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인간의 행동, 타고나는가 환경 탓인가?
'현대판 늑대 소년, 병원에서 하루 만에 탈출-모스크바 경찰 긴급 수색작전'

지난해 12월 국내 일간지에 소개된 한 외신 기사 제목이다.

러시아 경찰이 모스크바 인근 숲속에서 늑대처럼 살고 있는 한 소년을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으나 하루 만에 뛰쳐나가 수색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외신은 '그 소년이 어떻게 사회에서 완전히 격리됐는지 알 수 없지만 러시아어를 전혀 하지 못하고 마치 늑대처럼 사람들을 할퀴고 대들었다'며 특별 사회 교육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긴 발톱에 팔다리가 상처 투성이였지만 천진난만한 표정의 사진과 함께 실린 이 늑대 소년의 기사에 대해 네티즌들은 하루 빨리 교육을 받아 사회에 적응했으면 좋겠다는 리플들을 달았다.

늑대 소년 이야기는 인간 행동이 유전에 의한 것인지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지 궁금증을 풀어 주는 소재여서 관심을 끈다.

소설 정글북의 저자는 주인공 '모글리'가 동물과 인간의 통역을 맡으면서 인간 사회에 적응하는 것으로 스토리의 끝을 맺고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 등에서 실제 발견되는 늑대 소년들은 대부분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인간의 행동이 유전에 의해 영향을 받는지 또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는지는 학자들의 오래된 관심사이다.

유전적으로 결정된다는 선천론자들과 그 반대 입장을 취하는 환경론자 간의 논쟁은 17세기 이후 수백년째 계속 되고 있다.

존 로크를 비롯한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의 마음은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은 흰 종이(빈서판)와 같으며 그 내용은 오로지 경험에 의해 채워진다"고 주장했다.

반면 장자크 루소, 임마누엘 칸트, 찰스 다윈, 윌리엄 제임스 등은 인간 행동은 본성 또는 유전에 의해 결정되며 환경과는 거의 무관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다윈의 사촌 프랜시스 골튼은 유전자결정론을 펴면서 사회개조를 위해 정신이상자 저능아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조직적으로 제거해야 한다는 우생이론을 제기해 파장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그의 우생학은 독일 나치 정권이 유대인을 말살하는 데 악용되었다.

그 후 우생학은 물론 유전자 결정론은 약 50년간 학계에서 거의 발을 붙이지 못했다.

경험주의를 기반으로 한 빈서판 이론이 사실상 독주하다시피했다.

남녀평등 인종차별금지 등의 철학적 기초도 모두 빈서판 이론에 근거한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들어 인간 유전자의 비밀이 벗겨지면서 숨죽이고 있었던 유전자 결정이론이 다시 고개를 내밀고 있다.

미국의 메트 리들리 등 생물학자를 비롯한 일군의 학자들은 게놈 프로젝트에서 밝혀진 유전자의 실체를 증거로 들면서 기존의 빈서판 이론을 비판하고 나섰다.

과연 인간의 행동은 선천적으로 결정되는가, 아니면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는가?

박주병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b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