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달러시대 막 내리나
'달러의 위기,달러 시대의 종말.'

요즘 신문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국제 금융시장 동향을 전할 때 빠지지 않는 제목이다.

미국 달러화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돈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달러는 세계 유일의 '기축통화'로 군림해 왔다.

기축 통화라는 것은 지구의 모든 나라들이 달러로 무역을 하고 달러로 돈 계산을 한다는 말이다.

달러는 미국 경제에 대한 절대적인 신임을 바탕으로 세계의 결제 및 준비 통화 역할을 했다.

또 그런 체제를 만든 것이 1944년에 출범한 브레튼우즈 체제라는 것이었다.

브레튼우즈는 당시 전후 세계질서를 논의했던 미국 뉴햄프셔주의 한 호텔 이름이다.

산유국들도 원유를 팔면 달러로 대금을 받았고 세계 중앙은행들도 무역흑자로 쌓은 외환보유액의 상당 부분을 미국 국채에 투자했다.

일부 국가들은 달러화에 자기 나라 통화의 환율을 고정시키는 페그제 환율 제도(달러에 대한 자국 화폐의 교환비율을 정해 놓고 이 비율로 자국 통화를 무한정 바꿔주기로 약속하는 외환제도)를 채택했다.

우리나라는 페그제가 아니라 매일 매일의 시장 상황에 따라 달러 교환비율이 바뀌는 변동 환율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외환위기나 북핵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달러 가치가 치솟았다.

'달러=안전자산'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때에는 1달러의 가격이 800원에서 1900원대로 수직 상승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달러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달러 가치가 날개없이 추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달러 가치는 지난 한 해 동안 유로화와 엔화에 대해 각각 10%와 6%나 떨어졌다.

올 들어서는 더욱 가속화되는 추세다.

일부에서는 미국 달러를 한물간 것처럼 묘사하기도 한다.

브라질 출신의 톱모델 지젤 번천은 모델료를 달러화로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말 돌체앤드가바나(D&G)라는 향수 회사와 모델 계약을 맺을 때도 유로화로 모델료를 받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팝스타 비욘세의 연인으로 유명한 미국 랩가수 제이-지(Jay-Z)도 최근 공개한 뮤직비디오 '블루 매직'에서 뉴욕의 화려한 밤거리에 최고급 롤스로이스 승용차를 타고 500유로짜리 돈다발을 흔드는 장면을 연출했다.

미국의 중심부에서 100달러 지폐가 아닌 500유로짜리 지폐를 흔들며 부를 과시하는 장면은 '달러의 시대가 가고 유로화의 시대가 왔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반미 정서를 이렇게 표시하기도 한다.

페그제를 채택한 국가들 사이에선 페그제 폐지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5월 쿠웨이트, 6월 시리아가 각각 달러 페그제를 폐지한 데 이어 최근 아랍권 제2위 경제 규모인 아랍에미리트(UAE)도 달러 페그제를 포기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원유시장에서도 달러의 위상은 흔들리고 있다.

1973년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산유국들이 원유 수출 대금을 달러로만 받기로 합의한 이후 달러는 명실상부한 국제 유가의 표준이었다.

하지만 최근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서 산유국들의 불만도 높아졌다.

수출대금을 유로화로 바꾸자는 주장도 있을 정도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달러 가치가 계속 떨어질 것으로 보기 때문에 달러로 수익을 내는 기업에 대한 투자는 줄인다"는 투자 원칙을 밝혔다.

석유 등 상품 투자 분야의 귀재 짐 로저스도 "달러가 심각한 어려움에 처했다"며 "달러를 팔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유병연 한국경제신문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