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재능까지 기부 …기업들 사회공헌 마케팅 진화
[Cover Story] '착한 기업'이 명성과 이윤 함께 얻는다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는 이진희씨는 매달 두세 번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레크리에이션 강사로 변신한다.

최근 웃음치료사 자격증까지 땄다.

"당장이라도 직업을 바꿀 수 있는 레크리에이션 전문 인력"이라는 게 이씨에 대한 동료들의 평가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에는 이씨와 같은 '전문 봉사활동가'가 수두룩하다.

2007년 1500여명으로 구성된 23개 전문 봉사팀을 설립한 이후 전문 봉사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매년 100~200명씩 늘고 있다.

봉사활동에 필요한 전문 기술은 80여개에 달하는 사내 동아리를 통해 전수된다.

회사 관계자는 "대기업이라면 사회공헌 전문인력이 많을 것이라는 지역사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부가가치가 높은 '재능 기부' 캠페인을 활성화했다"며 "직원들이 밭 일,노력 봉사,말벗처럼 누구나 할 수 있는 자원봉사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점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 재능을 기부한다,'프로보노'

삼성전자의 사례처럼 전문적인 기술이나 재능을 활용하는 사회공헌을 '프로보노(pro bono)'라고 부른다.

'공익을 위하여'라는 의미의 라틴어(pro bono publico)에서 온 말이다.

프로보노는 기부가 중심이 되는 기존 사회공헌보다 한 단계 진화한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사회공헌 활동 수요자인 소외계층 입장에서는 보다 수준 높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기업들도 사내에 축적된 역량을 활용,사회공헌 활동에 드는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사회공헌 활동에 참여하는 직원들의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높고,지속가능한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도 프로보노의 장점으로 꼽힌다.

기업들의 프로보노 활동은 대개 자신이 영위하고 있는 사업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이 때문에 기업 이미지 광고 등 마케팅 활동에도 손쉽게 활용할 수 있다.

⊙ 사회공헌도 브랜드 시대

LG그룹은 최근 전 계열사가 함께 사용하는 사회공헌 기업 이미지와 슬로건을 만들었다.

'젊은 꿈을 키우는 사랑'이라는 사회공헌 슬로건과 이 문구를 크레파스로 쓴 손글씨 형태의 로고가 한 세트다.

LG 관계자는 "기업이 사회공헌 활동에 열심히 임하고 있다는 사실을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끝에 사회공헌 브랜드를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브랜드 마케팅에 사회공헌적 성격을 가미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의 스폰서로 참여했던 삼성전자는 성화봉송 캠페인을 통해 브랜드를 알리는 스포츠마케팅을 기획,어려운 환경을 극복한 중국인 1531명을 봉송주자로 선발했다.

이 행사 이후 삼성은 중국 소외계층에 꿈을 심어준 기업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자사의 사회공헌 활동을 외부에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은 모든 기업 사회공헌 담당자들이 고민하는 공통된 숙제"라며 "사회공헌에 브랜드를 붙이거나 광고 등과 연계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기업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사회공헌을 넘어 사회 마케팅으로

"기업의 사회공헌은 용을 길들이는 것과 같다. 과정은 힘들지만 잘만 길들이면 명망과 이윤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

저명한 경제학자인 피터 드러커의 말이다.

사회공헌 예산을 늘리면 이윤이 줄어든다는 기존의 인식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 같은 학계의 주장은 사회공헌과 마케팅을 결합한 '사회 마케팅'이 활성화하면서 점차 힘을 얻어가고 있다.

이윤의 사회적 환원을 꾀하는 '박애적 관점'의 사회공헌이 '전략적 관점'으로 바뀌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자유의 여신상 복원 운동'이 사회 마케팅의 효시로 꼽힌다.

이 회사는 1983년 카드 수수료의 일부를 자유의 여신상을 고치는 데 사용하는 캠페인을 전개했다.

이 캠페인은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고 그해 아멕스 카드의 사용률은 27%,신규 신용카드 발행률은 17% 늘어났다.

아멕스 카드의 활동 이후 사회 마케팅에 대한 투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1990년 1억2500만달러였던 미국 내 사회 마케팅 투자액이 2002년 8억2800만달러로 늘었다.

⊙ 사회공헌 마케팅의 진화

사회공헌 마케팅은 형태가 다양해지는 추세다.

지난해 8월 나이키가 전 세계 25개 도시에서 나이키 고객들을 대상으로 개최한 마라톤 행사는 업그레이드된 사회 마케팅의 전형으로 꼽힌다.

이 대회의 특징은 참가비의 50%를 자신이 원하는 자선단체에 기부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회공헌 활동에 관심이 있는 전 세계 마라톤 동호인들을 100만명이나 모을 수 있었다.

이 행사로 나이키는 '착한 기업'이라는 이미지 외에 두 가지 이익을 더 얻었다.

나이키가 제3세계 어린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한다고 공격한 NGO(비정부기구)들에 참가비 중 일부를 지원하는 방법으로 비판 여론에서 벗어났다.

매출에도 보탬이 됐다.

이 대회에 참여하려면 반드시 나이키 운동화를 신어야 한다.

이 때문에 참가자 중 상당수가 대회를 위해 새로 나이키 제품을 구매했다.

애플은 미국의 주요 대학들이 제작한 관련 강좌를 '아이팟'으로 통해 무료로 내려받게 하는 활동으로 명성과 이익을 동시에 거머줬다.

애플은 대학들이 생산하는 콘텐츠를 '아이튠스 유'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유통시키고 있다.

대학과 소비자로부터 한푼도 돈을 받지 않는다.

대신 매년 서버 증설에 돈을 투자하고 있다.

일정 비용을 들여 대학들이 공개 강좌를 통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고,소비자들이 콘텐츠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사회공헌적 성격을 가미한 강좌 무료 보급 사업은 아이튠스가 세계 최대의 온라인 콘텐츠 시장으로 자리잡는 데 큰 도움을 줬다.

25억곡의 음악과 200만편의 영화가 판매된 아이튠스에 무료 교육용 콘텐츠가 추가되면서 다른 경쟁자들과 확연히 다른 스스로만의 색깔을 구현할 수 있었다는 게 애플의 설명이다.

송형석 한국경제신문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