목적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자율형 사립고나 국제고로 전환하자는 말까지 튀어나오고 있다.

외국어뿐 아니다.

과학고도 영재고로 바꾸자는 주장도 제기됐다.

⊙ 평준화 보완 위해 등장…40%가 명문대 진학

[Cover Story] 눈총받는 외고… 뭐가 문제길래?
명문 외고는 고교 평준화가 대세인 와중에 엘리트 교육도 해야 한다는 논리 속에서 1980년 도입됐다.

학생의 특성을 감안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에서였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특목고였다.

원래 특목고는 농업이나 수산분야 해양 과학이나 공업 등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인재를 만들자는 뜻에서 세워졌다.

1980년대에 와선 예술이나 어학 등으로 확대됐다.

외고는 물론 외국어를 잘하는 학생들을 키우려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외국어를 잘하면서 다른 분야에 진출하면 글로벌 인재로 키울 수 있지않느냐는 발상이었다.

외고는 설립 이후 자연스레 명문대 진학을 하는 창구로 활용됐다.

학생과 학부모가 모두 명문대를 원하기 때문이었다.

2009년 서울 · 경기 지역 외고의 SKY대(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진학률이 41.1%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얘기해준다.

당초부터 평준화의 숨통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명문으로 재등장하게 된 것이다.

명문대에 진학한 만큼 외고 졸업생들은 사회 각 분야에서 두각을 발휘했다.

사법시험 등 국가 고시에서 외고의 약진은 눈부시다.

최근 입소한 연수원 40기의 출신고를 보면 대원외고가 37명으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다.

역대 법조인 수에서도 대원외고는 322명으로 경기고(441명)에 이어 2위에 올랐다.

한영외고는 144명, 대일외고는 95명으로 10위권 밖이다.

외고의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대원외고를 비롯한 외고들이 법조계를 독식하는 것은 시간 문제에 불과하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 동일계열 진학 낮다

외고는 설립 목적을 생각하면 어학계열 진학률이 높아야 하지만 이 비율이 매우 낮다는 점이 첫째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금까지 졸업생을 배출한 전국 29개 외고의 동일계 진학률은 30% 미만이다.

서울 · 경기지역 15개 외고의 어문계열 진학률은 26.4%로 이보다 더 낮다.

특히 대원외고는 지난 3년 동안 15.6%만이 동일 계열로 진학했다.

경기 성남외고는 졸업생 226명 가운데 32명(14.2%)만 어문계로 진학해 전국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는 과학고의 83.8%에 비교해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이다.

외고가 명문고로 인식되면서 외고 선호도가 높아졌고 이것이 중학생 심지어 초등학생의 사교육비를 유발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사설 학원에서 주최하는 외고 입학설명회에는 매년 수천 명의 학부모와 학생들이 몰려들고 있다.

특히 초등학생까지 외고 입학을 위한 준비로 한 달에 수백만원씩 교육비를 투자하는 경우도 있어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 '외고 폐지'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제기된 '외고 폐지론'은 이 같은 부작용에 대한 문제 제기의 측면이 강하다.

과학고 등 다른 특목고와 비교해 설립 목적과 다르게 운영되는 만큼 차라리 자율형 사립고나 국제고로 전환하자는 주장이다.

정두언 의원은 외고뿐만 아니라 다른 특목고도 특성화고로 통합하자는 의견까지 나와 있다.

이주호 교과부 제1차관도 "외고만 문제인 것은 아니다"며 정치권의 이 같은 움직임에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외교 폐지가 충분한 명분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율과 경쟁의 원칙을 훼손한다는 비판도 많다.

설립목적이 무엇이든 학생들의 학교 선택권을 정부가 제한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다.

평준화 정책이 학력수준을 떨어뜨리는 '하향평준화' 현상을 심화시켰다고 비판해 온 한나라당이 외고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자기 모순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사교육비 증가의 원인을 공교육 부실화가 아닌 외고 등 특목고에서 찾는 것이 크게 잘못됐다는 의견이다.

전국 외고 교장협의회 강성화 회장(고양외고 교장)은 "사교육시장이 커진 것은 공교육 전체가 제기능을 못했기 때문이지 외고 때문은 아니다"며 최근의 흐름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

또 다른 외고 교장도 "외고를 폐지하면 자사고나 과학고, 국제고로 학생들이 몰릴 것"이라며 "외고 폐지가 대안이 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 외고도 스스로 개선 노력

외고 스스로도 사교육의 온상이라는 눈총에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사교육의 폐해를 줄여 비난을 피해보자는 의도에서다.

대원외고는 2011학년도 입시부터 영어듣기 시험을 없애고 내신과 면접만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또 서울대처럼 서울지역 25개 자치구에서 학생을 골고루 뽑는 지역균형선발제와 정원의 35%는 외국어 · 예체능 우수자, 사회적 배려 대상자를 뽑는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이화외고도 영어듣기 시험을 폐지하고 '내신+입학사정관제'로 전환하는 방안과 '내신+기본 영어실력(자격시험)'으로 바꾸는 방안을 놓고 검토 중이다.

자격시험으로 바뀌면 영어점수는 우열을 가리는 게 아니라 합격 불합격만 판단하는 요소로 활용된다.

명덕외고와 대일외고, 한영외고 등도 사교육을 줄이는 방향으로 입시제도를 개선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교육도 소비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에 맡겨야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정부가 공교육을 살린다는 명분 아래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하면 오히려 많은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 교육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이재철 한국경제신문 기자 eesang6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