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모기지증권·파행상품 등

단기 고수익 좇아 고위험 투자
[Cover Story] 투자은행의 투기적 베팅이 '재앙' 불렀다
상업은행은 우리나라에서 흔히 얘기하는 은행이다.

주요 업무는 예금을 받고 대출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수입원은 낮은 예금 이자와 높은 대출 이자의 차이인 마진이다.

이들은 또 각종 수수료를 벌어들인다.

은행은 보수적 경영을 하며 과감한 투자를 꺼린다.

안전성을 생명으로 한다.

'은행원 같은 사람'이라고 하면 꼼꼼하고 빈틈이 없지만 어딘지 답답한 사람을 말하는 것도 그래서이다.

이에 반해 투자은행은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증권회사와 투자 업무가 통합된 영역이다.

주식 등 유가증권 매매를 중개하거나 자기 자금으로 투자하는 것 외에 기업체에 장기 자금을 공급하기도 한다.

투자은행은 이 외에도 기업의 인수·합병(M&A), 부동산 투자, 부실 기업 인수 등 다양한 투자를 하게 된다.

이 업종은 위험을 적절하게 이용하는 것을 생명으로 하기 때문에 공격적이고 과감하다.

때문에 원래 실패도 많고 성공할 경우 큰돈도 번다.

미국은 1930년대 금융 대공황을 겪은 뒤 은행과 증권 보험 업무를 분리시킨 '글래스스티걸'법을 만들어 상업은행이 리스크가 있는 투자를 하지 못하도록 해 왔다.

이 법은 상업은행의 고객 예금을 철저하게 보호해 금융 시장의 연쇄 부도를 막기 위한 취지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유럽의 은행 겸업화 추세에 맞춰 미국이 뒤처지고 있다는 비판이 불거지자 미국은 1999년 '그램 리치 브릴리'법을 만들어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일부 겸업하도록 허용했다.

이 때부터 은행과 증권회사 합병이 가능해졌으며 씨티그룹 등 대형 금융회사들은 보험·증권그룹 트레블러스와 합병해 은행에서 종합 금융그룹으로 발돋움하기도 했다.

⊙ 투자은행의 오류는

전문가들은 월가 투자은행의 가장 큰 오류는 과도한 차입(레버리지)에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남의 돈이 무서운 줄 모르고 빚을 내 위험성이 큰 주택 모기지 증권과 파생상품에 투자했다는 것이다.

CNN머니에 따르면 이번에 파산한 리먼브러더스의 자본은 2004~2007년 중 60억달러 증가한 반면 자산은 무려 3000억달러가 늘었다고 한다.

불어난 자산 중 대부분은 주로 주택 및 상업용 건물을 담보로 잡고 발행한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증권이어서 위험도가 높았다.

투자은행들은 상업은행들에 비해 금융 당국의 규제가 덜했고 자본금 의무 기준도 훨씬 약해 맘껏 리스크가 높은 곳에 투자했다. 투기적 수익을 찾아 높은 위험에 갈수록 끌려들어 갔다는 것이다.

또 단기에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관행도 화를 초래한 요인이다.

전통적인 채권 인수와 중개만으로 수익을 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고 돈벌이가 수월한 모기지 관련 증권 투자에 주력했다.

이 과정에서 증권에 포함된 위험을 제대로 따져 보지 않고 계속 투자를 확대했다.

총 수입의 60%가량을 이런 방식의 투자로 창출할 정도로 위험을 감수한 고수익만 추구한 것이다.

이른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고위험·고수익)' 전략이 먹힌 것이다.

그러나 미국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이들의 도박도 끝이 났다.

이들이 모기지에 투자한 증권 가치는 휴지 조각으로 변했고 유동성(돈을 조달하는 것)도 꽉 막힌 것이다.

상업은행과 달리 자본이 충분하지 않은 투자은행은 이번 신용 위기로 보유 증권 가치가 줄고 자금 조달에도 큰 어려움을 겪은 것이다.

이 밖에 투자은행들은 막대한 수익이 발생하면 업황이 좋지 않을 때에 대비해 유보하기보다는 임직원에게 터무니없는 보수를 줘 낭비한 점도 문제였다.

⊙ 투자은행의 미래는

미국의 경제지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6일자에서 '월가가 사망 신고를 냈다'며 미국의 투자은행 밀집 지역인 뉴욕의 월스트리트를 지목했다.

투자은행 시대가 이제는 몰락하고 새로운 질서를 맞이할 것으로 미국의 금융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리스크를 감수한 채 복잡한 파생상품을 사고 팔며 떼돈을 벌던 첨단 투자은행들은 이제 '지는 해'이고,예금 유치와 대출 영업에 의존하는 구식 상업은행은 '뜨는 해'라고 보는 것이다.

현재 월가의 새로운 강자로 주목받고 있는 미국의 상업은행은 JP모건체이스와 메릴린치를 사들인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 웰스파고 등이다.

이러한 상업은행은 예금자 보호라는 이유로 정부 규제를 많이 받고 있지만 대신 예대 마진(예금과 대출 간 금리 차)을 보장받아 착실히 성장해 왔다.

지난 8월 말 미국의 예금액은 전년 동기에 비해 7.6%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신용 위기 속에서도 예금이 완충 작용을 하기 때문에 투자은행보다 상업은행이 안전 운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부에서는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모은 자금을 운용하는 사모펀드(PEF펀드)가 인기를 끌지 모른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돈놓고 돈먹기식 행태를 보여 왔던 투자은행의 관행이 하루빨리 극복돼야 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오춘호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