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Nature vs Nurture 인간의 행동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사람의 행동은 유전에 의해 결정되는가,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가?

동서고금의 많은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수 백년간 연구해 왔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는 주제이다.

인간 행동은 유전자와 관계가 있다고 믿는 선천론자(유전자 결정론자)와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하는 경험론자 사이에 전개되고 있는 이른바 본성 대 양육 논쟁이다.

논쟁은 유전자결정론의 우생학이 독일 나치즘의 유대인 말살 정책에 활용된 후 50년간은 잦아드는 듯했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 인간 유전자 비밀이 밝혀지면서 유전자결정론이 다시 부상, 논쟁은 재연되고 있다.

본성이냐 양육이냐의 논쟁은 당장 결론날 것 같지 않다.

어느 쪽의 결론이든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본성 탓이라면 교육이며 윤리 도덕이 무의미해지게 되고,모든 것이 환경 탓이라면 이 역시 개인의 책임을 묻기 힘들어지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 인간의 본성은 교육 환경으로 바뀔 수 있다(양육론)

본성-양육 논쟁은 경험주의 철학자들에 의해 처음 제기됐다.

존 로크(1632~1704)는 '사람의 마음은 아무 것도 쓰여져 있지 않은 흰 종이와 같다'는 빈 서판(blank slate)개념을 들어 양육이론을 주장했다.

미국의 행동주의 심리학자 존 왓슨(1878~1958)은 러시아 생리학자인 이반 파블로프(1849~1936)의 조건반사 이론(개에게 먹이를 줄 때마다 종을 치면 나중에는 학습효과로 인해 종만 치더라도 침을 흘린다는 내용)을 발전시켜 단지 훈련만으로도 사람의 성격을 바꿀 수 있다고 밝혔다.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6)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사람의 마음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하며 경험론을 거들었다.

인간 행동은 양육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이론은 현대 민주주의 계몽주의의 철학적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양육론자들은 인간 행동이 모두 유전에 의해 결정된다면 교육제도가 필요 없지 않으냐고 반박한다.

일부 남녀평등을 강조하는 양육론자들은 남녀 성조차 주어진 환경에 의해 바꿀 수 있다며 성전환수술을 지지하기도 했다.

사회개조를 주장하는 일부 극단적인 양육론은 한때 공산주의 체제를 적극 지지했다.

⊙ 인간의 본성은 타고난다(유전자결정론)

우생학이 나치의 인종차별정책에 이용되면서 한 발 물러나 있었던 유전자결정론자들은 미국의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1928~ )가 인간이 갖고 있는 태생적 언어능력을 제시하면서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촘스키는 "말 문이 조금 트인 아이가 전에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 문장을 자유롭게 말하는 것은 태생적으로 언어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며 본성을 강조했다.

2001년 게놈 프로젝트 완성으로 인간 유전자가 밝혀진 후 기존의 양육론을 비판하는 이론들이 쏟아졌다.

대표적인 학자는 미국의 진화심리학자인 스티븐 핑커(1954~ )와 영국의 생물학자 매트 리들리(1958~ )다.

핑커는 그의 저서 '빈 서판'에서 마음을 연구하는 인지학, 뇌를 탐구하는 신경학, 진화심리학 등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기존 양육론을 비판했다.

그는 '태어나서 다른 환경에 자란 일란성 쌍둥이와 다른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란 두 명의 입양아를 비교했을 때 다른 환경에서 자란 일란성 쌍둥이가 같은 환경에서 자란 입양아보다 성품 지능 습관 등이 훨씬 비슷하다'는 실험 결과를 내놓았다.

매트 리들리는 '본성과 양육'에서 양육을 통한 본성을 강조했다.

유전자는 여성의 자궁 속에서 신체와 뇌의 구조를 지시하지만 환경과 반응하면서 자신이 만든 것을 거의 동시에 해체하거나 재구성한다고 강조하며 본성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인간 행동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본성론은 경험론에 비해 접근 방법이 훨씬 과학적이다.

하지만 이 주장은 유대인 학살처럼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인종차별주의자로 비쳐지면서 반발을 불러오기도 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이들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서 인간의 행동을 바꿀 수 없는 것은 아니라며 숙명론과 같이 보아서는 안된다고 반박한다.

예를 들어 독서장애나 정신장애가 유전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 그를 바탕으로 치료방법을 개발하면 된다는 것이다.

본성이냐 양육이냐의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다만 어느 입장을 취하더라도 상대의 주장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두뇌는 타고난 것인지 몰라도 학업성적은 하기나름이라는 말이다.

생글 독자 여러분, 본성론을 핑계대며 공부를 게을리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박주병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bpark@hakyo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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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간에 우열 가리는 유전자가 과연 있을까?

'본성이냐 양육이냐'의 주장은 논란이 치열한 만큼 파문도 만만치 많다.

학자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잘못 이야기 했다가 인종차별 논쟁에 휘말리기도 하고 실험이 비도덕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노벨 생리학상 수상자 제임스 왓슨 박사는 유전자 결정론을 강조하면서 인종차별 발언을 했다가 40년간 일했던 연구소 소장 자리를 내놓아야 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미국 선데이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사회 정책은 흑인의 지능이 백인과 같다는 전제 하에 이루어지고 있는데 어떤 연구 결과도 이를 진정으로 증명해 주지 못하고 있다. 인종 간 지능의 우열을 가리는 유전자가 앞으로 10년 안에 발견될 것"이라고 말했다가 아프리카 국가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그는 보도 자료를 내 "아프리카가 유전적으로 열등하다는 것은 내가 뜻한 바가 아니었다"고 해명했으나 한 번 불붙은 비난은 그치지 않았다.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그는 결국 지난해 인터뷰 일주일 만에 40년간 근무해 온 분자생물학 및 유전학 연구소 소장 자리를 내놓아야 했다.

본성보다 양육을 강조하는 미국 존스 홉킨스대학의 존 머니 박사는 쌍둥이 중 한 명을 여성으로 성전환 했다가 30년 후 수술한 아이가 자살하는 것을 보아야 했다.

캐나다에서 태어난 브랜다라는 아이는 생후 7개월때 의사의 포경수술 실패로 성전환하게 된다.

머니 박사는 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양육에 의해 결정된다며 부모를 설득, 성전환수술을 하고 6년 후 사례를 학계에 발표했다.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여성계로부터도 그는 큰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발표내용과 달리 성전환한 아이의 생활은 사회에 대한 불만과 증오로 가득차 있었다.

예쁜 드레스를 찢어버리고 인형은 쳐다보지도 않았으며 쌍둥이 동생과는 수시로 싸웠다.

학교 성적도 최하위였다.

아이가 계속 엇나가자 14살이 되던 해 부모는 아이에게 성 전환 사실을 털어놓았고 아이는 다시 수술을 해 남자로 재출발하게 된다.

20대에 결혼도 했지만 그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결국 38세에 자살했다.

성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머니 박사의 주장은 허구로 드러난 것이다.

머니 박사는 자신의 이론이 학계에서 외면받는 것을 두려워해 성전환 아이의 발육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비난도 피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