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대중'을 보는 관점 따라 직접·간접 민주주의 갈려
민주주의는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의사를 존중한다.

왕이나 귀족이 아닌 국민 스스로 주권자가 되는 것이다.

자기 통치라는 점에서 민주주의는 구성원의 참여와 자기 책임이 동시에 요구된다.

그러나 스스로를 통치한다는 것이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

아테네 식의 직접 민주주의가 정답인가 아니면 대의제 간접 민주주의가 정답인가.

대중이 지혜롭다고 생각하면 직접 민주주의를 선호하지만 대중이 어리석다고 생각하면 선거를 통해 전문가를 뽑아 통치하는 간접 민주주의를 택하게 된다.

직접 민주주의가 좋지만 현실적으로 번거롭기 때문에 간접 민주주의를 하는 것은 아니다.

대중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그 바탕에 깔려있는 것이다.

⊙ 직접 민주주의 100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시작된 직접 민주주의는 그야말로 민주 정치의 이상향이었다.

아테네인들은 대의제 민주주의 이념을 모르지 않았지만 이들은 대의제를 적용하지 않았다.

글을 쓰는 것보다 직접 대화와 말하는 것을 높은 가치라고 여겼던 아테네인들은 현실 정치에 직접 참여해 스스로의 생각을 자유스럽게 얘기했다.

아테네 인구 10만명 중 자유시민 3만명은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다.

공직은 추첨을 통해 돌아가면서 맡았고 재판에서도 무작위로 배심원을 맡았다.

때문에 그리스 민주주의는 오늘날 민주주의의 전범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직접 민주주의라고는 하지만 소수의 자유시민들만이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있었다는 점에서 오늘의 대중 사회적 상황과는 다르다.

더구나 그리스 민주주의는 때로 심각한 포퓰리즘에 빠져들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았다.

당시 아테네 사람들 모두가 직접 민주주의를 선호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철학자 플라톤은 정치가 대중 정서에 휩쓸린다는 이유로 직접 민주주의를 극히 혐오했다.

그는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분노한 시민 배심원단에 의해 독배를 마시고 죽는 사건을 계기로 민주주의를 매우 실망스런 눈으로 분석했다.

소크라테스 자신도 직접민주주의에는 반대했다.

소크라테스는 국가의 운영은 매우 전문적인 직무이므로 전문가를 선출해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에 숙명처럼 따라다니는 용어가 되었다.

⊙ 대의제 민주주의의 출현

봉건체제와 절대왕정 시대를 겪으면서 일반 대중에게는 시민의식과 국민주권 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 민주정치를 엘리트에 맡기는 대의제 민주정치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대의제 주창자들은 이론적으로 몇 가지 가정을 전제한다.

무엇보다 대중은 기본적으로 정치적 능력이 낮으며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특히 대중은 분별력이 없거나 부화뇌동하는 성격을 갖기 때문에 안정적인 국가 운영을 위해서는 전문가를 뽑아 그들에게 일정 기간 정치를 맡기는 대의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퍼슨에 이어 미국 4대 대통령을 지낸 제임스 매디슨은 "나라가 광대하기 때문에 기술적인 이유에 의해 대의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대의제가 고대의 직접 민주정보다 우수한 정치체제이기 때문에 채택하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대의제에서는 일반인들의 열정에 의한 감성적 판단보다 우월한 합리적 판단이 도출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 선거와 투표의 한계

작은 학급에서조차 학급 내 모든 일을 전원이 매번 표결을 통해 처리하기란 쉽지 않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민주주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 간 동질성이 있어야 하고 구성원들이 질서정연한 가치 판단을 내릴 만한 지적 역량이 있어야 한다.

구성원들이 완전히 이질적인 투표를 하면 엉뚱한 사람이 당첨된다.

투표순서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경우도 흔한 일이다.

이를 콩도르세의 역설 또는 투표의 역설이라고 한다.

노벨 경제학 수상자인 캐네스 애로는 민주주의가 전제로 하는 합리적 의사결정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합리적 의사결정이 가능하려면 구성원들이 독립적이며 가치판단에 일관성이 있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뭉개고자 하는 독재자가 없어야 하는 등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이런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민주적 투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복잡한 수식으로 풀었던 것이다.

컴퓨터의 발전과 인터넷의 등장으로 집단지성이 현실화되고 개인의 생각이나 사고가 곧바로 전파될 수 있는 실질적인 직접 민주정치 시대가 왔다고 얘기한다.

의사소통을 막는 거리와 시간의 문제가 해결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인터넷 토론광장을 이끌고 있는 것도 소수에 의해서라는 것이 최근 연구결과 밝혀지고 있다.

대중 독재나 포퓰리즘의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 민주주의와 직접행동

문제는 대의제가 국민의 정치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이때는 국민들의 거리에 나와 집회를 갖거나 시위를 벌이면서 자신의 정치적 발언권을 행사한다.

이를 직접행동이라고 말한다.

영국의 정치학자 에이프릴 카터는 "선거로 뽑은 국회의원에게 정치를 맡기는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민의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대중의 직접 행동이 이를 보완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직접 행동은 이익단체들이 주도하기 때문에 이를 무한정 인정할 경우 국가 공동 이익은 침해당하는 경우도 많다.

미국의 정치학자 포퍼는 "민주주의는 피를 흘리지 않고, 예컨대 선거를 통해 정부를 갈아치울 수 있는 정치체제"의 줄임말이라고 했다.

민주주의는 과연 어떤 것인가, 어떤 민주주의가 좋은가를 둘러싼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대중에 대한 논쟁도 마찬가지다.

오춘호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