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인간은 편안한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갖고 있는가
안락사 찬성론자든, 반대론자든 논거로 드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이다.

반대론자들은 기독교와 칸트 철학의 전통 아래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이란 사실 자체에서 생기며, 인간이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윤리적으론 타당해 보이지만 비용 등 현실적 문제에는 해답이 없다.

반면 찬성론자들은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 존엄한 것이며, 인생의 질은 고려하지 않고 양(시간)만 연장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맞선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윤리적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는 철학적·종교적 질문과 맞닿아 있다.

삶과 죽음은 누가 결정하는가.

인간의 존엄성은 무엇이며, 그 조건은 또한 무엇인가.

누구도 쉽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 안락사의 대안으로서 '호스피스'

안락사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이 호스피스(hospice)와 완화의료이고 이를 통한 품위 있는 죽음, 즉 존엄사이다.

호스피스란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延命)의술 대신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위안과 안락을 최대한 베푸는 봉사활동 또는 안식처를 의미한다.

환자는 물론 환자 사망 후 충격을 받을 가족까지 보살피는 것이다.

때문에 안락사에 반대하는 가톨릭 등 종교단체들도 호스피스를 찬성하고 있다.

생명을 인위적으로 단축시켜 살인 논란을 빚는 것도 문제이지만 무조건 연장하자는 집착적인 의료 행위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현대 의학은 생명 연장에는 기여했어도 환자가 감내할 고통 문제는 도외시했다.

윤리적 의협심만으로 환자와 가족에게 고통을 감내하도록 강요하는 것도 곤란하다.

어느 쪽이든 안락사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세우려면 자신이나 가장 가까운 사람도 그런 입장에 처했을 때 같은 처우를 받아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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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에선 안락사를 어떻게 보나

선진국에서는 과거에 비해 '죽을 권리'(right to die)를 법제화하려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죽을 권리'가 '생명권'(right to life)을 능가하는 경우는 없다.

네덜란드(2001년)와 벨기에(2002년)는 안락사를 부분적으로 합법화했다.

적극적 안락사 자체는 불법이지만 의학적으로 소생이 불가능한 환자가 고통이 극심하고, 자유 의사로 '반복적 명시적 요구'를 할 경우 의사는 안락사를 시행할 수 있고, 과정 전체를 당국에 보고하도록 했다.

스위스는 형법의 '이기적 동기에 의한 자살방조를 금지한다'는 조항을 "이기적이지 않은 경우엔 허용할 수도 있다"고 역으로 해석, 말기 환자의 약물 처방을 사실상 묵인하고 있다.

스위스 취리히의 '디그니타스'라는 안락사 지원병원은 외국의 말기 환자들까지 몰려 유럽에서 안락사 문제가 떠오를 때마다 회자되기도 한다.

미국은 소극적 안락사(존엄사)는 대체로 인정(40여개 주)하는 편이다.

다만,극약 처방에 의해 불치병 환자의 죽음을 앞당기는 적극적 안락사는 살인죄로 처벌하는데, 오리건주만 1997년부터 유일하게 허용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워싱턴주는 이를 주민투표에 붙였으나 부결됐다.

영국도 미국과 비슷한 원칙을 적용하고 있는데, 의사가 환자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시행한 소극적 안락사가 결과적으로 생명을 단축시킨 경우엔 처벌하지 않고 있다.

이에 반해 기독교 전통이 강한 프랑스와 독일은 안락사에 대해 그동안 엄격했다.

독일은 형법에 "어떠한 이유로도 사람을 죽일 수는 없다"고 규정하고 고의가 인정되면 최고 종신형까지 내린다.

프랑스 역시 비록 뇌사상태라도 심장박동이 정지하지 않는 한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았는데, 2000년 이후 제한적인 안락사 허용 여론이 일면서 논란을 빚고 있다.

일본은 안락사를 인정하는 법률을 제정하진 않았지만 법원 판례에 따라 융통성을 발휘하고 있다.

1995년 요코하마 법원 판례에선 △환자의 참기 힘든 고통 △죽음의 임박성 △본인의 의사(또는 의사를 밝힐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을 것) △고통제거 수단의 유무 △그 방법이 윤리적으로 타당할 것 등의 안락사 요건을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