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안락死 허용하는 노령화 시대
대법원이 지난 21일 품위있게 죽을 권리인 '존엄사'를 허용한다는 확정 판결을 내렸다.

환자 김모씨(76 · 여)가 지난해 2월18일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지 459일,그 해 5월9일 숱한 논란 속에 유가족이 '호흡기를 떼게 해 달라'며 첫 가처분 신청을 낸 지 378일 만이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에 진입했고,연명치료를 중단하고자 하는 의사가 있을 것으로 추정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1,2심 재판부가 제시한 치료 중단 허용 요건인 △회생 가능성 없는 사망 과정에 진입한 것인지 여부 △환자의 의사(意思) △중단을 구하는 연명치료 행위 △의사(醫師)에 의한 실행 등 4가지를 인정했다.

아울러 "이같은 허용 기준에 부합되는 한 반드시 소송절차를 거칠 필요 없이 그 치료중단이 허용된다"고 판시했다.

다만 "그 경우에도 환자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르렀는지 여부에 관해서는 전문의사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의 판단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우리 사회가 이처럼 존엄사를 허용한 것은 고지식하게 '인간 생명의 신성성'을 강조하기보다 '환자 본인이나 가족의 선택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뿐일까.

각 시대의 사상과 문화,관습은 사회적 · 경제적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힘들다.

세계적으로 안락사와 낙태에 대한 긍정적 여론이 확산된 것은 1970년대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베이비붐 세대가 성인이 되는 시점이었다.

안락사 논의가 활발했던 1930년대도 대공황으로 인해 경제가 극심한 침체기에 빠졌던 때다.

최근 각국에서 존엄사가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인구 노령화로 인한 부담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연명 치료가 무의미한 불치 환자가 병원 침상을 차지하고 있다면 의료보험 등 의료 재정의 부담은 물론 의료 자원을 효율적으로,즉 생존 가능한 환자에 집중해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네덜란드에서 허용돼 있는 것처럼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약물 주사 등으로 죽음을 앞당기는 '적극적 안락사'는 아니다.

앞으로 남은 문제는 자의적인 해석이 불가능하도록 존엄사에 대한 구체적이고 공정한 기준을 만들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또 이를 법으로 제정해야 하는지 여부도 따져봐야 한다.

현재 존엄사 허용의 대상과 세부기준에 대해서는 한나라당 신상진 의원 등이 존엄사법 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안락사의 역사에 대해 공부해보자.

또 정신적 가치인 윤리가 경제적 사회적 조건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 지도 살펴보자.

안락사와 관련된 논리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정재형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