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여성의 선택권인가 태아 살해인가
정작 이슈가 되어야 할 것이 잠잠하고 이슈거리도 아닌 것이 뜨거운 논란을 낳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낙태다.

빈번하게 불법·음성적으로 낙태가 이뤄지고 있는 현실인데도, 정확한 실태 파악이나 이를 개선하려는 시도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간혹 대입 논술고사 문제로 출제되니 그저 학생들만 열심히 생각하고 토론하는 수준이다.

미국에선 낙태가 진보·보수를 가르는 잣대가 되고 대통령 후보가 낙태에 대해 말 한마디 잘못했다간 사퇴할 수도 있는 중대 사안이다.

세계적으로 한 해 4500만건의 낙태가 이뤄지고, 이 중 합법적인 낙태는 2500만건, 나머지는 불법인데 실상은 그보다 숫자가 훨씬 많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이 '낙태 천국'이란 오명을 쓴 것은 기혼 여성의 40%가 낙태 경험이 있을 만큼 인구에 비해 낙태건수가 많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태아 성 감별이 금지되기 이전인 1990년대 초에는 한 해 낙태건수가 100만~150만건(200만건이 넘는다는 추정도 있음)으로 추정됐다.

최근 고려대 의대 김해중 교수가 보건복지부 의뢰로 조사한 낙태건수는 2005년 35만590건(미혼여성 42%)으로 추산돼, 신생아 수의 73%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낙태건수 추정이 35만건에서 200만건까지 편차가 크지만 낙태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고 의사들도 이를 방조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산부인과 병·의원들은 출산시 건강보험 수가가 너무 낮아 불법 낙태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도 현실이라고 한다.

낙태의 주 요인으론 우선 뿌리 깊은 남아선호를 꼽을 수 있다.

한국의 남녀 성비는 아직 107.7(2005년)로 자연적인 성비(104 대 100)보다 높다.

1995년부터 태아 성 감별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어 그마나 1994년(115.2)에 비해선 크게 낮아진 수치다.

특히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 성비는 각각 104.8과 106.4인 반면, 셋째 아이는 127.7에 달한다.

여야 100명당 남아 127명이 태어난다는 의미여서, 탈법·음성적인 성 감별이 여전히 행해지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미혼모들이 아이를 키우기 힘든 환경과 미흡한 피임교육 속에 성개방 풍조가 확산돼 '책임지지 못할 임신'과 낙태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행동의 자유만 있을 뿐 책임의식은 희박하다는 비판론과, 여성에게만 모든 책임을 지우는 사회분위기가 더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제 우리가 벌일 토론 주제는 합법적인 낙태(모자보건법에선 정신·신체질환, 전염병, 성폭력과 근친 임신, 산모 건강 위협 등의 경우에만 임신 28주(6개월) 이내 낙태 허용)가 아니다.

여성의 권리를 존중할 것인가, 개인의 책임과 권리의 상충문제는 어떻게 풀 것인가에서부터 생명의 시작을 언제부터로 볼 것인가, 낙태가 성행하는 사회적 요인은 무엇인가, 이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등으로 토론은 꼬리에 꼬리를 물 것이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