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인터넷, 여론의 場이냐 선동의 場이냐
"인터넷의 힘은 신뢰가 없으면 약(藥)이 아니라 독(毒)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7일 서울에서 열린 '인터넷 경제의 미래에 관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장관회의' 개막식에서 한 말이다.

이 대통령은 "익명성을 악용한 스팸메일,거짓과 부정확한 정보의 확산은 합리적 이성과 신뢰까지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이 사회적인 혼란을 일으키는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

욕설이나 비방, 일방적인 자기 주장 등이 난무하고 있다.

인류의 지평을 넓혀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라는 초기 인터넷 예찬론자들의 소리는 온 데 간 데 없다.

오히려 대중을 선동하는 역할을 한다는 디지털 포퓰리즘에 대한 우려만 커지고 있다.

인터넷 폭력은 우리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포털 사이트는 이미 사이비 언론 권력으로 자리잡았다.

인터넷 포털 다음의 토론장인 아고라는 '명박퇴진' '명박타도'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다.

장난 치고는 심한 장난이다.

그러나 인터넷이라고 해서 정당화될 수는 없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희한한 풍경이 연출된다고 외국 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독일의 철학자 하버마스가 말한 의사소통의 합리성은 인터넷에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인터넷 매체를 장악한 네티즌은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권력집단화한다.

이들은 자기의 뜻과 다른 의견을 펼치는 네티즌을 쉽게 공격하고 따돌림시킨다.

전체 참여자들의 10%가 이러한 토론방을 주도한다는 연구보고도 있다.

이들은 현실적 사안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는 것보다 장난과 치기로 글을 올린다.

무거움보다 즐거움을 택하며 상대를 자극하고 도발하면서 쾌감을 느낀다.

인터넷이 익명이라는 점을 최대한 이용한다.

당연히 이들은 온라인에서 하는 행동을 고스란히 현실세계인 오프라인에 옮기기도 한다.

이번 촛불시위도 초기에 이러한 네티즌의 성향이 반영됐다는 분석도 있다.

문제는 인터넷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에 대한 신뢰성 수준이 전 세계에 드러났다는 점이다.

인터넷 백과사전으로 유명한 위키피디아는 한국어판에서 이명박 슈퍼주니어 독도 등 한국에서 왜곡된 정보가 유포될 가능성이 높은 71개 단어에 대해 잠정 편집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7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국제언론인협회(IPI) 총회에서도 한국의 인터넷 여론 왜곡 현상이 의제로 거론됐다.

IPI는 "한국사회의 특정 집단이 메이저 신문에 타격을 주기 위해 디지털 포퓰리즘을 이용하고 있다"며 그 사례로 인터넷 공간에서의 메이저 신문 구독 거부 캠페인과 광고주를 겨냥한 광고 중단 경고 메시지 등을 꼽았다.

다행히 의제로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정보 강국으로 자랑한 한국이 국제 망신을 당한 꼴이다.

'열린 공간'인 인터넷은 우리에게 계속 공론의 장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사이버 린치'가 공공연하게 행해지는 저질 공간, 퇴행 공간으로 바뀔까.

한국사회는 이로 인해 얼마만큼이나 막대한 경제적, 사회적 비용을 계속 치러야 할까.

오춘호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