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대학의 연구환경 선진화로 경쟁력 높일것"

반 "석학이라도 몇 년내 큰 성과 내긴 어려워"

노벨상 수상자 등 해외 석학이 내년부터 국내 대학에서 연구와 강의를 맡는 내용의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World Class University·WCU)' 육성사업에 대한 찬반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정부 쪽에서는 "해외 석학들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그들의 학문적 성취와 연구 노하우를 전수받고,이를 통해 국내 대학의 질적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려 국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사업에 찬성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교수들은 "국내에 오는 학자의 대다수는 이미 연구 열정이 소진된 사람들일 것"이라면서 "이들이 3~5년 정도 기간에 국내 대학의 경쟁력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릴 연구 업적을 내기는 쉽지 않다"며 반대한다.

일각에서는 "국내에도 200~300명 정도의 세계적 수준의 학자들이 있다"며 이번 사업 예산을 국내 연구진에 투입하는 게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세계 수준 연구중심대학 육성의 필요성은 새삼 설명할 필요도 없다.

특히 글로벌 시대에 대비한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과학두뇌 양성·확보의 산실인 연구중심대학의 역할이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런 만큼 정부가 세계적 석학과 우리 교수진을 결합, 국내 대학의 학문적 수준을 끌어올려 국제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이번 사업의 취지는 공감할 수 있다.

문제는 이번 사업이 과연 실효를 거둘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 사업을 둘러싼 논란을 분석해 본다.

⊙ 찬성 측, "국제 수준의 연구 환경이나 기반 조성에 크게 기여"

이번 사업에 대해 찬성하는 쪽에서는 "해외 선진 대학의 경우 외국인 교수·학생 비율이 절반을 넘는 데 비해 아직도 우리 대학의 국제화 수준은 아주 낮다"며 "이번 사업이 대학의 국제화에 촉매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노벨상 수상자가 국내에서 강연만 해도 자극이 되는데 노벨상 수상자 9명을 비롯 81명의 해외 석학들이 내년부터 국내 30개 대학에서 몇 년에 걸쳐 연구와 강의를 맡게 되면 국제적 수준의 대학 연구 환경이나 기반 조성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들은 또 해외 학자들이 계약 기간이 끝나 본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우리 대학들과 연구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할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인재 양성과 새로운 첨단 융합기술의 개발을 위해서는 한국과 해외 연구진 간 융합을 통한 글로벌 연구중심대학의 육성이 시급하다"며 이러한 대학들이 고부가가치의 차세대 신성장 동력을 창출해 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 반대 측, "석학이라도 몇 년 안에 국내에서 연구업적 내긴 어려워"

그러나 반대하는 쪽에서는 세계적 석학이라도 불과 몇 년 안에 국내 대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릴 만한 연구 업적을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세계적인 연구 업적을 낸 학자들은 대부분 30대 때 활발한 연구를 했다"며 "이번에 국내에 유치된 학자 가운데는 명성만 남은 인물도 상당수에 이른다"고 꼬집는다.

해외 유명 대학들이 신진 교수에게 10억원 내외의 정착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유치 학자들에 대한 지원도 미흡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에게는 연봉 3억원에다 연구장비·연구비로 연 3억원까지 지원된다.

이들은 또 "연구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해외 학자가 3~5년 정도 머무를 연구팀에 지원할 대학원생이나 박사 후 연구 인력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반문한다.

석학이라 하더라도 혼자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연구 성과를 거두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일각에서는 세계적 수준의 국내 학자들에게 지원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 해외 석학과 국내 연구진,학생들 간 협력체제 구축에 힘써야

해외 석학들을 초빙해 그들의 학문적 성취를 전수함으로써 국내 대학의 학문적 수준을 끌어올려 국제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 육성 사업의 취지는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연구와 교육 인프라 등 기본적 요건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해외 석학이 강의하고 연구한다고 해서 우리 대학이 세계적 수준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번 사업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석학과 국내 연구진·학생들 간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다.

정부 당국은 국내 대학 가운데 해외 석학들이 연구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연구 인프라를 제대로 갖춘 곳이 얼마나 되는지를 점검,미비한 부분을 보완해 나가야 한다.

특히 석학들이 애정을 갖고 연구와 강의에 몰두할 수 있는 연구 풍토를 조성해 줘야 하며 각종 재정지원 프로그램을 포함, 다양한 지원 대책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정부 당국은 엄청난 세금을 투입하는 이번 사업이 대학의 홍보 수단으로 전락하거나 돈 잔치로 끝나지 않도록 사업의 진행 상황을 철저히 관리하는 것은 물론 당초 연구 성과와 목표를 이행하지 못한 대학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풀이>

◆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World Class University) 육성 사업 = 국가 발전 핵심 분야의 연구를 추진하고 인재를 양성하며 해외 과학자 확보를 통해 대학의 교육 연구 풍토를 혁신하고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을 육성하기 위해 교육과학기술부가 올 6월에 마련한 것이다.

내년부터 노벨상 수상자 9명 등 81명의 해외 석학이 국내 30개 대학에서 강의와 연구를 맡게 된다.

앞으로 5년 동안 8200여억원이 투입된다.

◆ 연구중심대학 = 연구 분야로 진출하려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관련 교육을 중점 실시하는 대학을 말한다.

실제로 연구교육이 대학원 과정에서 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대학원중심대학'과 혼용해 쓰이기도 하며, 지식 창출 및 고급 연구인력 양성 능력을 갖춘 대학을 일컫기도 한다.

연구중심대학에서는 대학원 교육을 통해 고도 지식 창출 능력을 갖춘 석·박사를 배출하게 된다는 점에서 학사 교육에 중점을 두는 일반 대학과 구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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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경제신문 11월10일자 A14면

호세 라모스 호르타 동티모르 대통령 등 노벨상 수상자 9명을 비롯해 세계적인 석학 80여명이 내년부터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에서 강의를 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World Class University) 육성 사업'과 관련해 각 대학의 신청을 받아 심사한 결과 총 30개 대학 79개 과제를 '세계적 석학 초빙' 지원 대상으로 선정했다고 9일 발표했다.

이번에 초빙될 학자는 총 81명으로 이 중에는 노벨상 수상자 9명,미 과학한림원 회원 12명,미 공학한림원 회원 18명 등이 포함돼 있다.

서울대는 1995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파울 크루첸 박사를 지구환경과학부 석좌교수로 임용하기로 했고,연세대는 2002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쿠르트 뷔트리히 미국 스크립스연구소 교수를 초빙했다.

또 한양대는 2006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앤드루 파이어 스탠퍼드대 교수를,경원대는 1973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노르웨이 출신 이바르 예이베르 박사를 각각 초빙한다.

이화여대는 1996년과 2006년 각각 노벨평화상을 받은 호세 라모스 호르타 동티모르 대통령과 무하마드 유누스 그라민은행 총재,2005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그럽스 박사 등 3명을 임용할 예정이다.

정태웅 한국경제신문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