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터키 어린이들 교육 후원 …LG, 독거노인 보살피기
[Cover Story] 기업들, 소외계층 돌보는 '사랑의 메신저'로
터키 소아시아반도의 남서부 거점도시 카라만마라쉬.

세계 아이스크림 발상지 중 하나로 유명한 이곳의 도심을 벗어나자 낮은 돌담으로 둘러싸인 조그만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시골마을이 나타난다. 하주알랄랄이다.

초등학교 4학년생인 할리 이브라힘 타쉬데미르는 기자를 보자마자 "할로,삼성" "아이 러브,삼성"을 외친다.

할리가 다니는 학교를 삼성이 지어준 때문이다.

할리의 꿈은 초등학교 교사다.

4년 전만 해도 송아지나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새 교실에서 공부하면서 초등학교 교사가 돼 아이들을 가르치는 꿈을 갖게 됐다"는 게 할리의 설명이다.

삼성전자 터키법인이 할리네 학교를 지어준 2006년.

이전에도 학교가 있었지만 '말로만 학교'였다.

뻥 뚫린 지붕과 깨어져 나간 창문. 수업조차 힘들었다. 책과 학용품도 부족했다.

삼성은 학교를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새로 짓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지붕과 창문,집기를 모두 교체했다. 학용품은 물론 컴퓨터까지 기증했다.

최근엔 한국식 수학여행도 주선했다.

상당수 학생이 마을 밖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얘기를 듣고서였다.

학교 관계자는 "아이들을 데리고 터키 최대 도시인 이스탄불을 다녀왔다"며 "학생 모두가 난생 처음으로 바다를 보고,배를 타고,도시를 보는 놀라운 체험을 했다"고 말했다.

삼성 터키법인의 학교 건립사업 슬로건은 '꿈 이뤄주기(Supporting your Dreams)'다.

할리 같은 어린이에게 꿈을 주자는 취지다.

하주알랄랄을 시작으로 마르딘,카르스,디야르바키르 등 4곳에 이미 학교를 지었다.

터키법인 관계자는 "외국기업이 줄 수 있는 문화적 이질감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다 학교 건립사업을 생각했다"며 "주민들의 반응이 좋았는지 터키 신문과 방송에서도 여러 번 삼성학교에 대해 보도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터키에 처음 진출했던 2000년 3%대였던 휴대폰 시장 점유율이 30%대까지 높아졌다"며 "꿈 이뤄주기 프로젝트와 같은 사회공헌 활동이 시장 개척의 밑거름이 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가 학교 켐페인을 벌이고 있는 곳은 터키만이 아니다.

아시아 최대 시장으로 꼽히는 중국에도 2005년부터 교육 소외계층을 위한 학교를 만드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중국 삼성학교에는 '애니콜 희망소학교'라는 간판이 달려있다.

올해까지 중국 전역에 45개의 학교가 들어섰으며 2010년까지 55개의 학교를 추가로 지어 총 100개의 학교를 운영할 방침이다.

⊙ 독거노인의 '효자'가 된 LG

지난 11일 서울 은평구 녹번 재래시장.

뒤켠 계단을 오르니 거미줄이 쳐진 어두컴컴한 복도 좌우로 5~6평 남짓한 쪽방집 12채가 나타난다.

가장 구석에 있는 집의 문을 두드리자 허리가 구부정한 조동천 할아버지(84)가 얼굴을 내밀었다.

조 할아버지 가족은 4명.

한쪽 눈이 안보이고 거동도 불편한 할머니,고등학교 2학년짜리 손자,중학교 1학년짜리 손녀가 한집에 산다.

며느리는 손녀가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가출했다. 아들도 10여년 전 사업 실패 후 자취를 감췄다.

조 할아버지에게 "어떻게 사시냐"고 물었더니,방 바닥에 종이 한 장을 꺼내 놓는다.

"전기세를 3개월 못 냈더니 전기를 끊겠다는 경고장이 왔어. 손자들 학비 대기도 빠듯한데 말이야. 손녀는 돈 많이 드는 수학여행에 꼭 가겠다고 조르고…."

기침을 하는 할머니의 등을 두드려준 조 할아버지가 계속 말을 잇는다.

"그래도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올해는 한결 나은 거야. LG가 집도 고쳐준다고 하고. 올겨울에는 애들이 따뜻하게 공부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그동안 조 할아버지에게 겨울은 고통 그 자체였다.

갈라진 창틈으로 칼바람이 들어왔다.

난방비가 없어 냉방에서 지내는 건 예사였다.

하지만 올겨울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LG복지재단이 집을 고쳐주기로 한 덕분이다.

LG는 다음 주부터 공사를 시작키로 하고 준비작업을 마쳤다.

당장 난방용 바닥필름을 설치할 예정이다.

한 달에 2만원이면 따듯하게 겨울을 날 수 있는 장비다.

벽에는 외풍을 막을 수 있는 단열재를 깔기로 했다. 지붕과 장판도 교체한다.

"얼마 전에 손자들이 '할아버지 할머니 꼭 120살까지 사세요'라고 하더라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손자들을 봐서라도 더 힘을 내서 살아야지."

조 할아버지가 주먹을 꼭 쥔다. 쭈글쭈글한 눈매에 이슬이 맺혀 있다.

녹번 재래시장 옥탑방에 혼자 사는 김옥분 할머니(64)도 요즘 생기가 넘친다.

LG가 집을 고쳐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김 할머니는 11년 전 화훼 사업에 실패,신용불량자가 된 뒤 이곳으로 이사했다.

천식까지 겹쳐 외출이 어렵다.

그러다 보니 옥상 한쪽에 채소를 키우고 햇볕을 쬐며 하루하루를 지낸다.

김 할머니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는 '겨울'.

보증금 없는 월세 15만원짜리 옥탑방 슬래브 벽이 겨울 칼바람을 막아주지 못해서다.

지붕 한구석에 난 구멍에서도 냉기가 새어든다.

"작년엔 11월에 감기가 걸려 올 4월까지 고생했어. 올겨울엔 LG 덕에 감기 고생은 면할 것 같아. 집이 고쳐지면 그동안 못 불렀던 친구들도 초대할 거야."

조 할아버지와 김 할머니가 따듯한 겨울을 날 수 있게 된 것은 LG복지재단이 펼치고 있는 '따뜻한 집 만들기' 프로그램 대상자로 선정된 덕분이다.

LG는 녹번 종합사회복지관의 추천을 받아 두 어르신의 집을 고쳐주기로 했다.

이 프로그램은 독거노인,장애인,조손 가정 등 어려운 소외계층이 따뜻하게 겨울을 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한다.

2000년부터 시작돼 올해로 꼭 10년째다.

그동안 LG복지재단이 수리해 준 집은 1500여채.

올해도 조 할아버지의 집을 포함,107가구의 겨울나기를 돕는다.

송형석 한국경제신문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