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신뢰와 정직, 도덕자본이 부를 창출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시민이 이끌어가는 시민 사회다.

시민 사회는 자신의 행복과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인정되는 사회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이익과 갈등을 빚게 되고,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법을 어기기도 한다.

시민의식과 시민 윤리는 중요한 사회자본의 하나다.

법 질서와 사회 규칙이라는 큰 구조물을 떠받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접착제와 같은 것이다.

우리나라의 시민 의식은 크게 개선된 것도 사실이다.

이는 우리보다 떨어진 후진국을 여행해 보면 쉽게 알게 된다.

그러나 선진국들과는 여전히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시민의식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지 않고는 선진국으로 도약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 왜 지금 시민의식인가

시민 사회는 개인의 자유와 인권의 평등을 기본 이념으로 탄생했다.

서구 사회에서 중산층을 기반으로 하는 시민 계층들은 봉건귀족과 절대 왕조로부터 이러한 자유와 인권을 찾으려는 노력을 400년이라는 긴 시일에 걸쳐 시도한 끝에 시민 사회를 일궈냈다.

이들은 시민 사회를 형성하는 데 필요한 전통사회와 차별되는 윤리도 찾아냈다.

우선 중세 사회에서 악덕으로 간주되던 개인의 이기심이 시민사회에 와서는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근면 성실 정직과 같은 윤리뿐만 아니라 자본의 축적, 준법정신, 자유와 이에 따른 책임 등은 주요 덕목으로 간주됐다.

한국도 20세기 후반 급속한 경제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시민사회로 편입됐다.

그러나 경제의 근대화가 이루어진 수준 만큼 시민의식이 고양되지는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의 시민윤리는 가족주의적 신분 사회를 배경으로 이뤄진 전통윤리와 혼재한 상태로 아직까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전통윤리에서 강조하는 수직적 질서의식이나 권위주의적 사고방식 등은 시민윤리와 전면 배치되는 등 가치의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 시민 의식은 사회 인프라다

미국의 정치학자 제임스 콜먼은 개인들이 상호 협력하는 것이나 사회적 시너지를 얻기 위해 쉽게 공조하는 보이지 않는 유대 관계를 사회 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하면서 이를 경제적 자본에 버금가는 요소로 간주했다.

그는 사회자본의 핵심 요소로 '신뢰'를 들면서 국가의 성장과 사회 자본 간에는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밝혔다.

노벨상 경제학상을 수상한 공공경제학자 제임스 뷰캐넌은 신뢰,협동심 등을 '도덕 자본'(Moral Capital)으로 이름짓고 한 사회의 발전과 부의 창출에는 원칙과 규범의 준수가 필요하며 한번 파괴된 윤리를 회복하는 데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신뢰를 공공재 성격의 자본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시민의식이 없어 국민들에게 전가되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상인 경찰대 교수는 "도로 혼잡료 17조원, 교통사고 피해 13조원 등을 감안하면 법질서 파괴로 인해 한 해 동안 부담하는 돈이 63조원에 이른다"며 "이를 줄이면 국내 총생산 잠재 성장률을 3%포인트 이상 높일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불법 파업과 시위로 인한 피해도 엄청나서 국가 이미지를 떨어뜨리고 기업들의 해외 수출에도 막대한 지장을 준다.

⊙ 합리적 이기주의가 정착돼야

시민사회의 윤리는 개인의 이익추구에서 출발하지만 기본적으로 타인의 이익 추구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법질서와 공공윤리는 우리가 마음껏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역할도 한다.

바람직한 시민 윤리는 각각의 이익에 기초하면서도 그들의 이해 관계를 조정하는 기능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도덕 원칙을 '합리적 이기주의'라고 한다.

예를 들면 자신이 신호등을 지키지 않을 경우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신호등을 지키지 않게 되고 이는 결국 모두에 손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단기적인 잇속만을 챙겼다는 '똑똑한 바보'보다는 장기적으로 자신한테 돌아오는 이익이 무엇인가를 성찰하는 '합리적 이기주의자'가 되어야 하며 이런 사람들이 많아질 때 시민사회가 성숙된다는 것이다.

오춘호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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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야마가 말하는 '신뢰'란…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사진·Francis Hukuyama 1952∼)는 시민의식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 자본을 평가한 대표적 학자다.

후쿠야마는 그의 저서 '트러스트'(한국경제신문사 발행)에서 자유민주주의 시장 경제체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경쟁 시스템과 함께 사회 구성원 사이의 신뢰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후쿠야마가 규정하는 신뢰(Trust)란 사회구성원들이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함께 일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협동의 규범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일한다면 사회적 거래에서 나타나는 중개 비용이 감소하고 예상치 못한 손해에 대비해야 할 필요성도 줄어들며 분쟁이 줄어들 것이라고 그는 밝힌다.

후쿠야마는 따라서 혈연이나 지연과 같은 태생적 신뢰가 아닌 인간의 공통 규범을 바탕으로 서로 믿고 존중하며 자발적으로 협력하게 만드는 신뢰를 가진 사회가 시장 경쟁체제에서 살아남을 것이라고 이 책에서 주장한다.

그는 일본인을 대상으로 사회 관계망 조직을 연구한 결과 이런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또 미국인들이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에 현대기업의 발전에 선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미국인들의 강한 사회성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상대방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은 형식화된 규범이나 규제의 체제 속에서만 협력하게 될 것이며 신뢰의 대체물이 되는 이러한 법적 장치를 이용하면 경제학자들이 업무 추진비라고 부르는 별도의 비용이 소요된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한 사회에 불신이 팽배하면 신뢰가 높은 사회에서는 부담할 필요가 없는 일종의 보이지 않는 세금을 모든 경제 활동에 대한 대가로 지불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생각의 가지치기

- 시민생활에 절실히 요구되는 시민윤리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 서구의 시민윤리는 나라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

- 종교와 시민윤리가 관련 있을까

- 충효사상이 시민윤리와 완전히 배치되는 것일까

- 법과 도덕의 관계는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