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 영향…토론 문화 없어
사생결단 전쟁으로 오해도
한국인이 협상에는 약하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있다.
지난해 말 미국 노스웨스턴대가 세계 각국 최고경영자(CEO)들의 협상 능력을 조사한 결과 한국은 조사 대상 국가 16위 중 16위를 차지했다.
한국이 '꼴찌'를 한 것이다.
한국은 왜 이처럼 협상에 약할까.
한국인의 어떤 기질이 한국을 협상 후진국으로 만들었나.
⊙ 명분이 실리에 앞섰다
한반도를 거쳐갔던 여러 왕조들은 조선 왕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국가 의사 결정 과정을 합의제로 운영했다.
신라의 화백 제도를 비롯 백제의 정사암회의, 고구려의 제가회의, 고려의 도병마사 등은 대신들의 만장일치 합의제가 원칙이었으며 합의에 이르는 과정에서 상하 간 효과적인 의사소통과 다자 간 협상이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그러나 유교적 명분을 중시한 조선은 타협이나 협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명분 뒤에 숨은 힘겨루기에 의해 의사 결정이 이뤄졌다.
현실을 생각하는 실리, 실용주의는 항상 밀렸으며 권위를 앞세운 명분이 중요한 자리를 잡게 됐다.
협상을 할 경우에도 내용이나 알맹이가 아니라 겉치레나 체면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황상민 연세대 교수는 "한국인들은 협상을 통해 나와 집단,우리나라가 체면이 상실되지 않으면서 가능한 한 얼굴이 서야 한다는 심리를 갖고 있다"며 "따라서 협상의 최종 목표는 체면이나 지위의 유지라는 협상 외적인 기준이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입증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조선 중기 인조 때 청의 침략 과정에서 일어난 척화파와 주화파의 대립이다.
명분을 앞세운 척화파는 청과는 사대 관계를 맺을 수 없으며 청을 즉시 응징하자고 주장했다.
실리를 택하고자 한 주화파는 외교 협상으로 청의 침략을 저지한 다음 내정 개혁을 통해서 국력을 키우자는 현실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척화파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결국은 청이 조선을 침공하는 구실만 만들게 됐다.
개혁과 개방을 하라고 요구하는 열강에 맞서 쇄국정책을 편 대원군의 사례도 권위와 명분을 중요시하게 생각한 소산이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조선 역사에서 명분은 외교와 협상력의 부재를 낳았고 이 유전자가 지금까지 계승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고려대 박노형 교수는 "실리를 추구한다면 협상에서 관련된 쟁점을 조목조목 따지고 그 장단점을 논의해야 하는데 한국인들의 권위주의적 상하관계에서 그러한 과정은 찾아볼 수 없게 됐다"며 "이러한 결과가 협상후진국으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 '빨리빨리'와 '끝장 문화'가 협상 망친다
외국인들이 한국인의 특성으로 꼽는 것이 조급성이다.
'빨리빨리'문화로 대표되는 조급성은 한국인들의 역동성과 부지런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러나 찬찬히 따져보면 조급성은 무계획과 논리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시간을 계획적으로 활용하고 낭비를 줄이는 것은 서양인들에게는 보편적이다.
시간을 관리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을 관리하지 못하고 나아가 문제해결 능력이 없는 인간으로 통한다.
협상에서 승자는 물론 시간적 제약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다.
시간을 관리하지 못하면 협상에서 치명적이다.
이번 쇠고기 협상에서 나타나듯 뭔가에 쫓기듯이 스스로의 데드라인을 먼저 설정하는 사람은 상대에게 많은 것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
일단 시작하면 양보와 타협없이 끝장을 봐야 한다는 끝장 문화도 협상에서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이 끝장문화도 명분을 중시하는 근본주의자들이 내세우는 속성으로 중요한 사안을 감정적으로 처리하게 만들어 협상에서 사리를 판단하고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학자들은 얘기한다.
⊙ 문서화된 합의 조건에 관대
한국인들은 인간 관계를 우선하기 때문에 자신의 목표와 이해관계가 변경됐을 경우 필요에 의해 합의조건을 변경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길 만큼 합의 문서나 서면 약정에 대해 관대하거나 소홀하다.
세계적인 협상전략가인 미국의 그리핀 박사는 "한국인들은 대외 협상 과정에서 나온 협상문안과 약정을 향후 업무 진행을 규정해 놓은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 경향도 있고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척해 협상 결과를 다시 뒤집어 버리려는 행태도 가끔 나타난다"고 언급했다.
심지어는 협상 과정에서 자신이 잘못이나 실수를 했을 때 이를 자신의 잘못보다 운명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또 계약을 체결한 후 상호 부담이 발생했을 경우 계약서에 의하지 않고 단순히 서로 부담을 나누어 갖자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 어릴 때부터 협상 교육받아야
외국에서는 협상 교육이 리더십 교육만큼 대중화되어 있다.
오늘날 미국이 협상 강국으로 자리잡은 비결이기도 하며 미국과의 협상에서 한국이 계속 불리한 입장에 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의 경우 1980년대 이미 상당수 대학에 협상 과정이 개설돼 본격 교육을 시작했다.
이에 비해 우리는 아직 협상 교육을 제대로 가르치는 곳을 찾기 힘들다.
박노형 교수는 "한국과 같이 협상문화가 체화돼 있지 않고 또한 협상 문화가 발달하기 어려운 사회에서 더욱 협상 교육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기본적으로 협상을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또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이에 대한 노하우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 박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따라서 초등학교에서부터 특정 쟁점에 대해 논의해 해결해야 한다는 개념부터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협상 교육 인력을 제대로 길러내야 할 것이라고 역설한다.
협상이란 결국 감정을 내세우는 게임이 아니라 합리와 논리에서 움직이는 상호 이해 과정이다.
따라서 이러한 논리를 학습하고 체화시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오춘호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choon@hankyung.com
생각의 가지치기
- 주화파와 척화파의 주장을 오늘날과 비교한다면
- 왜 미국인은 한국인과의 협상을 가 장 힘들어 하나
- 세계에서 어느 민족이 협상을 잘 할까. 그 이유는
- 서희의 협상 전략에 대한 자료를 읽고 토론해봅시다
- 세상을 바꾼 협상 사례를 찾아 토론해봅시다
사생결단 전쟁으로 오해도
한국인이 협상에는 약하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있다.
지난해 말 미국 노스웨스턴대가 세계 각국 최고경영자(CEO)들의 협상 능력을 조사한 결과 한국은 조사 대상 국가 16위 중 16위를 차지했다.
한국이 '꼴찌'를 한 것이다.
한국은 왜 이처럼 협상에 약할까.
한국인의 어떤 기질이 한국을 협상 후진국으로 만들었나.
⊙ 명분이 실리에 앞섰다
한반도를 거쳐갔던 여러 왕조들은 조선 왕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국가 의사 결정 과정을 합의제로 운영했다.
신라의 화백 제도를 비롯 백제의 정사암회의, 고구려의 제가회의, 고려의 도병마사 등은 대신들의 만장일치 합의제가 원칙이었으며 합의에 이르는 과정에서 상하 간 효과적인 의사소통과 다자 간 협상이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그러나 유교적 명분을 중시한 조선은 타협이나 협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명분 뒤에 숨은 힘겨루기에 의해 의사 결정이 이뤄졌다.
현실을 생각하는 실리, 실용주의는 항상 밀렸으며 권위를 앞세운 명분이 중요한 자리를 잡게 됐다.
협상을 할 경우에도 내용이나 알맹이가 아니라 겉치레나 체면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황상민 연세대 교수는 "한국인들은 협상을 통해 나와 집단,우리나라가 체면이 상실되지 않으면서 가능한 한 얼굴이 서야 한다는 심리를 갖고 있다"며 "따라서 협상의 최종 목표는 체면이나 지위의 유지라는 협상 외적인 기준이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입증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조선 중기 인조 때 청의 침략 과정에서 일어난 척화파와 주화파의 대립이다.
명분을 앞세운 척화파는 청과는 사대 관계를 맺을 수 없으며 청을 즉시 응징하자고 주장했다.
실리를 택하고자 한 주화파는 외교 협상으로 청의 침략을 저지한 다음 내정 개혁을 통해서 국력을 키우자는 현실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척화파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결국은 청이 조선을 침공하는 구실만 만들게 됐다.
개혁과 개방을 하라고 요구하는 열강에 맞서 쇄국정책을 편 대원군의 사례도 권위와 명분을 중요시하게 생각한 소산이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조선 역사에서 명분은 외교와 협상력의 부재를 낳았고 이 유전자가 지금까지 계승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고려대 박노형 교수는 "실리를 추구한다면 협상에서 관련된 쟁점을 조목조목 따지고 그 장단점을 논의해야 하는데 한국인들의 권위주의적 상하관계에서 그러한 과정은 찾아볼 수 없게 됐다"며 "이러한 결과가 협상후진국으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 '빨리빨리'와 '끝장 문화'가 협상 망친다
외국인들이 한국인의 특성으로 꼽는 것이 조급성이다.
'빨리빨리'문화로 대표되는 조급성은 한국인들의 역동성과 부지런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러나 찬찬히 따져보면 조급성은 무계획과 논리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시간을 계획적으로 활용하고 낭비를 줄이는 것은 서양인들에게는 보편적이다.
시간을 관리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을 관리하지 못하고 나아가 문제해결 능력이 없는 인간으로 통한다.
협상에서 승자는 물론 시간적 제약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다.
시간을 관리하지 못하면 협상에서 치명적이다.
이번 쇠고기 협상에서 나타나듯 뭔가에 쫓기듯이 스스로의 데드라인을 먼저 설정하는 사람은 상대에게 많은 것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
일단 시작하면 양보와 타협없이 끝장을 봐야 한다는 끝장 문화도 협상에서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이 끝장문화도 명분을 중시하는 근본주의자들이 내세우는 속성으로 중요한 사안을 감정적으로 처리하게 만들어 협상에서 사리를 판단하고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학자들은 얘기한다.
⊙ 문서화된 합의 조건에 관대
한국인들은 인간 관계를 우선하기 때문에 자신의 목표와 이해관계가 변경됐을 경우 필요에 의해 합의조건을 변경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길 만큼 합의 문서나 서면 약정에 대해 관대하거나 소홀하다.
세계적인 협상전략가인 미국의 그리핀 박사는 "한국인들은 대외 협상 과정에서 나온 협상문안과 약정을 향후 업무 진행을 규정해 놓은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 경향도 있고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척해 협상 결과를 다시 뒤집어 버리려는 행태도 가끔 나타난다"고 언급했다.
심지어는 협상 과정에서 자신이 잘못이나 실수를 했을 때 이를 자신의 잘못보다 운명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또 계약을 체결한 후 상호 부담이 발생했을 경우 계약서에 의하지 않고 단순히 서로 부담을 나누어 갖자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 어릴 때부터 협상 교육받아야
외국에서는 협상 교육이 리더십 교육만큼 대중화되어 있다.
오늘날 미국이 협상 강국으로 자리잡은 비결이기도 하며 미국과의 협상에서 한국이 계속 불리한 입장에 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의 경우 1980년대 이미 상당수 대학에 협상 과정이 개설돼 본격 교육을 시작했다.
이에 비해 우리는 아직 협상 교육을 제대로 가르치는 곳을 찾기 힘들다.
박노형 교수는 "한국과 같이 협상문화가 체화돼 있지 않고 또한 협상 문화가 발달하기 어려운 사회에서 더욱 협상 교육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기본적으로 협상을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또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이에 대한 노하우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 박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따라서 초등학교에서부터 특정 쟁점에 대해 논의해 해결해야 한다는 개념부터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협상 교육 인력을 제대로 길러내야 할 것이라고 역설한다.
협상이란 결국 감정을 내세우는 게임이 아니라 합리와 논리에서 움직이는 상호 이해 과정이다.
따라서 이러한 논리를 학습하고 체화시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오춘호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choon@hankyung.com
생각의 가지치기
- 주화파와 척화파의 주장을 오늘날과 비교한다면
- 왜 미국인은 한국인과의 협상을 가 장 힘들어 하나
- 세계에서 어느 민족이 협상을 잘 할까. 그 이유는
- 서희의 협상 전략에 대한 자료를 읽고 토론해봅시다
- 세상을 바꾼 협상 사례를 찾아 토론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