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적 권위 중시한 유교문화도 '걸림돌'
[Cover Story] 아시아는 민주주의 지탱할 중산층이 허약하다
미국의 보수적 민간단체인 프리덤하우스는 1978년부터 전 세계 192개국을 대상으로 매년 민주주의와 정치자유를 비교 평가한 세계 자유상황 보고서(Freem in the world)를 내놓고 있다.

해외의 민주화와 독재 반대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설립된 이 단체가 내놓는 보고서는 매년 초 전 세계 언론과 정치인들의 주목을 받는다.

법과 제도가 보도에 미치는 영향, 정치적 압력과 통제 등 4개 부분에서 점수를 매긴 뒤 총점 100을 기준으로 0~30점은 자유국가, 31~60점은 부분 자유국가, 61~100점은 비자유국가로 분류된다.

지난 12일 프리덤하우스가 내놓은 2009년 보고서에 따르면 아시아 · 태평양 지역 39개국 중 한국 일본 등 16국(41%)은 자유, 필리핀 태국 등 15국(38%)은 '부분 자유', 북한 등 8국(21%)은 비자유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세계 전체로는 자유가 89국(46%), 부분자유가 62국(32%), 비자유가 42개국(22%)으로 아시아는 자유국 비중이 작은 편이다.

아시아에서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못하는 것은 가부장적 권위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유교문화 전통과 민주주의를 지탱할 중산층이 형성되지 못한 점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 필리핀과 태국의 정치혼란

아시아에서 민주화 운동이 자주 벌어지는 국가는 필리핀 태국 등을 들 수 있다.

필리핀 태국은 최근 몇 년 동안 정치적 시위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오랜 민주주의 역사를 자랑하는 나라이지만 민주화된 나라는 아니다.

필리핀 국민은 1986년 혁명을 통해 마르코스의 독재체제를 몰아내고 아키노 정권을 세웠다.

그 후 한 번도 자유 · 공정 선거가 중단된 적이 없지만 집권당의 부패에 대한 저항 시위가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정권의 독점이 지속되는 것은 필리핀의 사회구조적 특수성 때문으로 보인다.

한때 한국보다 잘 살았던 필리핀은 아직도 총 노동인구의 4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농민들의 대부분은 대지주로부터 밭을 빌려 농사를 짓는 소작농인 반면 대지주들이 필리핀의 정치권력과 연계되어 있다.

어느 국가에서나 생산성이 높아지려면 공업이 발달해 과다한 농업인구를 흡수해야 하지만 필리핀 정부는 대지주의 반대로 공업화에 적극 나서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민주주의를 지탱할 수 있는 중산층이 발달하지 못하고 부정부패와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1932년 절대 왕정 체제에서 입헌 체제로 전환한 태국은 군부가 정치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공산 반군과 교전하는 과정에서 국왕과 동맹을 취한 군부는 최근 탁신 정권을 물러나게 한 데도 큰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군부가 개입하다 보니 국민의 지지와는 거리가 있는 정권이 들어서고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 아시아적 가치 '유교문화'

서구 사회의 특징이 수평적 질서를 강조하는 개인주의라면 동양 사회는 수직적 질서를 강조하는 공동체주의라고 할 수 있다.

수직적 질서는 물론 유교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삼강오륜에서 읽을 수 있듯이 유교는 집에서는 아버지를 중심으로, 나라에서는 임금을 중심으로 상하간 예를 지켜야 한다고 가르친다.

한마디로 가부장적 권위주의가 유교의 특징이다.

이러한 유교 문화는 개인주의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형성된 근대 시민사회와 서구식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는 데 걸림돌이 된다.

외신 보도처럼 한국에서 대통령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도 유교 문화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서구식 민주주의가 반드시 옳은지는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민주주의는 간단히 말해 국민(인민)이 주인인 정치 또는 국민이 지배하는 정치로 해석된다.

학자들 간에 의견이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국민을 강조하는 데는 대체로 이견이 없다.

그렇다면 국민은 누구이고 국민의 의사는 어떻게 읽을 것인가?

미국의 경제학자 슘페터는 국민의 지배에 초점을 맞춰 민주주의를 해석하는 것을 고전적 정의라고 부르면서 그 의미가 너무 모호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1962)에서 다양한 이해 집단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인민(국민)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일은 어렵고 그들의 일반의지를 알아내기는 더욱 힘들다고 지적하며 인민보다 인민들이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과정을 중시하며 민주주의를 정의했다.

그는 민주주의를 한마디로 '경쟁 상태의 지도자를 선출하는 방식'이라고 압축해 표현한다.

즉 민주주의란 정치적 결정에 도달하는 제도적 장치인데 국민들이 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소비자처럼 많은 후보자들 가운데 지도자를 선택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는 선거 결과를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슘페터의 정의는 민중의 의중을 헤아리는 것을 가볍게 여기는 엘리트적 견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민주주의를 현실적으로 가장 잘 설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하이에크의 무제한적 민주주의

민주주의는 자칫 중우정치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고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경고했다.

20세기의 철학자 하이에크도 민주주의의 남용을 경고하고 있다.

그는 저서 '노예의 길'에서 현대의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의원들은 표를 얻기 위해 이해집단의 로비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전체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지 못하거나 인간 고유의 권리(자연권)를 침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하이에크는 이를 무제한적인 민주주의라고 부르며 이익단체에 영향받지 않는 별도의 의회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국은 빠른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중산층이 두터워진 덕에 민주화를 이룬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최근 우리 국회의원들이 의사장에서 폭력을 행사한 것은 절제되지 않은 민주주의의 단면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유교문화의 전통을 현대 민주주의에 걸맞게 발전시키고 민주주의제도가 남용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 중요한 셈이다.

박주병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b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