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소득이 꼭 행복의 척도는 아니지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다.

공부를 잘하지 않아도 행복해 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청소년 멜로물이다.

하지만 부모님과 선생님들은 늘 공부! 공부! 성적! 성적! 외쳐댄다.

국가 경제 정책도 비슷하다.

'행복은 소득순이 아니잖아요'라고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고 있지만 경제정책을 수행하는 정부 관리들은 소득수준을 높이기 위해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왜 그런가?

한마디로 국민소득이야말로 삶의 질을 증명하는 현실적 지표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소득이 높다고 반드시 행복해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는 선후진국의 평균수명 유아사망률 등 사회지표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국민소득은 생활 수준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최고의 지표는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얻을 수 있는 차선의 지표다.

⊙ 행복은 소득순이 아니다=이스털린의 역설

행복은 소득순이 아니라고 처음 주장한 사람은 미국 남가주대학의 이스털린 교수이다.

그는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감을 지수로 만들어 국가별로 조사했다.

그 결과 한 국가내에서 소득이 높은 사람은 낮은 사람에 비해 행복하다고 응답하는 편이었지만 국가별 비교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즉 선진국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지수나 후진국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지수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다.

또 한 나라 국민들의 현재 행복지수를 과거와 비교했을 때도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스털린 이후 많은 학자들은 행복과 소득의 관련성에 대해 관심을 갖고 왜 이러한 괴리 현상이 나타나는지 연구했다.

연구 결과 사람들은 행복을 자신의 절대적인 수준이 아닌 다른 사람과 비교한 상대적인 수준에서 느끼고, 소득이 늘어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늘어난 소득수준에 적응해 행복감이 소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으로 해석했다.

또 인간 욕구 단계설을 들어 소득이 높아지면 의식주 등 기본 욕구보다 성취감 등 자아실현 욕구가 강해진다면서 소득수준에 따라 행복의 질이 달라지기 때문으로 보았다.

이들은 이에 따라 소득이 높은 선진국들은 국민소득 향상을 정책 목표로 삼는 대신 가족 친구관계 공동체 만족도 등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등 자아실현 기회를 늘리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한다.

⊙ 소득은 삶의 질 개선 척도

국민소득이 사람들의 행복수준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에 대해 밴 버냉키 미국 FRB 의장은 행복지수는 주관적이어서 믿을 수 없다고 반박한다.

그는 '버냉키 경제학'에서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 경제적 요소를 연구하기 위해 몇몇 학자들이 설문자료를 사용하고 있으나 설문조사는 타당성을 입증하기 불가능하다며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행복은 소득수준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이스털린 등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의미다.

경제학자들은 대체로 국민소득이 경제적 복지와 분명히 관련되어 있다고 보고 있다.

2004년 유엔 인간개발보고서(hdr.undp.org)에 따르면 미국 캐나다 일본 등 선진 9개국(1인당 평균 GDP 2만9000달러)과 아프리카 49개 최빈국(1인당 GDP 1307달러)은 소득과 복지수준에서 큰 차이가 난다.

평균 기대수명의 경우 선진국은 78세였으나 저개발국은 50.6세였고,영아사망률(1000명당)은 각각 5명과 157명, 문자해독률은 각각 99%와 52.5%로 뚜렷한 차이가 났다.

국민소득이 높은 국가일수록 복지시설이 완비돼 삶의 질도 높아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버냉키는 부가 필수적으로 행복과 마음의 평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대다수 사람들은 물질적 번영을 달성하는 데 중요한 가치를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국민소득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재화의 서비스만 집계하므로 경제적 복지를 완벽하게 나타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자신의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가정주부의 활동은 국민소득에 포함되지 않지만 유아원을 차려 아이를 돌보는 가정주부의 활동은 국민소득에 포함된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여성의 사회진출이 많은 선진국의 경우 후진국보다 국민소득이 더 많이 집계될 수 있다.

환경오염을 하면 이를 해소시키는 비용만큼 소득에서 차감돼야 마땅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점도 문제다.

그러나 소득의 변화가 행복의 새로운 가능성을 나타내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국민소득은 한계가 있지만 아직까지 이보다 더 나은 경제적 복지를 나타내는 지표는 나오지 않고 있다.

행복을 나타내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이를 정책 목표로 삼고 있다.

박주병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bpar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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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행복 지수들…

이스털린 교수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은 인간의 행복도를 측정하기 위해 행복지수를 만들었다.

행복도를 측정하는 방법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2003년 영국의 인생상담사인 피트 코언과 여성 심리학자인 캐럴 로스웰이 개발한 행복지수다.

이들은 1000여명의 영국인을 인터뷰한 뒤 개인의 행복은 성격, 생존조건, 미래에 대한 가치 등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았다.

행복=개인의 성격+(5×경제.생존 조건)+(3×미래에 대한 가치)이다.

즉 행복지수는 '나는 외향적이고 변화에 대해 유연한 편이다(개인적 특성1)''나는 긍정적이고,우울하고 침체된 기분에서 비교적 빨리 탈출하며 스스로를 잘 통제한다(개인적 특성2)''내가 가진 건강,돈,안전,자유 등에 대해 기본적으로 만족하고 있다(생존조건)''나는 가까운 이에게 도움을 구할 수 있고,내 일에 몰두하는 편이며,스스로 세운 기대치를 달성하고 있다(미래에 대한 가치)' 등 4개 항목으로 구성된다.

이들 4가지 항목에 대해 각각 '매우 그렇다'(100점)부터 '전혀 그렇지 않다'(0점)는 대답을 얻은 뒤 각 항목에 가중치를 부여해 합산하는 식으로 산출된다.

설문조사에 응하는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행복지수는 다르게 나올 수밖에 없다.

행복지수는 개발자의 의도에 따라 구성항목의 특정 변수에 높은 가중치가 부여되기도 한다.

영국의 신경제재단이 개발한 행복지수(HAPPINESS PLANET INDEX)는 환경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삶의 만족도,평균수명,환경요인을 기준으로 계산되는데 다른 지수와 달리 에너지 소비량 생존에 필요한 면적 등의 환경변수를 중요한 척도로 삼는다.

이 조사에 따르면 1위는 남태평양의 바누아투였으며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도미니카 등 남미 국가들이 대부분 상위권을 차지했다.

반면 일본은 95위,한국은 102위로 아시아 국가들은 하위권에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