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문화에도 우열이 있나
문화가 인류 보편적 특성을 갖는지 아니면 각 민족이나 지역의 다양한 문화가 동일하게 존중되어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란이 문화 보편주의 대(對) 상대주의 논쟁이다.

문화를 선진적 문화와 열등한 문화로 구분할 수 있다고 본다면 문화 보편주의 진영에 속하지만 문화는 다만 다양성을 가질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문화상대주의가 된다.

쉽게 말해 유행가와 클래식에 우열이 없다고 생각하면 문화 상대주의다.

인류의 문화가 발전해 오면서 구미선진국을 중심으로 먼저 꽃을 피웠고 세계 다른 나라들도 구미선진국이 이루어낸 문화의 내용을 점차 배우고 닮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이 전형적인 문화 보편주의적 사고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생각이 서구중심주의를 낳고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며 제국주의적 침략의 방패가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반성하고 새로운 문화관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 문화 상대주의의 출발이다.

레비 스트로스, 말리노프스키 등 문화 인류학자들을 중심으로 선진 후진 문화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서로 다를 뿐이라는 주장을 펴기 시작했던 것이다.

원시인의 문화라고 해도 충분히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가 있고 또 존중할 만하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문화상대주의는 20세기 후반 들면서 세계적인 공감을 얻기 시작했고 최근 서구와 이슬람 세력 간의 갈등이 증폭되면서 미국 등 서구를 규탄하는 대표적인 구호로도 정착했다.

문화 상대주의는 또 민주주의 원리와 관련하여 누구나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는 측면에서도 그 정당성을 얻고 있다.

즉 상대방의 다양한 문화적 정치적 기호를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비로소 의사소통이 정확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 상대주의는 좀 더 깊숙이 들어가보면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사회라는 말은 매우 그럴듯하지만 실제 상황에 부딪혀보면 "어! 이상하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다.

말하자면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경우이기는 하지만 사람의 목숨을 재물로 바치는 문화나 인종을 차별하는 문화를 상대주의라는 명분 아래 인정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봉착하면 대답할 말이 없어진다.

더구나 개인적 자유와 인권을 짓밟는 문화를 용인하게 된다면 이는 인류 자체의 비극이 되고 만다.

민주주의의 가치라는 것부터가 실은 서구에서 이식된 보편적 가치의 하나다.

민족주의도 마찬가지다.

독재를 정당화할 수도 없고 남녀평등 같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부정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

예를 들어 어떤 나라에서는 여성이 간통하면 돌로 죽이는 문화가 있는데 이런 경우도 용인해야 하는지도 문제다.

지독한 남성중심 사회여서 여성의 성감대를 어릴 때 아예 잘라버리는 지경이라면 어떻게 봐야 하나.

민주적 가치를 훼손하는 가부장적 질서를 고수한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이를 규탄할 것인가.

상대를 존중하라고 하지만 이 같은 저급한 문화권에서라면 딴 동네 이야기이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독일인과 유태인의 문제라고만 할 것인가.

우리는 이런 경우에 정의감을 내세우지 않을 수 없고 국제적으로도 개입하게 된다.

민주주의요 상대주의라고는 하지만 예를 들어 학교에서 학생과 선생님이 동일할 수는 없다.

낮은 단계의 지식과 문화가 있고 그런 입장에서는 상위의 지식과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을 우리는 성장이요 성숙이라고 한다.

오춘호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