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합리성을 먹고 자라는 '경제학'… 위기를 겪으면서 더 단단해진다
경제학에 대한 냉소가 쏟아지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영미 대학에서 거시경제학 강의는 시간낭비였을 뿐이다.”

“로버트 배로(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경제성장론의 대가)는 정말로 바보 같은 주장만을 할 뿐이다.”

1~2년 전만 해도 이런 주장을 하면 경제학을 제대로 모르고 대가들을 비난하기만 한다는 이야기를 듣기 쉬웠다.

하지만 위의 비판들은 놀랍게도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브래드 드롱 UC버클리대 교수 등 일류 경제학자가 쏟아낸 발언들이다.

지난해 노벨상 수상자이기도한 크루그먼은 최근 런던정경대 초빙 강연에서 현재의 거시경제학이 “좋게 말해봤자 눈에 띄일 정도로 쓸모가 없고,나쁘게 말하면 극히 해롭다”고 냉소를 날렸다.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경제학이 불신어린 시선을 받는 까닭은 경제학 이론이 위기를 예측하고,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기는커녕 이번 위기의 주범 중 하나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경제학 이론을 이용해 위험을 은폐했던 최신 파생금융상품과 '시장'의 '합리성'이 규제를 불필요하게 만든다는 믿음에 대한 비판은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한 글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한때 '경제학 제국주의'라고 불릴 정도로 위세 등등했던 모습에 비해서 초라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생글 독자 여러분 중에 경제학을 공부하려는 학생들은 결코 포기하지 말라. 경제학만큼 사회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강력한 학문은 아직 없다)

⊙ 과연 경제학은 몰락?

경제학은 과연 금융위기를 맞아 몰락하고 있는 것일까.

경제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금방 깨달을 수 있다.

경제학은 하나의 고정된 이론이라기보다는 현실을 설명하기 위한 최적의 틀을 모색하는 과정이다.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경제학의 신뢰는 변하지 않지만 그것은 교조적인 신념이라기보다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프리즘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경제학 이론이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돌파구를 찾기 위한 혁신이 이뤄졌고,그 성과는 위기 이후의 새로운 경제학의 기둥이 돼왔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경제학의 시조로 손꼽히는 것은 자본주의의 등장으로 시장경제가 사람들의 살림살이에 핵심적인 지위를 차지한 현실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토머스 맬서스와 데이비드 리카도의 경제학은 영국의 무역정책을 놓고 어떤 정책이 국가와 사람들을 풍요롭게 하는지 치열하게 논쟁한 산물이었다.

이들의 경제학 체계는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대공장과 금융이 발전하면서 중요성이 커진 자본 수익과 그 움직임을 설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러한 난점을 해결하기 위해 스탠리 제번스,칼 멩거,레옹 왈라스는 거의 동시에 '한계 효용'이라는 개념을 발견하고 경제학에 도입했다.

요즘도 경제학 입문서에 등장하는 "왜 유용한 물 한잔보다 쓸모없는 다이아몬드가 더 비싼가"라는 질문에 대한 설명이 가능해진 것이다.

1929년 발생한 세계 대공황은 경제학에서 또 다른 위대한 혁신을 낳았다.

이른바 '케인스 혁명'이다.

대공황으로 시장의 자기조절 능력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가지고 있던 고전파 경제학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1933년 미국의 국민총생산(GNP)은 1929년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고,시장은 언젠가 균형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라는 당시 경제학자의 주장들에 대한 불신은 지금보다 더 심각했다.

케인스는 이때 자본의 유동선 선호이론을 바탕으로 해서 왜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불황이 발생하는지 설명해냈다.

그리고 그의 이론은 2차대전 이후 전 세계 경제학자들과 정책 당국의 매뉴얼이 됐다.

⊙ '합리적 인간관'이 근간

오늘날 경제학에 있어 가장 최근의 혁신은 1970년대 오일쇼크와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한 이후에 시작됐다.

이른바 '합리적 기대이론'이 출현한 것이다.

거대한 리바이어던(괴물)으로 떠오른 국가의 경제 조절능력에 대한 케인스주의의 신화를 무너뜨리려는 토머스 프리드먼과 시카고 학파는 '합리성'을 주된 무기로 사용했다.

가계,기업,정부가 가지고 있는 정보와, 그 정보를 바탕으로 시장 참여자들이 행동할 때 나타나는 결과가 어떻게 정부의 거시경제정책을 어긋나게 하는지가 케인스에 대한 반박의 핵심이었다.

또 이때부터 '합리성'과 '정보'가 어떻게 개인과 집단의 행동을 결정짓는지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접근이 활발하게 시작됐다.

경제학적 효용극대화를 사회학에 적용해 범죄,인구,교육 문제를 설명해낸 개리 베커는 물론이고 정치학 법학 등 인접 학문에서 경제학 방법론의 적용이 늘어났다.

또 경제학의 주제도 게임이론 조직이론 공공선택 등으로 다양하게 확장됐다.

이러한 경제학의 발전과정을 놓고 볼 때 현재의 흐름은 경제학이 발전하는 또 다른 계기로 보는 게 적절하지 않을까.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7월18일자) '경제학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경제학의 '위기'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피력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지진이 발생해야만 그 지진을 관측해 학문적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지진학과 거시경제학이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현재의 정체는 지난 20년간 거시경제학의 정체는 물가,실업률 등 경제지표가 안정돼 있었던 20년간의 '대 안정기(the great moderation)'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시장이 언제나 효율적이라는 가설의 경우 금융이론의 대부인 마이런 숄즈조차 불완전하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현재 금융경제학자들이 가장 맹렬하게 파고드는 분야가 시장효율성 가정의 문제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덧붙였다.

행동경제학이 각광받고 있는 것도 현실 설명력을 높이기 위한 경제학의 노력의 일환이다.

⊙ 단단하고 유연한 '인센티브 가정'

지금까지 살펴본 경제학의 위기와 새로운 발전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경제학의 핵심적인 가정은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애덤 스미스 이후 나타난 경제학자들은 "모두 사람들이 무엇을 하든 간에 그렇게 할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이는 "사람은 인센티브에 반응한다"는 표현으로 바꿔 말할 수 있다.

그 외의 것은 모두 부가적인 설명에 불과하다.

경제학자는 인센티브의 원칙을 어떤 경우에라도 진지하게 고집하고 집요하게 파고든다.

가령 경제사학자들은 일반적인 사학자들과 다르게 "어떤 사회제도가 이같이 비합리적인 행동을 이끌었는가?"라고 묻는 대신에 "왜 이 행동이 합리적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중세시대 서유럽 농민들이 농지를 경작하기 좋게 한번에 모아 소유하지 않고 엄청나게 분산시킨 현상에 대해 일반적인 사학자들은 사회제도,문화,낙후성 등의 결과로 풀이한다.

하지만 돈 맥클로스키 같은 경제사학자는 이런 토지 소유 형태가 일종의 '보험'이기 때문에 합리적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대규모 토지에서 나오는 효율성을 포기한 대신 자연재해의 피해를 분산시킬 수 있기 때문에 그런 토지 소유가 발달했다는 설명이다.

이는 오늘날 화재보험에 가입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제학자의 설명과 일치한다.

경제학의 강력함은 이 '인센티브 가정'의 단단함과 유연성에 있다.

사람들의 합리적 선택이 사회제도와 의사결정의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 된다는 아이디어는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적용돼왔다.

1990년대 이후 노벨 경제학자 수상자들은 경기순환 같은 기본적인 경제학 문제보다 주로 인센티브 가정을 이용해 어떻게 다양한 현실문제를 해석하고,그 예외적인 사례를 설명하는 데 공을 세운 사람들이었다.

실제 이른바 '주류' 경제학자와 '비주류' 경제학자의 차이도 흔히 생각되는 것처럼 크지 않다.

합리적으로 자신의 인센티브에 대해 반응하는 인간,즉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가 없어지지 않는 한 경제학이라는 학문의 몰락은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것은 위기를 거치면서 더 세련되고 강력해지는 경제학 이론의 발전이었다.

자, 이제 진실로 경제학을 공부해봄 직하지 않은가.

조귀동 한국경제신문 기자 claymo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