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정규직 의무전환 앞두고 고민 또 고민”
[Cover Story] 현실과 동떨어진 비정규직법 대량해고 위기 ‘부메랑’
'비정규직'문제는 2000년대 들어 노동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2006년 '비정규직 보호법'을 마련하는 등 정부와 정치권이 해결책 찾기에 나섰지만 오히려 문제를 더 키우는 꼴이 됐다.

당초 비정규직법은 비정규직을 보호하고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유도하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하지만 법 제정 이후 비정규직 대량 해고(계약해지)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법을 만든다고 현실이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셈이다.

오는 7월1일이면 법이 시행된 지 2년이 된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기간이 2년으로 제한된 만큼 경영자들은 그 전에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인지, 아니면 해고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경제위기까지 겹쳐 상당수가 해고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렇지 않아도 대부분 서민들의 일자리인 비정규직에서 대량해고가 터지면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더욱 어려워 진다.

정부는 해고 사태를 막기 위해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여당과 야당, 정부, 노동계가 서로 다른 안을 제시하고 있어 좀처럼 해법을 찾기 힘들다.

비정규직법이 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어떤 쟁점 사항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 문제 안고 태어난 비정규직법

비정규직 개념은 국제적 기준이 없다보니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도 정부와 노동계가 정의를 다르게 내리고 있다.

정부는 비정규직 근로자 전체 숫자를 564만명으로 추산하는 반면 노동계는 861만명이라고 본다.

이처럼 차이가 나는 것은 약 300만명에 달하는 취약근로 계층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기간제도 한시적 근로자도 아닌 식당에서 자고 먹으며 일하는 아주머니, 여관에서 먹고 자는 조바 등 최하층 근로자들이 포함된다.

근로 계약도 없이 하루하루 일하는 그런 일자리들이다.

비정규직법은 이러한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졌지만 처음부터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특히 비정규직 보호보다는 해고 사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그 우려는 홈에버 사태를 통해 현실화됐다.

2007년 7월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홈에버가 5월 전국 32개 매장에서 주차요원과 카트 직원 등 비정규직 600여명을 감원한 것이다.

6월에는 뉴코아가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 중 521명만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350명을 감원했다.

당시 이 때문에 노조의 매장 점거 등 극심한 노사 갈등이 나타나기도 했다.

법 시행 전부터 이처럼 대량 해고가 터져나오자 법 시행 2년 후에는 더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비정규직법에 따르면 비정규직 근로자를 고용한 경영자들은 계약 후 2년이 되기 전까지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든지 아니면 해고해야 한다.

특히 지금처럼 경영 사정이 어려울 때는 정규직 전환보다는 해고 쪽의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최근 각종 조사에 따르면 전환보다는 감원을 택하겠다는 경영진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비정규직법이 2007년 7월 시행된 만큼 2년째가 되는 오는 7월1일부터 대상자들이 쏟아져 나온다.

비정규직법이 대량 해고 사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정부는 지난해부터 개정안 마련에 들어갔다.

지난해 11월부터 비정규직법 개정안의 윤곽을 잡고 지난 4월 초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는 4월 국회에서 이 법안이 통과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야당이 반대하고 여당인 한나라당도 미온적인 반응을 보인 탓에 통과되지 못했다.

6월 국회는 개원마저 늦어지면서 상정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 주요 쟁점

정부가 내놓은 개정안은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기간을 지금의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우선 고용기간을 늘림으로써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당장 해고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숨통을 터준다는 의도다.

또 4년가량 일을 하면 경력과 숙련도가 높아져 경영자 입장에서도 해고하기보다는 정규직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고 정부는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각 당과 노동계 등 이해당사자들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선 여당인 한나라당은 고용기간은 2년으로 유지하되 대신 정규직 전환 여부 결정 시기를 2년 뒤인 2011년 7월로 미루자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을 포함한 야당은 정부의 개정안이나 여당의 유예안 모두 미봉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추가 비용이 들어가기 마련인데, 시기를 뒤로 미룬다고 해서 전환해주겠느냐는 논리다.

따라서 비정규직법을 그대로 시행하되 기업에 지원금을 주는 방식으로 정규직 전환을 유도하자는 입장이다.

양대 노총 중 하나인 한국노총도 야당과 비슷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반면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신 출산이나 육아휴직 등 꼭 필요한 사유가 있을 때만 기간제 노동자를 채용하는 사유제한을 도입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또 재계는 기간 제한을 폐지하거나 계약 당사자 간의 자율적 합의로 사용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 유연성이 확보돼야 전체 고용이 늘고 고용 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논리다.

정규직 전환 지원금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기업들이 감원 대상자를 지원금 때문에 정규직으로 채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미 정규직 전환을 고려하는 기업만 도와주는 꼴이 된다"는 설명이다.

그럼, 당사자인 비정규직들은 어떨까?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기간 연장이나 유예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물론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좋겠지만 일단은 해고를 면하는 것이 급선무기 때문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목소리를 높이는 동안 7월1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6월 국회에서 어떻게든 결론짓지 않으면 정작 피해를 보는 쪽은 생계 위협을 느낄 수도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 그리고 숙련된 인력을 어쩔 수 없이 해고해야만 하는 기업이다.

정치권은 최근 여야 3당과 양대 노총이 참여하는 연석회의를 열기로 합의하는 등 논의에 나서고 있지만 남은 기간이 촉박해 7월1일 이전에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고경봉 한국경제신문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