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신종플루로 여행포기 속출… 세계 관광산업 한파

[Global Issue] 올 여름 파리 노천카페엔 ‘파리’만 날린다?
한 해 최대 매출을 올려야 할 여름 휴가철이 끝나가지만 주요 관광대국들은 울상이다.

글로벌 경기침체는 금방 회복될 것 같지 않고 신종플루까지 유행하면서 해외 여행객들이 감소, 관광산업에 한파가 거세기 때문이다.

AFP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7930만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방문하며 세계 최대 관광대국의 위치를 확고히 지켰던 프랑스는 올 여름 성수기에 파리만 날렸다.

프랑스 관광당국은 올 1~5월 외국인 관광객이 15.5%나 줄어든 데 이어 올 7~8월에는 관광객이 전년에 비해 30%가량 급감한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에 빈자리를 찾기 힘들었던 파리의 노천카페에는 빈 테이블이 종종 보이는 썰렁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 지중해 연안국 성수기장사 '울상'

지중해의 따뜻한 햇살로 인기있는 스페인도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이 올 상반기 11.4% 줄어들었고 올 여름에도 10% 정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스페인 정부는 올해 관광업계 지원금으로 10억유로가량을 풀었지만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스페인은 지난해 5730만명의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그치며 미국(5800만명)에 관광대국 2위 자리를 내준 바 있다.

로마의 고대유적들과 아름다운 지중해 해변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이탈리아도 상황은 비슷하다.

5~8월에 이탈리아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전년 동기보다 8.3%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해변을 찾은 관광객들이 6~7월 150만명이나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호텔업계는 객실요금을 평균 8.3% 낮추는 고강도 대책을 내놨고 3성 및 4성급 호텔은 30% 가까이 인하했지만 큰 변화는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이탈리아의 지자체들은 또 다양한 방법으로 관광객 유치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물의 도시로 알려진 베니스는 결혼식 생중계 서비스라는 카드를 내놓았다.

베니스 관광의 중심지인 리알토 다리 근처에 있는 베니스 시청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커플들은 120~144유로를 내면 결혼식 장면을 인터넷으로 가족과 친지들에게 생중계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도시로 알려진 베로나도 문학작품을 이용한 관광 상품을 도입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서로의 사랑을 키웠을 것으로 보이는 낭만적인 저택의 발코니에서 외국인 관광객 커플들이 사랑의 맹세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이벤트를 도입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내놓고 있다.

⊙ 경기침체에 신종플루까지 겹쳐

이처럼 유럽 관광대국이 울상인 것은 독일과 영국 등 유럽 주요국이 경기침체로 해외여행을 포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 내에서 상대적으로 날씨가 좋지 않은 독일과 영국은 따뜻한 햇살을 즐기기 위해 여름휴가 때 프랑스와 스페인 이탈리아 등을 주로 찾았었다.

여론조사업체인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유럽인의 48%가 휴가를 국내에서 보내겠다고 대답했다.

이는 지난해(43%)에 비해 크게 증가한 것으로 그만큼 경기침체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증거다.

특히 영국은 유럽여행을 떠난 사람이 10% 줄었다.

영국인들은 그동안 파운드화의 강세로 휴가 때면 가까운 유럽으로 여행을 즐겼지만 올해 파운드화 가치가 유로화와 거의 1 대 1까지 떨어지는 등 약세를 보이면서 이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항공여객 수요 감소로도 나타나고 있다.

전 세계 항공사들의 연합체인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전 세계 국제 항공여객 수요가 5월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3% 줄어든 데 이어 6월에는 7.2% 감소하는 등 올해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IATA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신종플루가 대유행하면서 6월 항공수요가 타격을 입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과 3월에는 10% 이상 항공 수요가 감소하면서 항공업계는 최대 위기에 처했고 따라서 이번 성수기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 여행 가더라도 지출은 줄여

설령 해외여행을 떠난다 하더라도 씀씀이는 줄어들고 있는 양상이다.

여행객들이 강렬한 햇빛이 비추는 지중해 해변에 누워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여흥을 즐기는 스페인에서 맥주 소비는 관광객의 지출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로 볼 수 있다.

스페인 맥주업계에 따르면 관광 성수기인 8월 맥주 소비가 지난해에 비해 13.5%가 줄어들 것으로 보여 맥주업체들의 걱정이 태산이다.

남부유럽의 유명 관광국인 포르투갈과 그리스에서도 외국인 여행객들의 지출은 올 상반기에 13.2%,14.7%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 영향으로 한 해 1500만명의 외국인 여행객이 몰리는 그리스에서는 여행산업이 국내총생산(GDP)의 17%를 차지하며 여행 관련 산업의 일자리가 전체의 약 20%에 달한다.

이 같은 관광 한파에 그리스의 지난 2분기 경제성장률은 작년 동기 대비 0.2% 떨어지며 16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그리스 정부는 올해 연간 경제성장률이 -1.0% 내외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미국 하와이, 플로리다도 한파

지난해 외국인 관광객 수 2위에 올랐던 미국의 대표적인 관광지도 한산하긴 마찬가지다.

태평양 한가운데서 이국적인 풍광을 즐길 수 있는 관광명소 하와이는 미국의 주로 편입된 이래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GDP의 약 3분의 1을 관광산업에 의존하고 있는 하와이를 방문한 관광객들의 올 상반기 지출 규모는 49억7000만달러로 지난해보다 15%나 급감했다.

이에 관광산업이 위축되면서 하와이의 실업률은 31년 만의 최고 수준인 7.4%까지 치솟았다.

특히 신종플루로 지난 5월 관광객 수가 15.5% 감소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하와이 관광청의 데이비드 우치야마 마케팅 담당 부사장은 "하와이 관광객의 5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신종플루의 전염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영향으로 하와이 주정부의 세수가 2008년 회계연도보다 10%나 줄어들자 주정부는 8억달러에 달하는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1000명 이상의 공무원을 감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본토에서 눈부신 햇살과 따뜻한 아열대성 기후를 즐길 수 있는 플로리다도 올 여름 관광산업이 불황을 겪고 있다.

예전 같으면 관광객으로 붐벼야 할 플로리다의 호텔과 놀이동산 레스토랑이 한산하다.

플로리다 주의회는 플로리다를 찾은 관광객 수가 전년에 비해 8% 감소하고 이로 인해 관광수입이 2억3500만달러가 줄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관광업의 비중이 주 경제 전체의 15%에 달하는 플로리다에서 100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됐다.

재정난으로 문을 닫는 중소형 호텔들이 속출하고 있다.

플로리다 호텔의 객실 점유율은 전년에 비해 11% 감소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호텔이 객실을 채우기 위해 저가정책을 펴면서 객실 수입은 21% 떨어졌다.

세계 최대 놀이동산인 디즈니랜드마저 올 여름 수익이 떨어질 정도로 플로리다의 관광산업에는 극심한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서기열 한국경제신문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