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유통시장 장악하면 제조업까지 지배한다
국내 유통업의 역사는 근대화의 역사와 맞물려있다.

재래시장과 동네 가게가 책임지던 소매 유통업 구조에서 발전을 거듭해 다양한 형태의 가게와 점포들이 깔려 있다.

대형마트 백화점 편의점을 비롯해 프랜차이즈 SSM 창고매장 등 나름대로 장점을 내세운 업태들이 소비자를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더욱이 인터넷 기술이 발달하면서 온라인에서 오픈마켓,인터넷 쇼핑몰,TV 홈쇼핑 등 다양한 유통채널도 존재한다.

유통의 규모가 커진다는 것은 기회도 그만큼 많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상품의 질적 차이가 크지 않으면 승패는 유통 현장에서 일어난다.

유통 산업에 대해 알아보자.

⊙ 유통업이 제조업을 지배한다

우리나라는 1970~1980년대까지만 해도 동네 수퍼마켓과 재래시장이 대부분 유통을 책임졌다.

수퍼마켓은 불과 몇 평규모의 동네 수퍼가 대부분이었으며 기껏 크다는 상점조차 100~200평 규모의 가게였다.

물론 자영업자들이 운영했다.

이 때만 해도 제조업이 유통보다 우위에 서 있었다.

경제학적으로 공급에 비해 수요가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원료를 수입해야 했던 설탕이나 밀가루,미원 등 화학조미료는 항상 공급이 부족했다.

이들 제품을 많이 배정해주는 것은 제조업체가 유통업자에게 줄 수 있는 특혜였다.

의류나 전자제품 등 브랜드 가치가 중요했던 업체들은 직영점을 두거나 자영업자에게 대리점을 맡겼다.

삼성전자,금성사(지금의 엘지전자), 제일모직,LG패션과 같은 브랜드는 대리점을 운영하는 것 자체로 상당한 규모의 수입을 거둘 수 있었다.

유통과 제조업의 위상이 역전된 것은 1990년대 할인점이 등장하면서부터다.

유통의 대형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마이카 시대로 접어들면서 차를 가지고 다니면서 쇼핑을 했고 대량 구매,대량 판매로 가격을 낮출 수 있었던 할인점은 큰 인기를 얻어 지방 곳곳에까지 들어섰다.

그 결과 소비자들은 편한 환경에서 더 낮은 가격에 제품을 구매할 수 있었지만 재래시장과 동네 수퍼,자영업자들은 몰락하기 시작했다.

백화점,할인점,SSM 등 대형 유통업체들은 대형화를 통해 협상력을 크게 높였다.

할인점과 SSM은 가격에서부터 차별화되고 특별 할인과 경품 증정 행사를 시도 때도 없이 벌인다.

제조업체로부터 대규모로 납품 받기 때문에 납품 가격을 동네 수퍼보다 더 낮출 수 있고 경품이나 수수료,판촉비까지 부담시킬 수도 있다.

이른바 경제학에서 얘기하는 규모의 경제가 실현된 것이다.

⊙ 유통의 힘은 다른 업종에도

유통이 제조업의 우위에 섰듯이 유통의 지배력이 강화되는 현상은 산업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유통의 우위가 전반적인 추세로 나타난 것이다.

영화산업에서도 개봉영화가 스크린을 얼마나 차지했느냐에 따라 흥행실적이 큰 차이가 난다.

이 때문에 영화제작사인 CJ엔터테인먼트,롯데엔터테인먼트 등은 자체적으로 영화유통망,즉 영화관을 운용하고 있다.

CJ CGV와 롯데시네마는 각각 국내 영화관 순위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포털과 홈쇼핑도 마찬가지다.

각 포털과 옥션 G마켓 등 오픈마켓,가격비교 사이트는 인터넷 쇼핑 유통망이라고 할 수 있다.

제조업체들은 오프라인 상점을 개설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온라인 쇼핑몰에 입점할 수 있지만 이들 인터넷 쇼핑 유통망에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온라인 유통망을 장악한 업체는 소비자와 생산자를 단순히 연결만 해 주고 돈을 버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하이마트와 같은 전자양판점도 유통의 지배력이 강화되고 있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아직까지는 삼성전자 LG전자 등 제조업체들의 대리점,직영점이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고 인터넷 쇼핑이 활성화돼 있어 전자 양판점이 활성화돼 있지 않지만 일본은 대부분 전자제품이 하이마트와 같은 양판점에서 팔리고 있다.

금융상품에서도 유통의 지배력이 강화되고 있다.

은행의 보험·펀드 판매가 허용되면서 은행들은 강력한 지점망을 통해 수조원대의 금융상품 판매 수수료를 챙기고 있다.

⊙ 경쟁이 있으면 소비자는 득이다

문제는 이러한 유통의 지배력 강화가 소비자들에게 득이 되느냐다.

일부 할인점에 납품하는 업체들이 가격을 낮추는 대신 제품의 양을 줄이는 등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사례가 발견되긴 하지만 소비자들은 대부분 할인점의 가격인하로 혜택을 본다.

할인점이 소비자에게 인기를 끌며 승승장구하는 이유다.

소비자 측면에서 대형화를 반대하는 이들은 동네 수퍼나 재래시장을 망하게 한 다음 독과점 체제를 구축해 궁극적으로는 가격을 올리고 소비자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진입과 퇴출이 자유롭게 이뤄지는 시장에서 이들은 계속 서로 경쟁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다른 업체들보다 가격을 올리기 어렵고 소비자들은 종전과 마찬가지 혜택을 계속 누릴 수 있다.

할인점끼리 또는 SSM끼리 담합을 한다면(그럴 가능성은 낮지만)그것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적발해 처벌해야 할 일이다.

우리나라가 1996년 유통시장을 개방한다고 했을 때 월마트 까르푸 등 외국 대형할인점에 국내 유통시장을 죄다 내줄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그러나 결과는 토종 대형할인점의 완승이었다.

세계 1,2위 유통업체인 월마트와 까르푸는 국내에서 10년도 못 버티고 철수했고 테스코는 삼성과의 합작법인을 통해 현지화 함으로써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이마트와 롯데마트 등이 러시아와 중국 등 아시아 곳곳에 진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형화와 전문화,개방과 경쟁의 효과다.

정재형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