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貨, 2차 세계 대전 이후 기축통화로 '자리매김'
[Cover Story] 기축통화는 세계 각국 상거래에 쓰이는 '중심 통화'

기축통화(基軸通貨,key currency)란 국가 간 거래에서 상품 등을 사고 팔 때 사용되는 중심 통화를 말한다.

달러가 기축통화라는 말은 세계 각국의 무역 업체들이 달러를 거래 대금으로 믿고 사용할 만큼 달러가 ‘세계적 통화’라는 의미다.

기축통화가 되려면 거래 당사자들이 결제 수단으로서 믿을 수 있는 통화여야 하고 또 언제라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시장에 충분히 공급되어야 한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기축통화 논쟁은 달러가 기축통화로서 갖춰야 할 두 가지 요건, 즉 신뢰성과 유동성 중에서 점차 신뢰성을 상실하고 있지 않느냐는 의혹에서 비롯되고 있다.

⊙ 2차대전 이후 달러 기축통화로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 역할을 한 것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날 즈음이다.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지금과 같은 기축통화라는 개념이 없었다.

당시는 모든 화폐를 금으로 바꿀 수 있는 금본위제도였으며 금 보유량이 많았던 영국의 파운드화가 상대적으로 다른 화폐에 비해 선호될 정도였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막대한 전쟁 비용으로 영국의 금 보유량이 크게 줄어들자 미국을 중심으로 새로운 국제통화제도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1944년 7월 미국 뉴햄프셔주의 브레턴우즈에서 44개국 대표들이 모여 소위 브레턴우즈체제를 출범시키게 된다.

브레턴우즈체제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창설과 금환본위제(gold-dollar standard) 도입을 핵심으로 한다.

금환본위제란 지폐인 달러를 제시하면 언제나 진짜 금으로 교환해준다는 약속이다.

물론 1944년 첫 회의에서는 미국 달러와 함께 영국 파운드도 금으로 바꿀 수 있는 중심통화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금 보유량이 급속히 줄어들어 영국 파운드화는 그 후 가치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고 1950년 이후 달러가 유일한 기축통화로 자리잡았다.

⊙ 닉슨 대통령 금 교환 정지 선언

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금을 보유하게 된 미국은 기축통화 달러를 금 1온스당 35달러의 비율로 금과 교환해 주었다.

금으로 바꿀 수 있다는 소식에 달러는 무역업자들에게 인기를 끌어 거래에 널리 활용됐으며 1950~60년대 세계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금본위제에서는 금 채굴량의 제한으로 늘어나는 무역거래를 뒷받침할 만큼의 통화를 공급하기 힘들었으나 달러는 그런 제약이 없어 경제 성장에 기여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1960년대 베트남 전쟁을 치르면서 금 보유량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무역수지 적자가 커지면 통화가치가 하락해 수출이 늘어나지만 달러는 금 1온스당 35달러로 가치가 고정되어 그럴 여지가 없었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금 보유량이 바닥나자 마침내 1971년 달러를 더이상 금으로 교환해 주지 않는다며 금 불태환을 선언한다.

닉슨의 금 불태환 선언은 세계 경제에 큰 충격을 주었다.

시장에서 달러 가치가 폭락하고 금값이 급등했다(달러 표시의 금값이 상승했다는 말은 달러값이 하락했다는 의미).

국제 외환시장에서 달러는 더이상 금으로 바꿀 수 없게 됐으므로 종이쪽지 취급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국제 결제 통화로 오랫동안 사용된 달러는 쉽게 기축통화 자리를 잃지 않았다.

특히 중동 국가들이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결성하면서 달러를 유일한 석유 결제 통화로 사용한다고 발표해 달러는 다시 신뢰성을 회복할 수 있었다.

당시 OPEC 국가들은 미국이 자신들을 카르텔이 아닌 국제단체로 인정한 데 대한 보답으로 달러를 석유 결제통화로 사용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이때 금 값과 함께 석유가격도 폭등했다.

유가 상승은 석유 자원의 고갈이 아니라 달러 가치의 하락에 따른 반사적인 급등으로 해석된다.

⊙ 신뢰성 의심받는 달러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회복한 달러는 그러나 미국의 재정적자와 무역적자가 불어나면서 다시 신뢰성에 의문에 제기되고 있다.

세계 금융위기가 터지기 직전인 지난해 미국의 무역적자는 GDP의 6%에 달할 정도로 컸다.

무역적자가 크면 클수록 미국 달러화는 국제 외환시장에서 가치가 하락해야 이론적으로 맞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겪은 아시아 국가들의 달러 비축, 자국통화 가치가 불안한 일부 남미 동남아 국가 주민들의 달러 선호 등으로 수요가 늘어 달러 가치는 하락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달러 가치가 고평가되면서 미국의 무역적자와 중국 등의 무역흑자라는 무역불균형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중국이 미국에 대해 큰소리를 치면서도 달리 방법이 없는 것은 중국 상품을 미국에 팔아야 하고 미국인들의 구매력이 있어야 중국도 무역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 무역불균형 문제를 해결하려면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여야 한다.

그러나 미국의 무역적자가 줄어들면 달러가 공급되지 않아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도 있다.

로버트 트리핀 전 예일대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달러는 기축통화로서 유동성과 신뢰성을 동시에 갖추기 힘든 딜레마를 안고 있는 것이다.

기축통화 논쟁은 이러한 딜레마를 어느 정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실마리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 달러를 대체할 기축통화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문제 해결의 걸림돌로 제기된다.

달러가치가 폭락할 경우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들도 큰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

박주병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bpar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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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貨가 유동성·신뢰성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다

‘트리핀의 딜레마’란?

1950년대 미국의 무역적자 문제가 대두되자 예일대 교수였던 로버트 트리핀은 미 의회 연설에서 "미국이 무역적자를 허용하지 않으면 유동성 공급이 중단되어 세계 경제는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렇다고 미국의 무역적자가 지속돼 미 달러화가 과잉 공급되면 달러화 가치가 하락해 준비자산으로서 신뢰도가 저하되고 환율(금교환비율)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기축통화로서 유동성과 신뢰성을 모두 갖추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트리핀의 지적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경제학자이며 금융위기론의 대가인 킨들버거 교수는 미국의 적자는 세계 유동성 공급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므로 일반적인 무역적자와 같이 보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부에서 지적하는 달러를 대체할 기축통화를 만들기 위해 세계 중앙은행을 별도로 설립할 필요는 없으며 미국이 세계 각국에 자금을 빌려 주는 중앙은행의 역할을 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1980년대 초 미국 달러화에 대해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를 크게 평가 절상시키는 프라자 합의의 기초 이론으로 작용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