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회사 제도 등장과 함께 증권 투자업 눈부신 발전…잦은 위기 부작용도
셰익스피어(1564∼1616)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는 중세의 금융을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 한 토막이 나온다.
주인공 안토니오는 친구를 위해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으로부터 빚을 제때 갚지 못하면 자기의 가슴살 1파운드를 제공한다는 조건으로 돈을 빌린다.
약속한 날 돈을 갚지 못해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자 친구의 약혼자가 재판관으로 나타나 샤일록에게 원금의 10배 받고 대신 가슴살은 베어내지 않는 게 어떠냐고 제안한다.
재판관의 거듭된 설득에도 불구하고 샤일록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살은 떼어내되 피는 한방울도 흘려서는 안 된다고 판결,친구의 생명을 구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베니스의 상인은 중세 기독교 사회의 반유대 정서를 표현하고 있지만 이를 통해 초기 금융업의 상황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기독교 중심의 세계였던 중세에는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은 나쁜 행위로 여겨졌다.
그래서 고리대금업은 천대받던 유대인들의 몫이었다.
유대인들은 가슴살을 도려내 복수하고 싶을 정도로 기독교인들의 핍박과 설움을 받으면서 금융업을 익혔다.
오늘날 로스차일드 골드만삭스 리먼브러더스 등 세계적인 금융회사 대부분이 유대인에 의해 설립,운영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관련이 있다.
⊙ 주식회사 제도 등장으로 증권시장 발전
중세 고리대금업을 뿌리로 하고 있는 금융업은 18세기 이후 자본주의의 발달에 힘입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주식회사 제도와 함께 등장한 증권업은 금융업의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 냈다.
사람들이 맡긴 돈을 기업에 대출해 주는 기존의 은행 대출을 간접금융이라고 한다면 기업이 발행한 주식이나 채권을 투자자들이 구입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는 증권업은 직접금융으로 각광받았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주식 거래가 한층 자유로워지면서 세계 금융시장은 직접 금융(증권) 시장 위주로 발전하고 있다.
기업들은 이제 은행대출보다는 주식이나 채권을 발행해 직접 자금을 조달한다.
사람들도 은행에 돈을 맡기고 고정 이자를 받기보다는 가격 하락 위험이 있지만 가격이 올라갈 것으로 기대되는 주식이나 채권을 갖고 싶어한다.
2006년 말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유하고 있는 총 금융자산은 6933조원으로 이 중 은행 예금은 1256조원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채권 1369조원, 주식 1213조원,보험 346조원,대출 1251조원,기타 1498조원으로 채권 주식이 전체의 37%를 차지하고 있다.
은행 예금보다 주식 채권으로 돈이 몰리자 주식 채권을 활용한 다양한 금융 상품이 대거 선보이고 있다.
이른바 파생금융상품이다.
이번에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대출) 부실 여파로 베어스턴스 등 투자은행이 파산 위기에 몰린 것도 파생금융상품의 여파이다.
이들이 투자한 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는 모기지 채권이나 주식 등을 혼합해 이를 담보로 다시 발행된 파생 금융상품이다.
주택담보 대출자들이 집값 하락으로 이자나 원금을 제때 갚지 못하게 되자 모기지 채권이 부실화되고 그 여파로 파생금융상품도 연쇄적으로 부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파생금융상품은 기업이나 금융회사들로 하여금 자금을 보다 수월하게 조달할 수 있도록 해 주지만 자칫 기초자산이 부실화될 경우 그 파급 영향 또한 엄청날 수밖에 없다.
⊙ 금융 안전망 갈수록 중요해져
금융시장은 자금의 수요자(기업)와 공급자(투자자)를 연결시켜 주는 중요한 기능을 하기 때문에 흔히 사람의 혈관에 비유된다.
그런데 혈관은 어느 한 곳만 막혀도 몸 전체가 움직이지 않는 결과를 가져 온다.
일반 제조업과 달리 금융은 그만큼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크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모든 국가는 금융시장이 안정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안전장치를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앙은행, 금융감독원, 예금보험공사 등을 금융안전망이라고 할 수 있다.
중앙은행은 일시적으로 자금이 모자라는 은행에 자금을 빌려 주는 최종 대부자 기능을 한다.
연방준비은행인 FRB가 베어스턴스에 구제 금융을 지원한 것도 미국 경제의 혼란을 막기 위한 목적이다.
금융감독원은 은행 증권 보험 등 모든 금융회사의 설립 요건을 정하고 이들이 규정을 지키는지 관리 감독한다.
예금보험공사는 은행 등이 파산 위기에 몰렸을 경우 적립해 둔 보험금으로 예금을 대신 지급함으로써 사람들이 한꺼번에 은행으로 몰려드는 혼란을 막는 역할을 한다.
금융 시장의 안전을 위한 제도로 예금을 받는 일과 증권투자 업무를 한 회사에서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냐의 문제도 자주 논란이 된다.
1929년 세계 대공황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은 예금은행과 투자은행(증권투자업) 업무를 같은 회사에서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대공황 이후 많은 금융회사가 파산해 예금자들이 예금을 인출하지 못하게 되자 1933년 예금은행업과 증권투자업무를 완전히 분리했다.
그 후 1980년대 들어 금융기법이 발달하고 상품 수요도 다양하게 나타나자 영국은 금융의 내부 업종 간 벽을 허물었으며 다른 나라도 금융의 업종 간 벽을 낮추고 있다.
우리나라는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한 후 그 아래에 은행 보험 증권 투자은행을 둘 수 있도록 간접적으로 겸업을 허용하고 있다.
박주병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bpar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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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금융회사들
우리 나라의 금융회사는 크게 예금은행, 증권 관련 회사, 할부금융회사, 보험, 부실회사 정리 회사 등으로 나뉜다.
이들은 모두 금융감독원의 인·허가를 받아 설립,운영되고 있다.
예금은행에는 일반 시중 은행을 비롯 상호저축은행, 신용협동조합이 있고 증권 관련 회사로는 증권회사 선물회사 자산운용회사 등이 있다.
자금(또는 시설물)을 빌려주는 업무를 전문으로 하는 할부금융업에는 리스, 카드, 캐피털회사가, 부실 회사 정리 회사로는 자산관리공사와 CRC(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Corporate Restructuring Company)가 영업 중이다.
자산운용회사 캐피털회사 CRC 등은 1990년대 자본시장이 개방되면서 등장한 새로운 금융회사들이다.
반면 은행 증권업은 외환위기 이후 많은 회사가 시장에서 퇴출당해 숫자가 크게 줄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국내 은행은 수협 농협을 포함해 18개다.
상호저축은행은 110개,신용협동조합은 1022개가 영업 중이다.
증권회사 39개, 자산운용회사 49개,리스 23개, 카드(전업) 6개, 캐피털 15개, CRC(순수) 21개, 보험 29개(생명 14, 손해 15)사 등이 영업하고 있다.
숫자로 보면 신용협동조합이 가장 많다.
그러나 신협은 말 그대로 협동조합이다.
조합원들끼리 출자를 한 돈을 바탕으로 서로 대출을 해 주는 금융회사다.
예금보험공사는 금융회사가 부실화됐을 경우 예금을 일정 한도 내에서 대신 지급해 주는데 신용협동조합은 예금보험의 대상이 아니다.
반면 증권회사의 상품 중 근로자증권저축은 예금 성격이 강해 예금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예금보험공사는 보험 가입 상품에 대해 해당 금융회사가 부실화됐을 경우 5000만원까지 대신 지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