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무질서속에 피어난 한송이 꽃처럼…"대한민국 건국은 기적과 같았다"
대한민국 건국은 우리의 정치체제로 민족의 앞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민족 스스로 헌법을 마련하고 민주공화국을 건설함으로써 구한말 이후 추진해왔던 한반도의 근대화 운동이 결실을 맺게 됐다.

제헌 헌법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분명히 했으며 대한민국의 체제와 질서를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을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자유경제 체제임을 확실하게 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반대하는 공산주의는 단호하게 배격했다.

백성이나 신민으로 통치의 객체로만 존재하던 우리 민족은 정치적 권리와 의무를 가진 국민으로 다시 태어났다.

국민으로 다시 태어난 국민 각 개인은 생명 자유 재산에 대한 자연법적 권리를 갖게 됐다.

또한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제도적으로 정착됨으로써 그동안 억눌려 왔던 민족의 잠재력과 창의력이 발휘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외국의 학자들은 이런 점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정부 주체가 성립됐다는 그 자체가 이후 경제 성장의 큰 원인이었다고 지적한다.

당시 일부 정치가들의 주장대로 자주와 민족 공조의 논리를 앞세워 세계사적 흐름에 역행했다면 현재의 북한과 같은 꼴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었을 것이다.

이승만 박사를 중심으로 한 건국 주역들이 이러한 국제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라를 세웠던 것이다.

대한민국 건국은 또 우리말과 우리 역사를 가르치는 계기가 됐다.

1948년만 해도 인구의 80%가 어떤 형태의 교육도 받지 못했던 문맹국가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49년 초등교육을 위한 의무교육제를 도입하고 매년 예산의 10%를 교육에 투입했다.

그 결과 1959년 대한민국 취학 적령기 아동의 95%가 의무 교육을 받게 됐으며 순 문맹률이 22%로 낮아졌다. 일제가 해내지 못한 일을 대한민국 정부가 해낸 것이다.

유영익 연세대 석좌교수는 "건국의 의미는 일련의 획기적인 제도 개혁을 통해 우매한 백성을 새로운 국민으로 만든 데 있다"고 설명했다.

⊙ 건국 세력은 누구인가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한 중심 세력은 대부분 40대였다.

5·10선거로 선출된 국회의원 209명의 평균 연령은 46세였다.

이들 중 60%는 대학과 전문학교 등 고등 교육을 받았으며 해방 이전에 종사한 직업은 주로 기업 경영과 공무원 생활이 태반이었다.

이들 중 30% 이상인 68명이 민족 운동에 참여한 경험이 있었으며 10명은 만주독립군 동북항일연군 등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했던 독립운동가 출신도 14명이었다.

애국지사 혹은 독립운동가를 중심으로 초대 내각이 구성됨으로써 민족의 정통성이 대한민국에 있다는 사실이 더욱 확고해졌다.

이들 209명이 속한 집안의 조선왕조 시대 신분은 향리 등 중간신분이 대부분이었다.

대한민국의 건국세력은 결국 조선 시대 이래의 전통적 양반 계급이 아닌 중간신분으로서 개화 사상을 체득하고 근대적 문물을 수용하면서 전문적 직업능력을 키워온 민족주의자들이었다.

오춘호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