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에너지 둘러싸고 러-유럽간 경제교류 급랭
"러시아는 신 냉전을 몰고 올 경우 책임을 져야 한다" (데이비드 밀밴드 영국 외무장관)
"신 냉전 시대가 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
1991년 소련 붕괴와 함께 냉전(冷戰)이 종식된 지 15년이 흐른 지금 지구촌에 '신 냉전의 전주곡'이 퍼지고 있다.
냉전이란 1945년부터 1991년까지 자본주의와 공산 진영간 첨예한 대립의 역사를 뜻한다.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열전(熱戰)과 대비되는 개념.
미국 재정전문가이자 대통령의 고문이었던 버나드 바루크가 1947년 트루먼 독트린을 둘러싼 의회 토론에서 이 용어를 사용하며 널리 알려졌다.
신 냉전이 시작된 곳은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곳에 위치한 그루지야.
'오일 머니'를 바탕으로 냉전 시대의 영광을 재연하려는 러시아와 '팍스 아메리카나(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를 고수하려는 미국 사이의 갈등이 그루지야에서 정면 충돌하고 있다.
미국의 '쇠퇴'와 러시아의 '부흥'이 교차하는 시기에 그루지야가 도화선이 된 양상이다.
러시아의 그루지야 공세는 중앙 아시아 지역의 자원·에너지 통제권을 노린 것이란 점에서 거대한 '쩐의 전쟁',소위 '냉전(冷錢)'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루지야 사태 발발 한달을 맞아 그 의미를 분석해 본다.
⊙ 세계 지정학 지도 변화
지난 8월 8일 지구촌의 평화와 행복을 염원하는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 개막식 폭죽이 베이징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은 시간,흑해와 카스피해 사이 코카서스 지역에 있는 그루지야에선 전쟁의 포성이 울려퍼졌다.
그루지야는 옛소련 해체과정에서 분리 독립한 뒤 친서방 노선을 걸으며 미국이 이끄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추진해왔다.
그루지야가 자국 영토에 있는 남오세티아 자치공화국의 독립 시도를 막기 위해 군사 공격을 시작하자 러시아가 그루지야로 탱크와 전투기를 들여보냈다.
EU(유럽연합) 순회의장인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중재로 러시아와 그루지야 모두 평화 협정에 서명하고 러시아가 철군을 시작하면서 일단락되는 듯 보였던 그루지야 사태는 러시아가 그루지야 내 친 러시아 성향 자치공화국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의 독립을 승인하면서 다시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미국과 러시아 군함이 잇따라 그루지야와 압하지야 앞바다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전운마저 감도는 상황이다.
그루지야 사태가 장기 국면에 돌입하면서 세계가 친(親)러와 반(反)러로 갈리는 등 세계 지정학 지도에 변화가 생겼다.
베네수엘라를 비롯해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벨로루시 등이 러시아 편에 섰다.
반면 미국과 영국 폴란드 등 나토 회원국과 옛 소련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우크라이나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등은 반러 대열의 선봉이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은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사태를 관망하는 자세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한 유럽연합(EU)의 적극적인 중재로 러시아의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지난 8일 그루지야에서 한 달 안에 전격 철군하기로 결정했지만 여전히 분쟁의 불씨는 남아있는 상황이다.
⊙ 자원·에너지를 둘러싼 '쩐의 전쟁'
러시아의 그루지야 공격은 중앙 아시의 지역의 풍부한 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노린 것이란 분석이다.
러시아가 동서 에너지 통로인 그루지야를 무력화시켜 유럽의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더욱 높이려는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루지야는 주요 산유국은 아니지만 카스피해와 지중해를 잇는 BTC 송유관이 관통함은 물론 흑해로 향하는 가스 수송을 가스관도 놓여 있는 요충지다.
특히 바쿠(아제르바이잔)-트빌리시(그루지야)-세이한(터키)을 연결하는 BTC 송유관은 총 길이 1768㎞로 2006년 5월 개통 이래 하루 100만 배럴의 카스피해산 원유를 유럽으로 실어나르고 있다.
또 바쿠에서 그루지야를 거쳐 터키의 에르주룸까지 이어지는 692㎞의 BTE 가스관도 연 66억㎥의 천연가스를 공급하고 있다.
이 송유·가스관은 유럽 지역의 주요한 에너지 공급원인 동시에 아제르바이잔과 그루지야가 러시아의 우산에서 벗어나는 발판이 됐다.
유럽은 현재 전체 천연가스 수입의 39%,원유 수입의 3분의 1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번 전쟁을 통해 에너지원이 풍부한 카스피해에 대한 영향력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국제 경제는 벌써부터 냉전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그루지야를 통한 원유 수출이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동서간 긴장으로 원유 공급에 대한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가 "어떤 나라도 에너지를 무기로 목조르기를 해선 안된다"며 강경한 어조로 러시아를 비판하고 러시아산 석유 및 가스 의존을 끊기 위한 긴급 대책 마련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부활하던 러시아 시장도 그루지야 사태로 직격탄을 맞았다.
골드만삭스는 그루지야 사태 초기인 8월 11일부터 22일까지 2주간 러시아에서 210억달러의 자본이 빠져나간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의 대표증시인 RTS지수는 그루지야 사태 이후 20% 이상 폭락하고 루블화 가치도 연일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 "냉전(冷錢)이 더 큰 문제"
전문가들은 "냉전(冷戰)보다는 냉전(冷錢)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서구와 러시아간의 경제 교류가 냉각되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뜻이다.
과거 냉전시대와 달리 지금은 서구와 러시아간 긴밀한 경제적 협력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러시아 간 교역액은 지난해 267억 달러(약 29조원)에 달했다.
올 상반기에도 미국은 46억6000만 달러를 러시아에 수출했고 러시아는 미국에 1750만배럴(20억달러)의 석유 등 총 133억 달러 어치를 실어보냈다.
양국의 투자도 활발하다.
올들어 러시아 OAO세버스탈은 미국 메릴랜드 소재 스패로즈포인트 제철소를 사들인데 이어 미국 10위 철강업체 에스마크까지 인수했다.
러시아 부호들은 뉴욕의 아파트와 애스펀 지역의 목장,팜 해변의 별장 등을 싹쓸이하며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미 부동산 시장에 구세주로 등장했다.
러시아는 미 국채의 주요한 투자자이기도 하다.
물론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보잉 등 미국 회사들도 러시아에서 큰 이득을 보고 있다.
EU와 러시아도 얽혀있긴 마찬가지다.
EU와 러시아간 지난해 교역액은 2800억달러(약 302조원)에 이른다.
독일은 천연가스 사용량 중 36%를 러시아에 의존한다.
이탈리와와 프랑스는 러시아의 4번째와 5번째로 큰 천연가스 수입국이다.
이에 따라 신 냉전이 송유·가스관 등 에너지 공급 통로를 막거나 동서간 무역을 급냉시킬 경우 가뜩이나 어려운 글로벌 경제가 추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하지만 양측의 경제적 협력관계가 오히려 전쟁 억지력으로 작용,냉전을 비껴갈 것이란 낙관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러시아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들은 신 냉전으로 경제 교류가 얼어붙는 사태를 두려워한다.
러시아 경제 엘리트들도 서방과의 관계 악화로 자신들의 부가 손상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신 냉전 기류가 흐르자 쾌재를 부르는 것은 방위산업체들 뿐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신 냉전 조짐은 단순히 평화주의자의 애만 태우는 것이 아니라 뉴욕과 모스크바의 기업 경영자(CEO)들의 밤잠도 설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기업 경영진들이 신 냉전 사태를 막기 위해 로비를 벌일 것"이라며 "이러한 노력이 동서간 군사적인 충돌이나 본격적인 냉전 사태로까지 번지는 것을 막아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기열 한국경제신문기자 philos@hankyung.com
"러시아는 신 냉전을 몰고 올 경우 책임을 져야 한다" (데이비드 밀밴드 영국 외무장관)
"신 냉전 시대가 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
1991년 소련 붕괴와 함께 냉전(冷戰)이 종식된 지 15년이 흐른 지금 지구촌에 '신 냉전의 전주곡'이 퍼지고 있다.
냉전이란 1945년부터 1991년까지 자본주의와 공산 진영간 첨예한 대립의 역사를 뜻한다.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열전(熱戰)과 대비되는 개념.
미국 재정전문가이자 대통령의 고문이었던 버나드 바루크가 1947년 트루먼 독트린을 둘러싼 의회 토론에서 이 용어를 사용하며 널리 알려졌다.
신 냉전이 시작된 곳은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곳에 위치한 그루지야.
'오일 머니'를 바탕으로 냉전 시대의 영광을 재연하려는 러시아와 '팍스 아메리카나(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를 고수하려는 미국 사이의 갈등이 그루지야에서 정면 충돌하고 있다.
미국의 '쇠퇴'와 러시아의 '부흥'이 교차하는 시기에 그루지야가 도화선이 된 양상이다.
러시아의 그루지야 공세는 중앙 아시아 지역의 자원·에너지 통제권을 노린 것이란 점에서 거대한 '쩐의 전쟁',소위 '냉전(冷錢)'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루지야 사태 발발 한달을 맞아 그 의미를 분석해 본다.
⊙ 세계 지정학 지도 변화
지난 8월 8일 지구촌의 평화와 행복을 염원하는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 개막식 폭죽이 베이징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은 시간,흑해와 카스피해 사이 코카서스 지역에 있는 그루지야에선 전쟁의 포성이 울려퍼졌다.
그루지야는 옛소련 해체과정에서 분리 독립한 뒤 친서방 노선을 걸으며 미국이 이끄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추진해왔다.
그루지야가 자국 영토에 있는 남오세티아 자치공화국의 독립 시도를 막기 위해 군사 공격을 시작하자 러시아가 그루지야로 탱크와 전투기를 들여보냈다.
EU(유럽연합) 순회의장인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중재로 러시아와 그루지야 모두 평화 협정에 서명하고 러시아가 철군을 시작하면서 일단락되는 듯 보였던 그루지야 사태는 러시아가 그루지야 내 친 러시아 성향 자치공화국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의 독립을 승인하면서 다시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미국과 러시아 군함이 잇따라 그루지야와 압하지야 앞바다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전운마저 감도는 상황이다.
그루지야 사태가 장기 국면에 돌입하면서 세계가 친(親)러와 반(反)러로 갈리는 등 세계 지정학 지도에 변화가 생겼다.
베네수엘라를 비롯해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벨로루시 등이 러시아 편에 섰다.
반면 미국과 영국 폴란드 등 나토 회원국과 옛 소련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우크라이나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등은 반러 대열의 선봉이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은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사태를 관망하는 자세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한 유럽연합(EU)의 적극적인 중재로 러시아의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지난 8일 그루지야에서 한 달 안에 전격 철군하기로 결정했지만 여전히 분쟁의 불씨는 남아있는 상황이다.
⊙ 자원·에너지를 둘러싼 '쩐의 전쟁'
러시아의 그루지야 공격은 중앙 아시의 지역의 풍부한 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노린 것이란 분석이다.
러시아가 동서 에너지 통로인 그루지야를 무력화시켜 유럽의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더욱 높이려는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루지야는 주요 산유국은 아니지만 카스피해와 지중해를 잇는 BTC 송유관이 관통함은 물론 흑해로 향하는 가스 수송을 가스관도 놓여 있는 요충지다.
특히 바쿠(아제르바이잔)-트빌리시(그루지야)-세이한(터키)을 연결하는 BTC 송유관은 총 길이 1768㎞로 2006년 5월 개통 이래 하루 100만 배럴의 카스피해산 원유를 유럽으로 실어나르고 있다.
또 바쿠에서 그루지야를 거쳐 터키의 에르주룸까지 이어지는 692㎞의 BTE 가스관도 연 66억㎥의 천연가스를 공급하고 있다.
이 송유·가스관은 유럽 지역의 주요한 에너지 공급원인 동시에 아제르바이잔과 그루지야가 러시아의 우산에서 벗어나는 발판이 됐다.
유럽은 현재 전체 천연가스 수입의 39%,원유 수입의 3분의 1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번 전쟁을 통해 에너지원이 풍부한 카스피해에 대한 영향력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국제 경제는 벌써부터 냉전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그루지야를 통한 원유 수출이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동서간 긴장으로 원유 공급에 대한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가 "어떤 나라도 에너지를 무기로 목조르기를 해선 안된다"며 강경한 어조로 러시아를 비판하고 러시아산 석유 및 가스 의존을 끊기 위한 긴급 대책 마련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부활하던 러시아 시장도 그루지야 사태로 직격탄을 맞았다.
골드만삭스는 그루지야 사태 초기인 8월 11일부터 22일까지 2주간 러시아에서 210억달러의 자본이 빠져나간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의 대표증시인 RTS지수는 그루지야 사태 이후 20% 이상 폭락하고 루블화 가치도 연일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 "냉전(冷錢)이 더 큰 문제"
전문가들은 "냉전(冷戰)보다는 냉전(冷錢)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서구와 러시아간의 경제 교류가 냉각되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뜻이다.
과거 냉전시대와 달리 지금은 서구와 러시아간 긴밀한 경제적 협력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러시아 간 교역액은 지난해 267억 달러(약 29조원)에 달했다.
올 상반기에도 미국은 46억6000만 달러를 러시아에 수출했고 러시아는 미국에 1750만배럴(20억달러)의 석유 등 총 133억 달러 어치를 실어보냈다.
양국의 투자도 활발하다.
올들어 러시아 OAO세버스탈은 미국 메릴랜드 소재 스패로즈포인트 제철소를 사들인데 이어 미국 10위 철강업체 에스마크까지 인수했다.
러시아 부호들은 뉴욕의 아파트와 애스펀 지역의 목장,팜 해변의 별장 등을 싹쓸이하며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미 부동산 시장에 구세주로 등장했다.
러시아는 미 국채의 주요한 투자자이기도 하다.
물론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보잉 등 미국 회사들도 러시아에서 큰 이득을 보고 있다.
EU와 러시아도 얽혀있긴 마찬가지다.
EU와 러시아간 지난해 교역액은 2800억달러(약 302조원)에 이른다.
독일은 천연가스 사용량 중 36%를 러시아에 의존한다.
이탈리와와 프랑스는 러시아의 4번째와 5번째로 큰 천연가스 수입국이다.
이에 따라 신 냉전이 송유·가스관 등 에너지 공급 통로를 막거나 동서간 무역을 급냉시킬 경우 가뜩이나 어려운 글로벌 경제가 추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하지만 양측의 경제적 협력관계가 오히려 전쟁 억지력으로 작용,냉전을 비껴갈 것이란 낙관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러시아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들은 신 냉전으로 경제 교류가 얼어붙는 사태를 두려워한다.
러시아 경제 엘리트들도 서방과의 관계 악화로 자신들의 부가 손상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신 냉전 기류가 흐르자 쾌재를 부르는 것은 방위산업체들 뿐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신 냉전 조짐은 단순히 평화주의자의 애만 태우는 것이 아니라 뉴욕과 모스크바의 기업 경영자(CEO)들의 밤잠도 설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기업 경영진들이 신 냉전 사태를 막기 위해 로비를 벌일 것"이라며 "이러한 노력이 동서간 군사적인 충돌이나 본격적인 냉전 사태로까지 번지는 것을 막아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기열 한국경제신문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