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금액 69조원…스필버그·윌폰 등 명사들도 속아

[Cover Story] '매도프 스캔들' 일파만파…구멍 뚫린 美 금융 안전망
금융위기로 최악의 한 해를 보낸 미국 월스트리트가 이번에는 대규모 금융 피라미드 사기 사건에 휘말려 홍역을 치르고 있다.

사기 주인공은 지난 12일 투자사기 혐의로 체포된 버나드 매도프 전 나스닥증권거래소 위원장(70·사진)이며 피해자는 명사들은 물론 대형 금융사,헤지펀드,각종 재단 등 광범위하다.

지난 13일자 뉴욕타임스(NYT)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이번 금융사기의 피해자는 수천명에 이르고 피해금액은 자그마치 500억달러(약 69조원)에 달한다.

매도프는 1960년 자신의 이름을 따 설립한 증권사인 매도프LLC를 통해 별도의 헤지펀드를 만든 뒤 최근 20년간이나 사기 행각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기는 고수익을 미끼로 투자자들을 끌어들인 뒤 나중에 투자하는 사람의 원금으로 앞 사람의 수익을 지급하는 이른바 '폰지 사기(Ponzi Scheme)' 방식으로 이뤄졌다.

매도프는 50년에 달하는 자신의 월가 경력과 연 5~10%의 지속적인 수익을 내세우며 투자자들을 끌어모았다.

특히 돈을 만지는 전문 투자자와 자선기금 등을 운용하는 극소수 상류층 인사를 주요 타깃으로 삼았다.

매도프는 고급 골프장과 칵테일 파티에서 대리인을 고용해 "매도프는 전설적인 머니 매니저"라고 입소문을 퍼뜨린 뒤,초대받은 사람만 받아들이는 이른바 'VVIP 마케팅'을 구사했다.

상류층의 특권의식과 배타적인 고수익에 대한 욕망을 교묘히 건드린 것이다.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은 17일 매도프의 신병을 그의 700만달러짜리 맨해튼 아파트로 제한하는 가택연금 조치를 취하고,전자감시장치를 착용토록 명령했다.

이에 따라 매도프는 오후 7시부터 오전 9시까지는 집 밖에 나갈 수 없으며 당국과 미리 협의된 약속 외에는 외출을 할 수 없게 됐다.

이번 사건을 담당하게 된 맨해튼 지방법원이 매도프에게 유죄 판결을 내릴 경우 매도프는 500만달러의 벌금과 함께 최고 20년형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매도프를 상대로 별도의 민사소송을 제기한 만큼 재판 결과에 따라 더 무거운 형벌에 처해질 수도 있다.

이번 사건엔 각계 유명인사와 세계 주요 대형 금융사들이 대거 피해자로 걸려들며 그 충격이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지금까지 거명된 주요 인물들로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프레드 윌폰 미 프로야구 뉴욕 메츠 소유주,노먼 브라먼 미프로풋볼 필라델피아 이글스 소유주,제너럴모터스(GM)의 금융 자회사인 GMAC의 에즈라 머킨 회장 등이다.

스필버그가 설립한 분더킨더 자선재단은 운용 자산의 상당 규모를 매도프에게 투자한 것으로 확인됐다.

윌폰은 개인 재산은 물론 수천만달러의 구단 자산을 매도프에게 투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쟁쟁한 사람들이 걸려 든 것이다.

돈 욕심 앞에서는 명사들도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특히 미국 내 유대인 부호들의 호화 클럽으로 잘 알려진 플로리다 팜비치 골프클럽의 회원들이 매도프의 먹잇감이 됐다.

회원 자격 요건이 엄격하고 회원 자격을 유지하는 데만 연간 수십만달러가 필요한 팜비치 골프클럽 회원 300명 중 적어도 100명 이상이 고수익을 좇아 매도프 펀드에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회원들은 유대인으로 돈 관리에 꼼꼼한 부호다.

그런데도 꼼짝없이 속은 것은 매도프가 동료 회원인 데다 매년 꼬박꼬박 8~10%가량의 수익을 보장하면서 신뢰를 쌓았기 때문이다.

매도프가 운용한 헤지펀드는 지난 156개월 동안 단 5개월만 손실을 내면서 투자자들의 신뢰를 쌓았다.

1960년 이후 연평균 수익률이 8%를 웃돈다.

또 전설적인 증권 트레이더였고 나스닥 증권거래소 위원장을 역임한 매도프의 경륜도 '묻지마 투자'를 이끈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팜비치 골프클럽에서는 매도프에게 투자하는 게 상당한 특권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1950년대 유대인들을 위해 설립된 이 골프장은 매년 적어도 수만달러 이상을 자선재단에 기부해야 회원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피해를 본 투자자 중 일부는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수백만달러를 호가하는 콘도를 서둘러 매물로 내놓기도 했다.

한편 이번 사기사건으로 인해 SEC가 금융감독을 소홀히 했다는 비판을 받는 등 또 한 차례 곤욕을 치르고 있다.

2001년 엔론사태에 이어 월가의 위험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드러났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5일 그동안 여러 차례 내부 고발이 있었고 적어도 두 차례에 걸쳐 매도프의 증권 중개 업무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는 데도 SEC가 혐의를 잡아내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SEC는 2005년 시장조성 업무와 관련한 조사를 실시했지만 절차상 규칙을 어긴 것 말고는 문제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2007년에는 조사국에서 내부고발자의 제보에 대해 검사를 실시했지만 후속 조치는 없었다.

이에 따라 차기 정부와 의회가 금융감독체계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SEC의 존재와 역할에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크리스토퍼 콕스 SEC위원장은 16일 성명을 통해 "SEC가 지난 10년간 수차례나 매도프에 대한 조사를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혐의를 사전에 감지하지 못한 것에 대해 상당히 우려하고 있다"며 "SEC 감찰관에게 매도프 사건 처리 과정을 전면 재검토할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미아 한국경제신문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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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금융사들도 ‘매도프’에 당했다

생보·자산운용사 등 1307억원 투자
[Cover Story] '매도프 스캔들' 일파만파…구멍 뚫린 美 금융 안전망
매도프 스캔들로 인해 미국은 물론 유럽 일본 한국의 주요 금융회사들까지도 줄줄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드러났다.

15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영국의 HSBC은행은 피해액이 15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FT는 피해액의 대부분이 매도프에게 투자하기를 원하는 기관투자가들에 나간 대출이라고 전했다.

프랑스 최대 은행인 BNP파리바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4억7000만달러를 잃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스위스 은행들도 50억달러가량 손실을 입었으며,스페인 최대 은행인 산탄데르도 관련 펀드에 30억달러가량 투자했다. 일본 최대 증권사인 노무라 홀딩스도 이번 사기사건으로 3억달러가량의 자금이 날아갈 위기에 처했다.

국내 투자자들이 매도프 관련 헤지펀드에 투자한 금액도 9510만달러(1307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대한생명이 5000만달러로 가장 많았고, 한국 삼성 한화 하나UBS 산은 알리안츠 등 6개 자산운용사를 통해 간접투자된 자금이 4510만달러였다.

자산운용사에 자금을 맡긴 곳은 124억원을 투자한 사학연금관리공단을 비롯한 2곳의 연기금과 2곳의 보험사 등 모두 4개 기관투자가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개인투자자들의 피해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