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100억 짐바브웨달러 내고 달걀 3개 사는 '짐바브웨의 비극'
아프리카 남부에 있는 짐바브웨는 아프리카 쇼나어로 ‘돌로 만든 견고하고 거대한 집’이란 뜻이다.

하지만 이름 뜻과는 달리 이 나라는 매우 복잡한 역사를 거치며 오랜 풍파에 시달려 왔다.

짐바브웨는 1888년부터 영국 남아프리카회사의 지배를 받아왔다.

이후 1923년 영국 정부의 식민지로 편입됐다.

1953년 엔로디지아-니아살랜드 연방공화국이 수립됐지만 이 연방은 나중에 지금의 짐바브웨와 잠비아말라위로 분리됐다.

짐바브웨는1963년 연방 해체 후 영국 식민지로 계속 남았다가 1980년에야 정식 독립국가가 됐다.

2억 3100만% 살인적 인플레…국민 10명 중 9명이 실업자

사회복지에 자원팔아 번 돈 물쓰듯…독재정권 부정부패

⊙ 국민의 90%는 실업자

짐바브웨는 1990년대 초만 해도 아프리카 2위의 경제대국이었다.

짐바브웨 달러와 미국 달러의 교환 비율이 1 대 1일 정도로 아프리카의 경제 모범국이었다.

세계 3대 폭포인 '빅토리아 폭포'로 유명한 짐바브웨는 금과 크롬 등 풍부한 광물자원뿐만 아니라 인구 1200만명에 이르는 잠재 수요,그리고 도로 등 뛰어난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 모잠비크 남아프리아공화국 등 인접 국가로의 수출 전진 기지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특히 짐바브웨 국토를 남북으로 500㎞가량 가로지르는 짐바브웨 대암맥 주변에는 백금과 세계 제일의 고품질 크롬이 광범위하게 매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황게 탄전지대에서는 양질의 석탄이 생산되고 있다.

아울러 최근에는 우라늄의 부존도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짐바브웨의 현재 경제상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최악이다.

실업률은 무려 90%에 이르렀고,물가상승률은 정부 공식 통계만으로도 2억3100만%라는 천문학적 수치를 기록했다.

올초에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며 한장에 10조짐바브웨달러짜리 지폐를 발행하는 어처구니없는 조치까지 취했다.

게다가 지난해 8월부터 창궐하기 시작한 콜레라로 8만명이 감염되고 4000여명이 사망했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구호 식량에 의지해 연명하고 있으며,평균 수명이 남성은 37세,여성은 34세에 불과하다.

⊙ 포퓰리즘 정책들

[Cover Story] 100억 짐바브웨달러 내고 달걀 3개 사는 '짐바브웨의 비극'
짐바브웨 안팎에선 이 같은 국가 위기의 책임을 29년째 짐바브웨 정권을 쥐고 있는 악명 높은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85)에게 돌리고 있다.

1924년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무가베는 독학으로 영국 런던대를 졸업한 뒤 로디지아 소수 백인정권에 항거하는 게릴라 지도자가 되었다.

치열한 무장투쟁 끝에 승리를 쟁취한 무가베는 1980년 4월18일 독립을 선포,짐바브웨 공화국을 탄생시킨다.

무가베는 실용적 사회주의자를 표방하며 처음엔 비교적 양호한 정치 행보를 보였다.

농지분배와 대대적인 의료사업,그리고 무료교육 등을 실시해 문맹률을 아프리카 국가 가운데 최저인 15%까지 끌어내렸다.

또한 비동맹 외교의 중추 역할을 맡으며 짐바브웨의 위상을 끌어올렸다.

그 때문에 그에겐 한때 '흑백간의 공존을 이룬 모범생'이란 별명까지 붙었었다.

하지만 그의 '착한 정치'는 여기까지였다.

경제가 생각대로 풀리지 않자 그 원인을 내부의 적으로 돌렸다.

백인들이 소유한 땅을 무상으로 몰수한 것이 2000년이었다.

백인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이번에는 백인들이 주로 참여하고 있는 외국계 기업에 대해 회사 주식의 절반을 무상으로 국가에 헌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물론 국민은 처음에는 열렬하게 환호했다.

외국인들이 소유한 좋은 기업이 이제 짐바브웨 국민의 소유가 되었으니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외국인들이 떠나면서 기업경영이 악화되고 문을 닫는 기업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기업들이 문을 닫으니 시장에는 물건이 귀해지고 물건 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무가베 정권은 이번에는 상품을 쌓아두고 있는 기업들로 하여금 이를 무조건 시장에 내다 팔라고 명령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물건을 내놓는 기업들은 그나마 비싼 값에 물건을 내놓았다.

그러자 정부는 물건을 시장에 팔더라도 아주 싼값에 내놓으라고 다시 명령했다.

결국 기업들은 이익을 내지 못해 줄도산했고 시장은 있지만 물건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2억%에 이른다는 이 나라의 거대한 인플레이션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 로베스피에르의 포퓰리즘

이런 정책을 대표적인 포퓰리즘이라고 하는데 대부분 경제지식이 부족하거나 대중 영합적 정책을 펴는 과정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된다.

프랑스 혁명 이후 로베스피에르라는 혁명가도 이와 거의 비슷한 정책을 편 적이 있었다.

프랑스 혁명을 이끌었던 풍운의 혁명가였지만 대중영합적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경제를 망쳤고 결국 본인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로베스피에르는 혁명 직후 우유값이 너무 비싸서 충분히 사먹지 못하는 서민을 위해 우유값을 절반으로 낮추도록 명령했다.

그랬더니 서민들이 우유를 많이 사마시기는커녕 오히려 시장에 우유가 사라지고 말았다.

이유를 알아보니 그렇게 싼값으로는 젖소를 키우지 못한다며 농부들이 젖소 사육을 크게 줄였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을 로베스피에르는 그렇다면 젖소를 많이 키울 수 있도록 사료값을 싸게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렇게 했더니 젖소 사육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크게 줄어버렸다.

이것은 또 왜인가하고 알아보니 이번에는 그런 사료 값을 낮추면 건초로 사료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우유를 싸게 마시도록 하겠다는 로베스피에르의 정책은 이렇게 참담한 실패를 경험하고 말았다.

오늘날 짐바브웨가 한 일과 너무도 흡사했던 것이다.

⊙ 천사가 지옥을 만든다

대부분 포퓰리즘은 정치지도자의 오도된 열정이 만들어 낸다.

여기에 우선 달콤한 것이 좋다며 국민이 이런 지도자에 열광하게 되면 정치는 악순환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일을 두고 천사가 지옥을 만든다는 말을 하곤 한다.

의도가 좋다고 결과가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포퓰리즘은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국민 대중과 오도된 열정에 사로잡힌 혁명가들에 의해 심화된다.

바로 그 때문에 국가를 경영하는 일에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고 국민 역시 좋은 지도자를 구별하는 눈이 있어야 한다.

무가베는 올초 워싱턴포스트가 뽑은 세계 최악의 독재자 1위를 차지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특히 지난 3월엔 25만달러짜리 호화판 생일잔치를 벌여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이날 잔치에 참석한 그의 지지자 2000여명은 무가베가 입장하자 한목소리로 "만수무강하세요,우리의 대통령!"이라고 외쳤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이미아 한국경제신문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