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인가 실체인가,

세계화 시대에 존속 가능한가,

민족이 먼저인가 세계시민이 먼저인가?

민족과 민족주의는 정치 경제 사회 등 여러 분야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화두다.

민족주의의 근원에서부터 세계화로 인한 존속 가능성까지 논란이 일고 있다.

민족이란 과연 실체가 있는 개념인지, 미래에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진행 중이다.

민족주의를 둘러싼 쟁점에 대해 살펴본다.

⊙ 민족은 허구인가 실체인가?

[Cover Story] 민족주의를 둘러싼 3대 쟁점
일부 학자들은 민족이란 18세기 이후 유럽의 근대화 과정에서 정치 지도자들이 고안해 낸 개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인류학자인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이란 실체가 없는 개념이라며 '상상의 공동체'로 부르기도 했다.

'허구의 민족주의'를 쓴 한스 올리히 벨러는 서양 각국들이 근대화를 겪으면서 새로운 정치구조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민족주의를 고안했다고 밝힌다.

이처럼 정치적 목적에서'고안된' 민족은 18세기 이후 서구의 세계관으로 자리잡았다.

근대 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공동체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정신적인 연결 고리가 바로 민족이라는 발명품이었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다.

이에 반해 실체론자들은 민족은 종족 혈통 언어 관습 등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던 객관적인 요소들이 있는 실체라고 규정한다.

유대민족의 경우 원래 살던 지역에서 추방당해 세계 각지로 흩어져 살아 왔지만 같은 인종과 언어 관습 등을 계속 유지하고 있어 민족 국가로 형성될 수 있었다는 점을 예로 든다.

특히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단일 민족임을 자랑하고 있다.

⊙ 세계화시대에 민족은 계속 존재할까

세계화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지구상에 230개나 되는 국가들 중에 순수한 단일 민족 국가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며 세계화의 진전과 함께 민족의 의미는 점차 사라져간다고 역설한다.

교통 통신의 발달과 세계화 개방화의 영향으로 이러한 경향은 점차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EU(유럽공동체)라는 하나의 체제로 통합했으며 우리나라도 동남아 이주자들이 늘면서 다민족체제로 전환돼 가는 것이 하나의 사례다.

이에 반해 민족 존속론자들은 세계화 와중에도 민족은 여전히 그 실체를 유지할 것이며 오히려 역할이 증대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유고 내전이나 르완다 내전,코소보 분리독립운동 등 수많은 민족들이 세계화 추세에서도 민족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노력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일례라는 것.

세계화가 진전되면 국가 간 경쟁이 불가피해지고 이 경쟁 속에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약소국은 민족주의를 더 강화시켜 나간다는 것이다.

강대국들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민족주의에 더욱 집착할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 민족이 먼저인가, 세계시민이 먼저인가

[Cover Story] 민족주의를 둘러싼 3대 쟁점
세계화시대에 주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다양성을 갖으려면 '민족'이 더욱 필요하다고 민족주의자들은 주장한다.

열린 사회 속에서 서로의 문화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며 더 나은 문화와 가치를 만들어 나가는 데에도 민족 개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계 시민 의식을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강대국들의 논리일 수 있으며 진정한 세계화는 각 민족과 문화가 융합하는 다원적인 세계화여야 한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따라서 자신의 민족을 드러내고 각 민족의 고유함을 상호 인정해 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이들은 역설한다.

이에 반해 세계 시민 의식을 강조하는 측은 다민족사회가 보편화되면서 민족 차별과 갈등이 갈수록 불거지고 있다며 민족주의를 강조하면 타민족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지난 수세기 동안 서구 열강들이 자민족 중심주의에 빠져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했던 역사적 사실에서도 확인된다는 것이다.

결국 민족주의는 민족 간 갈등과 분쟁을 일으키고 여러 민족 간의 화합을 가로막을 뿐이라고 덧붙인다.

따라서 민족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세계가 하나라는 인식아래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고 인류 전반의 생활의 질을 높이겠다는 의식 고양이 세계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오춘호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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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민족개념이 없었다?…구한 말 러일전쟁이후 등장

국내에서 민족(民族)이란 단어가 처음 쓰이게 된 것은 1904년 발발한 러·일전쟁 이후라는 게 학자들의 보편적인 시각이다.

서울대 이영훈 교수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책세상간)에서 조선시대에는 민족이나 동일한 뜻의 다른 말이 없었다고 밝히고 말이 없었다는 것은 말속에 한국인들의 집단 의식이 없었거나 아니면 다른 형태로 존재했음을 이야기한다고 분석했다.

민족이라는 개념이 일반에 널리 퍼진 것은 최남선이 1919년 3·1 독립운동 당시 발표한 '조선독립선언서'를 통해서였다.

최남선은 선언서에서 민족 자존의 정권(正權·바른 권리)을 영유케하고 조선 민족의 항구여일한 발전을 위해 조선이 반드시 독립되어야 한다고 주창했다.

이 교수는 한국인에 민족이라는 집단의식이 정착된 것은 일제 식민 지배로 인한 한국인들의 소멸위기 의식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한다.

이에 따라 한국인들은 공동 운명의 역사적 문화적 공동체로 새로 정의됐고, 한민족은 일제의 대립물로 성립됐다는 것이다.

민족 형성에 필요한 신화나 상징물도 일본의 것들을 의식하면서 재해석됐다.

독립군의 군가 속에 백두산이 일본의 후지산에 대항하는 산으로 등장하는 것이 하나의 사례라는 것이다.

이후 민족주의는 한국 사회에서 시대를 초월하는 높은 가치의 개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