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사상 퍼진 중세·근대에선 안락사·낙태 죄악시
안락사와 낙태는 인간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중단시킨다는 점에서 윤리적 · 철학적인 문제를 내포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는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 때부터 논의됐을 만큼 역사가 오래된 주제다.
안락사와 낙태에 대한 견해가 시대별로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알아보자.
⊙ 고대-영아 살해도 용인
안락사 문제는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논의됐다.
기원전 4세기 무렵 그리스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는 "나는 누구에게도 독약을 주지 않을 것이며 요청을 받더라도 그런 계획을 제안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당시의 철학자들은 나이 많은 노인이나 병자들이 고통 없이 죽음을 맞도록 하는 문제보다 생존가치가 없는 어린아이의 살해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플라톤은 의술이란 '본성적으로' 몸이 건강하면서 단지 몇몇 특수한 질병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아스클레피오스(그리스 신화에서 의술의 신)가 내려준 것이라며 태생적으로 건강하지 않거나 고질병에 걸린 사람은 치료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삶에서 어떤 고통이나 쾌락을 느낄 수 없다면 살해되는 것이 생존하는 것보다 선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산아제한이라는 개념을 제안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두 철학자는 모두 기형아를 기르지 말고 탄생 후 즉시 버려야 한다고 봤다.
플라톤은 어머니가 40세 이상이면 (아이가 허약하므로) 낙태 또는 영아살해를 해야 한다고 쓰기도 했다.
이런 주장은 아테네와 함께 번창했던 그리스 도시국가 스파르타에서 실제로 행해졌다. (스파르타 역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 '300' 첫 부분에도 이런 얘기가 나온다.)
로마시대 철학자 세네카도 안락사에 찬성했고 나중에는 정치적 이유로 자살했다.
⊙ 중세 · 근대-기독교의 생명존중
그러나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낙태나 영아살해 안락사 등이 모두 금기시되었다.
안락사든 자살이든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이 주신 것이므로 인간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다고 인식되었다.
세월이 흘러 르네상스 시대(14~16세기)에 접어 들어 안락사에 대한 조심스런 허용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1516년 발표)에서 중환자 스스로 고통 없는 자살을 선택할 수 있거나 성직자의 승인을 얻어 환자의 생명을 끓을 수 있는 이상향의 사회를 보여줬다.
안락사를 허용하자는 주장은 계몽주의 철학이 등장하면서 차츰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1794년 프로이센법은 치명상을 입은 환자를 선한 의도에서 살해했을 경우 단순 과실범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 현대-인권 vs 나치 사례와 종교
18세기 말 시민혁명의 영향으로 인권을 강조하는 인도주의가 대두되고 의료기술도 급속히 발전해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적극적 안락사를 인정하는 흐름이 일어났다.
20세기 들어 이러한 흐름은 안락사 합법화 주장으로 이어졌다.
193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는 '자발적 안락사 입법추진회''안락사협의회'가 잇따라 발족돼 안락사 합법화 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졌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은 곧 위기를 맞았다.
2차 세계대전 중 안락사를 악용한 나치의 잔학행위가 유럽의 중부와 동부로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의사들에게 신체적,정신적으로 장애를 가진 이들을 죽이는 것을 허락했고, 그 결과 독일 안팎의 병원과 수용소에서 20만명의 성인과 아이들이 굶주림과 가스 실험,총살,치명적인 주사약 투입으로 목숨을 잃었다.
나치의 안락사 허용 조치는 이들이 '인종적으로 부적절'하다고 여겼던 집시,폴란드인,유대인들을 잔인하게 학살한 홀로코스트와도 깊이 관련돼 있다.
안락사 지지 세력은 그후 20년 동안 지위가 급격히 하락했다.
로마 가톨릭 교회를 비롯한 전통적인 안락사 반대론자들은 나치의 사례를 들며 안락사 합법화가 엄청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안락사를 입법화하려는 노력은 1960년대까지 거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안락사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은 다시 지지를 얻고 있다.
말기 환자 치료를 위한 의료 기술의 혁신적인 발전 덕분에,환자가 원치 않은 불필요한 치료를 놓고 논쟁의 불이 붙은 것이다.
쓸데 없는 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환자의 '죽을 수 있는 권리'(right to die)라는 표현이 설득력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 최근-존엄사는 허용 추세
1970년대에 들어 인권 의식이 더욱 성장하면서 안락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바뀌어갔다.
미국에서는 1975년의 카렌 퀸란 사건이 세계적인 안락사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인공호흡기를 단 채 무의식 상태에서 죽어가는 딸의 모습에 충격받은 부모가 치료 중단을 요구하자 법원은 인간답게 죽을 권리가 있다며 인공호흡기 제거를 허락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를 계기로 오하이오 몬태나 위스콘신 델웨어 하와이 워싱턴 등의 주에서 소극적 안락사인 존엄사를 포함한 안락사 법안이 주민 투표에 부쳐지는 등 안락사 운동이 활발해졌다.
1990년대에는 일부 국가에서 안락사 법이 합법화되는 사례도 나타났다.
1996년 호주 북부 주에서 최초의 안락사 법이 만들어졌지만 1년도 안 돼 폐기됐다.
1998년 미국 오리건 주에서 주민투표를 거쳐 안락사 법을 시행했으나 1999년 폐기됐다.
안락사 법을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네덜란드로 2002년 안락사 법을 만들어 현재도 집행하고 있다.
안락사에 대해서는 세계 각국이 아직까지 조심스런 입장인 셈이다.
그러나 소극적 안락사인 존엄사는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미국 49개주와 일본에서는 건강할 때 존엄한 죽음을 원한다는 의사 표시를 해두면 의사가 이를 받아들이는 '리빙 윌'(living will) 형태로 시행되고 있다.
정재형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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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락사가 뭐지?
안락사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적극적 안락사,즉 죽음에 임박한 환자의 극심한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약물 투여 또는 치명적 주사약을 주사하는 것을 뜻한다.
소극적 안락사 또는 존엄사는 불치 환자나 식물인간 상태 환자에 대해 치료 중단 등 생명연장을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이다.
적극적 안락사는 죽음을 인위적으로 앞당기는 반면 존엄사는 자연스런 죽음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안락사와 낙태는 인간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중단시킨다는 점에서 윤리적 · 철학적인 문제를 내포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는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 때부터 논의됐을 만큼 역사가 오래된 주제다.
안락사와 낙태에 대한 견해가 시대별로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알아보자.
⊙ 고대-영아 살해도 용인
안락사 문제는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논의됐다.
기원전 4세기 무렵 그리스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는 "나는 누구에게도 독약을 주지 않을 것이며 요청을 받더라도 그런 계획을 제안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당시의 철학자들은 나이 많은 노인이나 병자들이 고통 없이 죽음을 맞도록 하는 문제보다 생존가치가 없는 어린아이의 살해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플라톤은 의술이란 '본성적으로' 몸이 건강하면서 단지 몇몇 특수한 질병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아스클레피오스(그리스 신화에서 의술의 신)가 내려준 것이라며 태생적으로 건강하지 않거나 고질병에 걸린 사람은 치료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삶에서 어떤 고통이나 쾌락을 느낄 수 없다면 살해되는 것이 생존하는 것보다 선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산아제한이라는 개념을 제안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두 철학자는 모두 기형아를 기르지 말고 탄생 후 즉시 버려야 한다고 봤다.
플라톤은 어머니가 40세 이상이면 (아이가 허약하므로) 낙태 또는 영아살해를 해야 한다고 쓰기도 했다.
이런 주장은 아테네와 함께 번창했던 그리스 도시국가 스파르타에서 실제로 행해졌다. (스파르타 역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 '300' 첫 부분에도 이런 얘기가 나온다.)
로마시대 철학자 세네카도 안락사에 찬성했고 나중에는 정치적 이유로 자살했다.
⊙ 중세 · 근대-기독교의 생명존중
그러나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낙태나 영아살해 안락사 등이 모두 금기시되었다.
안락사든 자살이든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이 주신 것이므로 인간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다고 인식되었다.
세월이 흘러 르네상스 시대(14~16세기)에 접어 들어 안락사에 대한 조심스런 허용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1516년 발표)에서 중환자 스스로 고통 없는 자살을 선택할 수 있거나 성직자의 승인을 얻어 환자의 생명을 끓을 수 있는 이상향의 사회를 보여줬다.
안락사를 허용하자는 주장은 계몽주의 철학이 등장하면서 차츰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1794년 프로이센법은 치명상을 입은 환자를 선한 의도에서 살해했을 경우 단순 과실범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 현대-인권 vs 나치 사례와 종교
18세기 말 시민혁명의 영향으로 인권을 강조하는 인도주의가 대두되고 의료기술도 급속히 발전해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적극적 안락사를 인정하는 흐름이 일어났다.
20세기 들어 이러한 흐름은 안락사 합법화 주장으로 이어졌다.
193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는 '자발적 안락사 입법추진회''안락사협의회'가 잇따라 발족돼 안락사 합법화 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졌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은 곧 위기를 맞았다.
2차 세계대전 중 안락사를 악용한 나치의 잔학행위가 유럽의 중부와 동부로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의사들에게 신체적,정신적으로 장애를 가진 이들을 죽이는 것을 허락했고, 그 결과 독일 안팎의 병원과 수용소에서 20만명의 성인과 아이들이 굶주림과 가스 실험,총살,치명적인 주사약 투입으로 목숨을 잃었다.
나치의 안락사 허용 조치는 이들이 '인종적으로 부적절'하다고 여겼던 집시,폴란드인,유대인들을 잔인하게 학살한 홀로코스트와도 깊이 관련돼 있다.
안락사 지지 세력은 그후 20년 동안 지위가 급격히 하락했다.
로마 가톨릭 교회를 비롯한 전통적인 안락사 반대론자들은 나치의 사례를 들며 안락사 합법화가 엄청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안락사를 입법화하려는 노력은 1960년대까지 거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안락사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은 다시 지지를 얻고 있다.
말기 환자 치료를 위한 의료 기술의 혁신적인 발전 덕분에,환자가 원치 않은 불필요한 치료를 놓고 논쟁의 불이 붙은 것이다.
쓸데 없는 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환자의 '죽을 수 있는 권리'(right to die)라는 표현이 설득력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 최근-존엄사는 허용 추세
1970년대에 들어 인권 의식이 더욱 성장하면서 안락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바뀌어갔다.
미국에서는 1975년의 카렌 퀸란 사건이 세계적인 안락사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인공호흡기를 단 채 무의식 상태에서 죽어가는 딸의 모습에 충격받은 부모가 치료 중단을 요구하자 법원은 인간답게 죽을 권리가 있다며 인공호흡기 제거를 허락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를 계기로 오하이오 몬태나 위스콘신 델웨어 하와이 워싱턴 등의 주에서 소극적 안락사인 존엄사를 포함한 안락사 법안이 주민 투표에 부쳐지는 등 안락사 운동이 활발해졌다.
1990년대에는 일부 국가에서 안락사 법이 합법화되는 사례도 나타났다.
1996년 호주 북부 주에서 최초의 안락사 법이 만들어졌지만 1년도 안 돼 폐기됐다.
1998년 미국 오리건 주에서 주민투표를 거쳐 안락사 법을 시행했으나 1999년 폐기됐다.
안락사 법을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네덜란드로 2002년 안락사 법을 만들어 현재도 집행하고 있다.
안락사에 대해서는 세계 각국이 아직까지 조심스런 입장인 셈이다.
그러나 소극적 안락사인 존엄사는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미국 49개주와 일본에서는 건강할 때 존엄한 죽음을 원한다는 의사 표시를 해두면 의사가 이를 받아들이는 '리빙 윌'(living will) 형태로 시행되고 있다.
정재형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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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락사가 뭐지?
안락사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적극적 안락사,즉 죽음에 임박한 환자의 극심한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약물 투여 또는 치명적 주사약을 주사하는 것을 뜻한다.
소극적 안락사 또는 존엄사는 불치 환자나 식물인간 상태 환자에 대해 치료 중단 등 생명연장을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이다.
적극적 안락사는 죽음을 인위적으로 앞당기는 반면 존엄사는 자연스런 죽음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