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인격 짓밟는 인터넷 악성 댓글은 익명의 살인과 다름없다"

‘최진실 법’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인격에 상처를 주고 사람을 파멸로 내모는 인터넷 환경을 어떻게든 정
화해야 한다는 대전제에는 모두 동의한다.



문제는 법률을 통한 통제의 수위다.

반대하는 측에서는 정부가 자의적인 기준을 통해 인터넷 상의 의견을 처벌해 궁극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찬성 측에서는‘백약이 무효’인 상황에서 관련 입법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 미선이, 예슬이, 진실이의 공통점

[Cover Story] 인터넷 모욕죄 표현의 자유 구속?
반대 측에서는 먼저 '최진실 법'이 '고인의 죽음을 빌미로 인터넷 여론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최진실씨의 죽음으로 촉발된 사회적 분위기를 등에 업고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는 법안을 슬쩍 통과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고인의 인격을 침해할 수 있는 데다 유족들도 원치 않는다고 밝혔음에도 '최진실'이라는 이름을 법안에 붙이려 하는 것부터 피해자에 대한 동정을 증폭시켜 법안 통과에 힘을 싣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조장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가해자의 이름을 붙여서 불리는 살인 사건도 사회적 파장이 클수록 피해자의 이름이 부각된다.

'원조 촛불집회'가 벌어졌던 '미선이 효순이 사건', 아동에 대한 성폭력 처벌을 강화했던 '예슬이 혜진이 법' 등이 단적인 예다.

'최진실 법'의 핵심 내용인 인터넷 모욕죄 신설도 쟁점이다.

인터넷 모욕죄는 반의사불벌(反意思不罰)의 성격을 가진다는 점에서 일반 모욕죄와 크게 다르다.

반의사불벌은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 없이 범죄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수사 결과에 대해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처벌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피해자의 신고가 없으면 수사도 진행하지 않는 모욕죄보다 강화된 내용이다.

예컨대 한 학생이 '풍파고등학교 체육선생님은 악질'이라는 글을 인터넷 상에 올린다면 당사자의 신고 없이도 검찰과 경찰은 어떤 사람이 무슨 근거로 그 같은 비방을 했는지 조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하는 이들은 이 같은 인터넷 모욕죄의 반의사불벌 원칙이 자의적으로 사용돼 정권의 입에 맞지 않는 인터넷 상의 게시물과 댓글을 중점적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행정부의 일원인 경찰과 검찰이 악플 여부를 판단하는 데 자의적인 기준을 토대로 정부에 비판적인 사이트나 게시물을 집중 감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이 같은 내용이 인터넷 상에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주류 매체에서 쉽게 다루지 못했던 정보를 다루고 소통할 수 있었던 공간으로서의 인터넷 환경이 크게 위축될 거라는 것이다.

2004년 인터넷 포르노를 규제하려는 정부 법안에 대해 미국 연방대법원이 '포르노의 해악은 규제받아야 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으니 정부와 의회는 다른 방식의 규제 방안을 찾아 보라'고 권고했다는 점을 중요한 근거로 든다.

◆ 익명의 살인자, 두고 봐야 하나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최진실 법'을 도입해야 한다는 핵심 논거는 역시 증가하는 인터넷 상의 명예훼손 사례다.

지금도 인터넷 공간에 모욕죄가 적용되고 있지만 인터넷 환경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만큼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명예훼손, 욕설 등 사이버 폭력으로 인한 신고 건수는 2005년 3507건에서 2007년 4만6720건으로 10배 이상 늘어났다.

이 중 욕설로 인한 폭력은 38배나 증가했으며 사이버 명예훼손도 4배 늘었다.

인터넷 모욕죄의 반의사불벌 원칙 역시 인터넷 환경의 특성을 고려할 때 불가피하다는 의견이다.

한 번 유포되기 시작한 유언비어는 뒤늦게 가해자를 처벌하더라도 계속 퍼지는 인터넷의 특성상 피해자 신고에 앞서 발빠르게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명예훼손이 저질러질 경우 그것이 유포되는 범위가 현실 세계보다 훨씬 광범위하다는 점에서 처벌 수위도 일반 모욕죄보다는 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다음 아고라 등 포털의 일부 게시물의 경우 수십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하는 등 웬만한 매체보다 큰 영향력을 가지는 매스미디어 역할을 하는 마당에 그에 걸맞은 책임을 지워야 한다는 주장도 '최진실 법'에 힘을 싣는다.

'최진실 법'에 찬성하는 이들은 또 인터넷 환경의 폐해가 당장 희생자를 양산하는 현실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한다.

익명의 그늘에 숨어 악플로 인명을 앗아가는 불특정 다수의 살인자가 활개 치는 인터넷 환경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의 연장선 상에서 악플에 상처받아 자살하는 사람까지 나오는 가운데 법 제정을 반대하는 것은 한가로운 이상론이라고 공격한다.

반대 측의 핵심 논거인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로 일축한다.

표현의 자유가 모욕과 중상 모략까지 인정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불특정 다수가 악의를 갖고 동일한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상황에서 당사자가 일일이 대응할 수 없는 만큼 사회는 표현의 자유 이전에 피해자의 인권과 생명을 보호해 줘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런 맥락에서 통제받지 않는 표현의 자유는 상대에게 피해를 주는 폭력이며 마땅히 법으로 처벌할 것을 주장한다.

◆ 정치의 문제

여기에 국회에서 관련 법안을 심사해야 할 각 정당의 정치적 논리까지 겹쳐 논점을 흐려 놓는다.

야당인 민주당은 "기존의 형법과 정보통신망법을 가지고도 충분히 규제와 통제가 가능한데 공권력의 자의적 판단이 가능한 '사이버 모욕죄'는 사실상 인터넷 상의 계엄령"(전병헌 의원)이라고 반대하고 있으며 한나라당은 "인터넷만의 법치주의 예외 공간을 만들고 인터넷 해방구를 만드는 것은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받아치고 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이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목소리가 강한 인터넷에서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피해자가 나온 상황에서도 '최진실 법'의 입법을 막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2004년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은 '최진실 법'의 일부인 인터넷 실명제에 대해 찬성 입장을 밝힌 바 있어 말 바꾸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민주당은 광우병 파동과 촛불 집회에 데인 정부와 한나라당이 이번 기회에 인터넷 공간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 한다고 말한다.

'최진실 법'의 골간인 인터넷 모욕죄와 인터넷 실명제 확대의 입법 계획이 촛불 집회가 사그라들던 올해 7월 법무부에서 나왔다는 것이 이유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