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 다루듯 리스크 관리하라"
[Cover Story] 로켓공학자들이 美 금융가에서 일한다?
로켓 공학자들이 금융가에서 일한다?

미국 금융시장에는 인도 출신 수학 천재들이 많이 근무한다.

생글 학생 여러분 중에 수학에 뛰어난 재능이 있다면 아마 나중에 미국의 금융중심지인 월가에서 수십억원의 연봉을 받으며 근무할 사람도 나올 것이다.

그러면 이 천재 수학자들은 월가에서 무엇을 하나.

이들은 대부분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로켓공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로켓공학은 수학 분야 중 특히 미분을 잘해야 한다.

로켓은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아가는데 이 포물선을 설계하고 적절한 연료에 의해 일정한 포물선을 그리도록 날아가도록 유도하는 것이 로켓공학이다.

무조건 멀리 날아간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목표지점에 떨어지도록 포물선을 관리하는 것이 로켓공학이다.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이 정말 위험한 것은 아무도 떨어지는 장소를 모르기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 것도 이런 사정을 말하는 것이다.

⊙ 인도 출신 로켓 공학자들

그런데 이 로켓공학과 금융시장은 도대체 어떤 관계에 있을까.

고등학교에서 미분의 기초를 골머리를 앓면서 배우는 학생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이야기지만 주의 깊게 들어보자.

어떤 기업이 자금이 필요하면 채권을 발행해 투자자에게 팔아 자금을 조달한다.

채권은 장래의 어느 시점에 빌린 돈을 갚겠다고 약속하는 증서를 일정한 법적 양식에 따라 규격화해 만든 것을 말한다.

투자자들은 이 채권을 사서 만기까지 보유하고 있다가 이자와 원금을 상환받거나 아니면 중간에 다른 제3의 투자자에게 팔아 자금을 회수한다.

3년 후에 1억원을 받기로 하는 채권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이 채권의 현재 가격은 8000만원이라고 하자.

지금 이 채권에 투자하면 3년 만에 2000만원을 벌게 되고 이때 수익률을 계산하면 대략 연 7.7%가 된다.

채권을 발행해 돈을 빌리는 사람도 계산은 같다.

3년 후에 1억원을 갚기로 하고 지금 8000만원을 빌리는 셈인데 이자는 7.7%가 되는 것이다.

수익률이 곧 이자인 것이다.

그런데 채권 가격은 여러 가지 복잡한 이유로 오르고 내리는 것이 보통이다.

시중에 돈이 말라 아무도 채권을 사주지 않는다면 채권 가격은 떨어진다.

다시 말해 3년 후 1억원을 받는 채권이 8000만원이 아니라 7000만원, 6000만원식으로 떨어진다.

이 경우에는 채권수익률은 19%까지 높아진다.

채권을 발행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3년 후 1억원을 갚기로 하고 6000만원밖에 빌리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채권을 사겠다는 투자자가 늘어나면 수익률은 낮아지고 투자자가 적으면 수익률은 높아진다.

이 수익률을 만기에 따라 점점이 2차원 좌표상에 옮겨 놓으면 정확하게 포물선 형태의 그림이 나온다. (이제 이해하셨지?)

바로 이 때문에 첨단금융기법으로 무장한 미국의 세계 금융중심지에서는 로켓공학을 공부한 천재들이 매일매일 이 포물선을 그리면서 다양한 금융상품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 탐욕에 눈이 멀어

최근 세계적인 금융위기는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부터 출발했다고 한다.

그런데 주택을 담보로 대출받은 사람들이 주택가격이 떨어져 대출금을 갚지 못하게 되자 주택금융회사는 물론 리먼브러더스와 같은 세계적 금융사가 망하고 대형 보험사인 AIG까지 무너지게 된 것이다.

사태가 이처럼 크게 확산된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 중 하나가 우리가 위에서 읽었던 채권보다 훨씬 복잡한 신용부도스와프(CDS)나 부채담보부증권(CDO) 같은 신용 파생상품들이다.

서브프라임 대출은 이자가 높았고 이 높은 이자 수익을 올리기 위해 수많은 금융기관들이 앞다퉈 몰려들었다.

그런데 금융기관은 돈을 빌려 간 사람들이 혹시 돈을 못 갚을 경우에 대비해 다양한 파생상품을 만들어내면서 투자자들을 끌어모았는데 여기서 다양한 로켓공학이 응용됐다.

물론 공학자들은 여러 가지 요인을 고려해 위험을 최소화한 상품을 만들어 냈다고 자신했지만 결과는 처참한 파국으로 연결되고 말았다.

일부 공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을 받아간 사람들이 돈을 갚지 못하고, 그리되면 돈을 빌려준 금융사들이 돈을 받지 못하고, 이번에는 금융사에 돈을 빌려준 사람들이 부도나고, 그렇게 돼서 금융시장 전체에 위기가 닥칠 가능성이 0.0001%였다고 하지만 결국 이 위험이 터지고 말았던 것이다.

포물선을 설계하는 것에 잘못이 있었을까.

아니면 로켓이 날아가는 과정에서 태풍이 불고 기압대가 바뀌는 등의 위험을 잘못 계산한 것일까.

⊙ 스트레스 테스트

이번 위기의 근본 원인은 역시 리스크 관리가 잘못된 것이다.

감수할 수 있는 위험보다도 훨씬 더 높은 수익을 추구한 탓이다.

금융사들은 물론 공학자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리스크와 수익 간 상충관계를 분석하고 또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방법으로 위험을 분산시킨다.

그러나 역시 본질적인 원인은 위험에 둔감한 '탐욕' 때문이었을 것이다.

계산은 틀려버리고 말았다.

미국 정부는 지금도 어디서 잘못이 있었는지를 파악하는 중이다.

또 장차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금융기관들이 어느 정도까지 위험 상황에서 견딜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스트레스 테스트도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스트레스 테스트는 지진 테스트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인간의 역사는 위험을 감수하고 거기에 맞서는 긴 여정이라는 생각도 든다.

정재형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jh@hankyung.com


리스크메트릭스 (RiskMetrics Group) 리스크 관리 9가지 규칙

1. 리스크 없이는 수익도 없다. 리스크를 지는 자만이 추가 수익 얻는다.

2. 투명하게 하라. 리스크가 완전히(fully) 이해돼야 한다.

3. 경험을 중시하라. 리스크는 결국 사람이 측정하고 관리한다.

4. 당신이 모르는 게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5. 대화하라(communicate). 리스크는 공개적으로 토론돼야 한다.

6. 분산하라.

7. 일관적이고(consistent) 엄격한(rigorous) 규칙(discipline)을 제시하라.

8. 상식(common sense)을 사용하라.

9. 수익은 고려 대상의 절반일 뿐이다. 나머지 반이 리스크임을 잊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