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이성적 과열'투자가 거품 초래…버블 붕괴땐 연쇄 부도
[Cover Story] 금융위기는 왜 발생하지?
전 세계에 또 한 차례 '금융위기'의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진원지는 놀랍게도 세계 경제의 중심인 미국이다.

미국의 집값 하락에서 비롯된 서브프라임 모기지(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이 집을 살 때 빌려준 돈) 부실파문은 금융시장을 뒤흔들더니 급기야 85년의 역사를 가진 우량 투자은행까지 속절없이 무너뜨렸다.

집을 살 때 금융기관은 집값을 감안해 돈을 빌려주는데 집값이 떨어지면서 빌려준 돈을 갚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다행히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정부의 신속한 조치로 다른 투자은행들이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위기상황은 일단 막아냈다.

그러나 먹구름이 걷히고 해가 뜨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전개과정을 통해 금융위기가 어떻게 발생하고 확산되는지 들여다보자.

⊙ 서브프라임이 어떻게 베어스턴스를 망하게 했나

지금 미국을 뒤흔들고 있는 금융위기는 부동산시장에 대한 지나친 낙관에서 비롯됐다.

2000년대 이후 지속된 저금리를 배경으로 집값이 급등했고 모기지회사와 은행 등 금융회사들은 수익이 많이 남는 주택대출시장으로 몰려들었다.

특히 여러 모기지대출 채권을 묶어 이를 담보로 새로운 채권을 만들어 파는 금융기법이 확산되자 조기에 현금확보가 가능해진 모기지회사들은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에 대한 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을 무분별하게 늘렸다.

금리가 낮게 유지되고 담보로 잡은 집값이 오르는 동안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주택 값이 떨어지고 시중금리가 상승하면서 대출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급증했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업체들의 파산이 늘어났다.

작년 초 처음 문제가 불거졌을 땐 모기지 업계 내 문제려니 하고 크게 우려하지 않았다.

금융시장도 주가가 폭락하는 등 일시적으로 흔들렸지만 곧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담보로 발행된 채권에 투자했던 금융회사들과 헤지펀드들이 대거 손실을 본 것으로 드러나면서 사태는 들불처럼 번져갔다.

서브프라임 대출에 문제가 생기자 이들 채권의 가치는 폭락했다.

채권에 문제가 생기면 책임지겠다고 보증을 섰던 채권보증업계에도 불똥이 튀었다.

신용평가회사들은 채권보증업체들의 재무상태 악화를 경고하면서 신용등급을 낮췄다.

그러자 이들이 보증섰던 다른 채권값도 줄줄이 떨어졌다.

채권시장 전체가 마비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생겨났다.

여기에다 손실을 입은 금융회사들은 자기 앞가림에 급급해 대출을 줄이기 시작했다.

금융회사들끼리도 서로 믿지 못해 돈을 잘 빌려주지 않게 됐다.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자금확보에만 매달리다 보니 이들로부터 달러자금을 빌려쓰던 다른 나라 은행과 기업들도 타격을 입었다.

미 FRB는 신용경색이 심화되자 서둘러 금리를 내리고 대규모 긴급자금을 투입하는 등 '불끄기'에 나섰다.

모기지와 연계된 채권을 FRB가 담보로 받아서 돈을 빌려주는 '묘안'도 짜냈다.

그러나 한번 악화되기 시작한 금융시장의 불안감은 계속 확산됐고 '돈이 부족하다'는 소문 한방에 베어스턴스는 무너졌다.

⊙ '비이성적 과열'이 금융위기로 이어져

금융위기 과정에서는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이 1996년 미국 주식시장 과열을 지적하며 언급했던 '비이성적인 과열 (irrational exuberance)'이 늘 문제가 된다.

무리하게 돈을 빌려 무차별적으로 투자하다 보면 주가나 부동산 등 자산가치에 거품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거품이 급격하게 빠지면서 위기가 불거진다.

그리고 금융위기는 실물경제의 악화로 이어진다.

1920년대 후반 미국의 대공황이 그랬고 이번 서브프라임 사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외환위기도 국내 은행과 기업들이 과도하게 단기 외채를 끌어다 쓴 것이 화근이었다.

'비이성적 과열'은 돈이 넘쳐날 때 나타나기 쉽다.

경제활동과 성장에 필요한 것보다 많은 돈이 풀리면 적은 비용(이자)으로 돈을 빌려쓸 수 있다.

그러다보면 위험에 둔감해지고 싸게 빌린 돈을 이용해 고위험-고수익 자산에 투자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흥청망청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은행에서 연 4%의 돈을 빌려 주식시장에서 연 10%의 수익률을 낼 것으로 기대한다면 은행대출을 받아 주식을 사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마련이다.

특정자산에 돈이 몰리면 자산가격이 급등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투자자들이 '이게 아니다' 싶어 일제히 내다팔기 시작하면 자산가치가 급락한다.

이 경우 돈을 빌려주거나 스스로 위험자산에 투자한 금융회사들이 먼저 타격을 입는다.

금융위기를 예방하기 위해선 적절한 안전판과 규제가 필요하다.

풍선에 바람이 너무 많이 들어가 터질 지경에 이르기 전에 적정수준으로 바람을 뺄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또 일단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신속한 조치로 파장을 줄이는 것이 최선이다.

금융위기 확산엔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가 큰 몫을 한다.

헨리 폴슨 미 재무부장관이 나서서 베어스턴스의 신속한 매각 결정을 이끌어낸 것도 시장의 불안심리 확산을 차단해 금융회사들의 연쇄 부도 사태를 막는 게 시급했기 때문이다.

박성완 한국경제신문 기자 psw@hankyung.com


------------------------------------------------------------

미국 금융위기의 역사

금융위기는 자본주의 경제가 시작된 이후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미국의 금융위기는 1930년대 대공항의 시발점이 된 1929년 증시 대폭락 이전에도 대략 10년 주기로 위기는 되풀이됐다.

당시엔 주로 은행 파산이 문제가 됐다.

반복되는 은행위기에 대처하려고 미국은 1914년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를 만들었다.

이후 금융위기 발생 횟수는 줄었다.

다만 FRB는 1930년대 대공황 때 달러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정책을 채택,미국과 세계경제가 더욱 침체의 늪에 빠지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대공황 이후 잠잠했던 미국발 금융위기는 1980년대 저축대부조합들의 파산이 이어지고 1987년 소위 '블랙 먼데이(검은 월요일)'사태가 발생하면서 다시 주목받았다.

저축대부조합은 소규모 저축들로 자금을 조달해 장기 주택구입자금을 대출해주는 일을 주된 업무로 했는데 위험성이 큰 상업용 부동산 투자를 크게 늘렸다가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대거 파산했다.

미 정부는 부실 저축대부조합을 정리하기 위해 1500억달러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1987년 10월19일 다우지수는 하룻동안 508포인트(22.6%)나 폭락했다.

그날이 월요일이라 '블랙 먼데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미국뿐 아니라 일본 영국 홍콩 등 전세계 증시가 동반 폭락했다.

재정적자 등 미국경제의 누적된 구조적 문제에다 금리인상 우려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고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한 자동주식거래가 사태를 악화시켰다.

1998년에는 LTCM(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 사태가 발생했다.

헤지펀드인 LTCM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개발도상국의 고수익·고위험 채권을 대거 매입했다가 러시아의 국가채무 불이행 선언으로 투자한 채권값이 폭락하면서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

LTCM이 파산위기에 몰리자 FRB는 투자은행들을 불러 36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조성했다.

2001년 9·11테러가 발생했을 때도 금융시장은 크게 출렁였다.

9.11테러의 파장을 줄이기 위해 FRB는 공격적인 금리인하 정책을 취했고 지속적인 저금리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의 불씨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