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가난에 찌들고 더럽고… 100년전 한국!
"한국은 양반 계급의 착취,관공서의 가혹한 세금,총체적인 정의의 부재,모든 벌이의 불안정,비개혁적인 정책 수행,음모로 물든 고위 공직자의 약탈 행위,하찮은 후궁들과 궁전에 한거하면서 쇠약해진 군주,널리 퍼져 있으며 민중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미신,그리고 자원 없고 음울한 더러움의 사태에 처해 있다."

영국의 지리학자이자 여행작가로 구한말 일본 중국 중동 등 세계 각처를 탐사한 이사벨라 비숍(1831~1904)은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이라는 책에서 1890년대 한국의 모습을 이처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부끄러운 기록이다.

이사벨라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한국은 도로 등 인프라가 거의 없고 어업 광업도 미미한 수준이었다.

공업이라 할 만한 것도 없었다.

농업만이 적잖은 수확을 거두고 있었지만 비료를 사용하지 않았고 논밭에 김을 매줘야 할 잡초가 남아 있는 등 정리돼 있지 않았다.

특히 양반과 관료들의 착취가 일반 백성들이 열심히 일할 욕구를 좌절시키고 있었다.

이랬던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에 비자발적인 근대화의 길을 걷게 된다.

공업화가 시작됐고 토지조사 사업을 통해 근대적 소유관계가 확립됐다.

학교가 설립돼 근대적인 교육체제가 만들어졌고 수레가 다닐 수 있는 길과 철도 등 기반시설이 만들어졌다.

1945년 해방과 그 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산업기반이 대부분 파괴됐지만 일제 강점기에 구축됐던 제도들,즉 교육 관료제 치안 군대 등의 경험은 그대로 남았다.

그 기반 위에서 박정희 체제의 개발독재가 진행됐고 산업화의 길에 들어선다.

섬유 등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시작했던 산업화는 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으로 커다란 전기를 맞게 된다.

1980년대 이후에는 민주화도 진전돼 절차적 민주주의를 달성했다.

우리가 굳이 비숍 여사의 옛날 이야기를 기억하고자 하는 것은 마치 과거에는 빈부격차가 없고 거지가 없는, 공동체적 가치를 지향하는 사회가 시장경제와 산업화가 세상을 고단하게 만들고 있는 것처럼 선전 공세를 펴는 잘못된 역사관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00년 만에 근대화,산업화,민주화를 모두 이뤄낸,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국가다.

캄보디아 베트남 르완다 등 많은 저개발 국가들이 우리나라를 자신들의 경제성장 모델로 삼고 있다.

새마을운동이나 정보기술(IT) 등을 배우러 우리나라를 찾는다.

이번 호에서는 이사벨라 비숍의 책을 통해 구한말 당시 우리나라의 모습을 제대로 알아보고 우리가 110여년 만에 어떻게 탈바꿈했는지,그 저력은 무엇인지 자세히 살펴보자.

부끄러운 역사가 아니라 자랑스러운 역사라는 것을 알아야 비로소 더 좋은 미래를 꿈꿀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재형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