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경기 악화 된 상황서 기업생존도 큰 문제”

정규직·비정규직간 고용조건 불평등이 원인
[Cover Story] 고용 유연성 바탕위에 일자리 안정 이끌어내야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자리가 안정되어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한 직장에 속하기를 싫어하고 일감이 있는 대로 자신의 능력껏 일해 생활하려는 자유로운 상태를 좋아하는 사람도 물론 없지는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정된 일자리와 안정된 수입을 원한다.

가정을 꾸린 사람은 물론이고 자기실현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근로자를 고용하는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근로자들이 열심히 일하고 숙련된 기술을 갖고 회사에 헌신하기를 대부분 기업들은 바란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의 희망처럼 돌아가지 않는다.

우선 기업들은 경제 사정에 따라 유연하게 근로자를 고용할 수밖에 없다.

경기가 나빠 일감이 없는데 월급을 주여야할 근로자가 많다면 기업으로서는 견디기 어렵다.

경기가 악화되면서 많은 기업체 사장들이 직원보기 민망하다거나 직원이 빚쟁이처럼 여겨진다고 괴로워하는 것이 이런 이유에서다.

일감이 얼마나 확보될지 모르는 그리고 경기변동에 따라 사업수익이 들쭉날쭉하는 성격의 기업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바로 여기에 노동시장의 고민이 있다.

기업 형태와 근로자의 성격에 따라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기업들은 유연하게 근로자를 쓰고 싶고 대부분 근로자는 안정된 직장이기를 원하는 것이 기본이다.

여기서 유연하다는 말은 근로자를 쉽게 해고할 수 있는 동시에 쉽게 고용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기업가와 근로자 아닌 사회 전체적으로는 실업자가 적고 대부분 사람들이 어떤 형태건 소득을 올리는 그런 총량적 고용안정 상태를 바란다.

⊙ 기업이 효율적이려면…

노동시장 유연성은 기업의 효율성을 판단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

경기변동이나 소비자 기호의 변화,경쟁업체 출현 등 경영 환경의 급변에 대응하려면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

기업의 유연성에는 노동의 유연성도 필수적이다.

노동 유연성은 크게 고용의 유연성과 업무의 유연성 두 가지로 나뉜다.

전자를 수량적 유연성이라고도 하는데 기업의 수요 변화에 따라 근로자 수를 신축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즉 경기가 좋을 때는 일하는 사람의 숫자를 늘리고 경기가 악화되면 쉽게 해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파견근로자를 활용하거나 외부업체에 도급을 맡기는 것도 수량적 유연성의 일종이다.

업무의 유연성은 기능적 유연성이라고도 하는데 다기능화,숙련화 등으로 근로자들의 업무 수행 유연성을 높이는 것을 말한다.

근로자가 여러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해 생산과정의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한다.

자동차 공장에서 요즘 잘 팔리지 않는 경유차 등의 생산라인을 잘 팔리는 소형차나 경차 생산라인으로 바꾸는 전환배치도 기능적 유연성의 사례다.

최근 기능적 유연성이 강조되는 것은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가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로 바뀌면서 탄력적인 업무수행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 고용안정도 중요

노동시장을 유연화해 기업들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용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 역시 소중한 가치다.

당장 내일 또는 1년 후 직장을 잃게 된다고 한다면 근로자들의 삶은 근본적으로 불안해진다.

새 직장을 얻기 쉽지 않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 전에만 해도 일본식의 '평생 직장' 개념이 일반적이었다.

한 직장에 들어가면 퇴직할 때까지 그 직장에 다니다가 은퇴하는 것이다.

종신고용제도는 조직에 대한 충성도를 높일 수 있지만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기업의 효율성을 갉아먹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문제점

기업들은 기본적으로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노동 유연성을 높이는 것은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 중 하나다.

기업들의 행태가 잘못됐다고 욕을 할 수만은 없다.

그럼 뭐가 문제일까.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사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강력하게 조직화된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와 중소기업 혹은 하청기업의 열악한 비정규직 근로자의 이중구조로 되어있다는 점이다.

민노총 등 대기업 노조에 속한 정규직 근로자들은 요구를 쉽게 관철시킬 수 있는 데 반해 비정규직이나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매우 불리한 위치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대기업 근로자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이나 복지 혜택을 누리는 반면 비정규직은 매우 열악한 임금 구조를 감수하고 있다.

실제로 대부분 기업들은 노조의 강력한 파업으로 올려준 임금을 보전하기 위해 하청업체의 납품단가를 깎고 저임의 비정규직을 늘리는 방법을 써왔던 것이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노조가 있는 대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차이가 30%로 크게 차이가 나게된 것도 이 때문이다.

⊙ 노동시장 내부의 균형이 필요

물론 기업이 정규직 임금을 올려줄 때 비정규직도 같이 올려준다면 비정규직 차별 따위의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 기업은 이때 발생하는 임금 부담을 결코 견뎌내지 못한다는 데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힘이 센 그룹에 생산성보다 더 많이 준 임금을 힘이 약한 그룹에 생산성보다 낮은 임금을 주면서 해결하는 셈이다.

또 많은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것을 기피하는 대신 비정규직만 낮은 임금으로 고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시장 내부의 이 같은 이중구조를 해소하는 것이 더욱 급선무라는 주장도 많다.

그렇게 하려면 정규직 강성 노조가 양보하지 않으면 안되고 임금은 생산성에 수렴해야 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노조가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기업이 적정 이윤을 거두면서 계속 살아남고 또 신규 기술 · 설비 투자를 하며 근로자를 고용하는 노동의 안정성 문제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유연성을 통한 안정을 달성해가야 한다는 것이다.

정재형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