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비한 댓글 난무…마녀사냥 '위험성'

다른 의견 존중하고, 정보 옥석 가려야
[Cover Story] 인터넷 잘못 쓰면 폭력의 도구가 된다
인터넷은 과연 자유로운 의사소통의 도구이며 민주적인 공론 형성의 마당인가.

아니면 무책임한 말과 글을 쏟아내는 사이버 폭력의 마당인가.

국내 포털사이트 다음이 운영하는 인터넷 토론방 '아고라'가 촛불시위를 주도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인터넷과 포털의 위력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정보화의 급진전이 오히려 여론 민주주의의 퇴행이라는 역설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민주주의가 전제하고 있는 건전한 시민의 질서정연한 토론 문화는 인터넷에는 이미 없다는 것이다.

그냥 제멋대로의 집단적 열기만 무정향적으로 넘쳐난다는 것이다.

⊙ 사이버 폭력이 만연한 사회

인터넷 포털 토론방 아고라에는 '명박퇴진', '명박타도'라는 반정부 구호가 버젓이 제목 앞에 붙어 있다.

이런 구호를 붙이지 않은 글은 읽지 말라는 답글을 달아 놓기도 한다.

최근 S대 학생 이모씨가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과격 불법 촛불시위는 반대한다는 의견을 펴자 아고라에서는 '한나라당 알바다''S대는 자폭하라'는 마녀사냥식 인신공격 댓글도 이어졌다.

아고라에는 이에 앞서 '폭력 전의경 신상리스트 업데이트'라는 글이 올라왔다.

촛불시위 진압 과정에서 시민을 폭행한 전의경이라며 14명의 이름과 출신에 대한 개인정보가 적혀 있었다.

경찰이 이 글을 작성한 30대 남성을 붙잡아 조사한 결과 인터넷에 떠도는 전의경들의 개인정보를 짜깁기해 만든 허위로 밝혀졌다.

독도괴담, 민영화괴담, 정도전괴담 등 각종 괴담도 이러한 사이트를 통해 번져나갔다.

최근에는 토론방 네티즌들이 특정 신문에 광고한 기업의 상품에 대해 불매운동을 벌이자거나 KBS의 특별 감사 반대 운동을 주장하는 등 좌충우돌식 여론몰이를 전개하고 있는 상황이다.

⊙ 인터넷 집단주의의 테러

인터넷 토론마당은 제도권과 주류 언론에서 소외됐던 목소리를 자유롭게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그러나 그 내부에서도 여론 주도층과 소외층이 구분되고 있다.

국내 연구진이 인터넷 토론장을 연구한 결과 소수의 핵심 참여자들이 논쟁점을 제기하고 정보를 뿌리는 등 논의를 압도하고 있으며 대다수의 일시 참여자들은 교묘하게 논의에서 소외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모인 곳에서 자기 의견만 주장하고 반대 의견에 대한 적개심을 축적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의견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이 아니라 극단적인 논리나 왜곡으로 흐르기 일쑤이며 이러한 극단을 지켜내기 위해서 외부적인 시위 등을 조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일부러 '뷁'이나 'ㅠㅠ' 등 한글 맞춤법을 부정하는 글을 만들면서 자기 정체성을 구현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 중에는 사회와 단절되고 소외된 사람들이 많다는 연구도 있다.

미국의 미래학자인 재런 러니어는 "인터넷에서 다수를 형성하고 있는 권력은 우리는 결코 틀릴 수 없다는 절대 진실의 오류에 빠져 있다"며 "인터넷의 군중심리는 타인에 대한 존경심과 배려가 결여돼 있어 자신의 주장과 다른 의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무조건적으로 배척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미국의 철학자 칼 포퍼는 "익명으로 나타나는 여론은 무책임한 힘의 형태이며 한 시민 집단의 그릇된 선전은 다른 집단에 쉽게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지적하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여론은 자유주의를 유지하는 데 큰 위험이 된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OECD장관 회의에 참여한 핀란드의 린덴 장관은 "자신의 의견이 다르다고 직접 감정적으로 표출하고 광고주 탄압 등의 방법으로 언론매체를 공격한다면 사회적인 소통의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며 "성숙한 의식으로 참여자들이 페어플레이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시민들의 소통역량 강화가 우선

인터넷은 이제 우리에게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질서의 공간만은 아니다.

인터넷 정보를 장악하고 있는 기득권자의 이익만을 강화시켜 줄 수 있고 인터넷 중독이나 사이버 폭력 등 온갖 부작용의 원천일 수 있다.

인터넷 법학 분야의 권위자인 팀 우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인터넷 지지자들은 인터넷을 아무도 막지 못하는 커다란 힘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제는 일정 부분 국가의 인터넷 통제를 수긍할 수밖에 없다"고 얘기한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국소적인 처방책이지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처방책은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소통 역량 강화이다.

소통 역량은 물론 컴퓨터를 능수능란하게 다루거나 인터넷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독서의 생활화나 토론의 일상화, 폭넓은 인간관계망의 구축처럼 오프라인 세계에서의 다양한 체험을 통해 확보된 문화적 역량이 충분히 구비돼 있어야 한다.

서울에서 열린 OECD 회의에 참가한 빈트 서프 구글 부회장은 "인터넷을 떠도는 불확실한 정보를 평가하고 검증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며 "신뢰할 수 있는 인터넷을 만들기 위해 네티즌에 대해 정보의 옥석을 가리는 지속적인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오춘호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choon@hankyung.com


생각의 가지치기

- 누가 인터넷 토론에서 영향력을 행사할까

- 신문과 TV 인터넷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 인터넷은 민주주의를 보다 발전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토론해봅시다

- 한국에서 위키피디아가 잘 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알아봅시다

- 인터넷 포털은 언론 기능을 할까요, 아니면 공론의 장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