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사형제도, 그 끝없는 논란의 역사
사형제도 존폐 논란 만큼 세계적으로 뜨거운 이슈가 된 주제도 드물다.

사형이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는 오랜 형벌제도인 데다 인간의 생명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철학적·윤리적·법적 질문을 던지기 때문일 것이다.

살인과 같은 중대범죄와 이에 대한 처벌, 그리고 개개인의 존엄과 생명권 등이 사형제 존폐 논란에 맞물려 있다.

인간의 행동에는 대가가 따르게 마련인데, 살인의 대가를 무엇으로 치를 것인가.

죽은 자는 말을 못하고 죽인 자는 살아남아도 되는 것인가.

살인을 저지른 자의 생명권은 보장되어야 하는가.

꼬리를 무는 사형제도 논란 속으로 들어가보자.

⊙ 사형제의 유구한 역사

사형제는 기원전 18세기 함무라비 법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동태복수법(同態復讐法:눈에는 눈,이에는 이)을 토대로 사형이 부과되는 범죄만도 30여가지나 규정돼 있다.

구약성서, 코란에서 고조선의 8조금법에 이르기까지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음으로 갚는다'는 것이 형벌의 기본원칙이었다.

특히 마녀사냥이 성행했던 중세에는 사형의 전성기라고 할 만큼 빈번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공개 처형이 행해졌다.

1500년부터 50년간 영국에서만 무려 7만명이 사형당했다.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사형제 폐지를 언급한 사람은 조선 7대 임금 세조였다.

피의 보복을 경험한 세조는 "임금의 잘못된 판단으로 억울하게 죽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며 극형을 없앨 것을 지시했지만, 정작 자신은 정적인 사육신과 단종을 죽이는 아이러니를 연출했다.

⊙ 계몽사상으로 눈뜬 생명권

18세기 들어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계몽사상이 유럽을 휩쓸면서 사형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근대 형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탈리아의 법학자 체자레 베카리아는 저서 '범죄와 형벌'(1764)에서 처음으로 사형제 폐지를 주장, 사형제를 둘러싼 치열한 논쟁의 불씨를 당겼다.

논란 끝에 사형제 폐지가 실현된 것은 20세기 들어서다.

1961년 국제엠네스티(사면위원회)가 출범하고, 1977에는 사형에 무조건 반대한다는 스톡홀롬 선언에 16개국이 서명하면서 사형제 폐지가 본격 공론화됐다.

독일은 1949년, 프랑스는 1981년 사형제를 폐지했고 EU(유럽연합)는 사형제 폐지를 회원국 가입 선결조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현재 102개국이 사형제를 폐지했고, 한국 등 31개국은 사형제가 있지만 10년 이상 집행을 하지 않는 사실상 사형폐지국이며, 미국 일본 중국 싱가포르 등 64개국은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1972년 대법원이 사형제를 금했다가 흉악범죄가 급증하자 1976년 부활시켰다.

현재 37개주에서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고, 30년 동안 1000명 이상 사형을 집행했다.

⊙ 사형제 찬반,엇갈리는 근거들

사형제 존치론자들은 중대범죄자에 대한 사형 처벌이 국민의 법감정과 사회정의에 부합하고 범죄 억제력이 있다는 것이다.

사형제의 위하력(위하력:겁주는 힘)이 잠재적 범죄자의 범죄 충동을 예방한다는 얘기다.

반면 사형제 폐지론자들은 개인과 마찬가지로 국가도 생명을 박탈할 권리가 없고 사형제가 있는 나라라고 해서 흉악한 범죄가 줄어드는 게 아니므로 범죄 억제력도 입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폐지론자들은 인간이 내리는 판결엔 오판의 여지가 있으며, 역사상 정치적 적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사형제가 악용됐다는 점을 들어 사형제 폐지를 주장한다.

반면 존치론자들은 오판 가능성을 전혀 부인할 순 없지만 그래서 3심 제도와 증거재판주의를 채택하며, 정치적 악용 문제는 민주화를 통해 자연스레 해소됐다고 지적한다.

이 밖에도 폐지론자들은 범죄자의 인권도 존중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 반해 존치론자들은 피해자의 생명권은 어디에서 보상받느냐고 반박한다.

⊙ 교화냐, 응보냐

형벌은 범죄행위에 대한 응보(應報)와 범죄자의 교화(敎化)에 목표를 두고 있다.

현대로 올수록 뉘우칠 기회를 주는 교화 쪽에 무게를 두는 추세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심판하는 살인을 금하는 국가가 살인을 허용(사형)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흉악한 살인범이 나중에 잘못을 뉘우치더라도 이미 피해자의 생명을 되돌릴 수 없다는 점에서 이 역시 논란거리다.

또 저지른 짓에 대한 형벌의 응보 기능이 약화될 경우 피해자 가족·친지가 사적 형벌(私刑)을 시도한다는 점도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결국 사형제가 있어도 문제, 없어도 문제라는 얘기다.

생글생글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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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제기하는 사형제 논란…피해자는 뭘로 보상받아야 하나

[Cover Story] 사형제도, 그 끝없는 논란의 역사
죽음, 보복, 사형, 사형수 등은 영화의 더할 나위 없는 소재다.

이른바 '문제적 상황'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사형제도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로 알란 파커 감독의 '데이비드 게일'(2003)을 들 수 있다.

강간살해범으로 사형집행을 사흘 앞둔 주인공(케빈 스페이시)을 구명하는 과정에서 사형제에 대한 시민들의 상반된 시선을 또렷이 보여준다.

이 영화는 사형제의 가장 큰 맹점인 집행 뒤 환원불가능, 즉 오판 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다.

'데드 맨 워킹'(1995)과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은 대중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두 편 모두 사형수가 주인공이며 이들의 마지막을 보여줌으로써 '사형제도가 타당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상영 당시 미국과 한국에선 사형제 존폐 논란이 뜨겁게 달궈지기도 했다.

이와 반대로 흉악범에 대해 합당한 처벌이 없다면 피해자 측이 스스로 사형(私刑)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설정도 상당 수 있다.

존 그리셤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 한 '타임 투 킬'(1996)은 인종차별의 잔재가 남아있는 미국 미시시피주 소도시에서 백인 건달들에게 무참히 강간당한 흑인 소녀의 아버지가 가해자들을 법정 계단 앞에서 기관총으로 난사해 응징한다는 내용이다.

아버지는 KKK단의 갖은 협박, 백인들로만 구성된 배심원단 속에서 신출내기 변호사 등의 도움으로 무죄를 선고받는다.

또 지난해 개봉한 조디 포스터 주연의 '브레이브 원'과 케빈 베이컨 주연의 '데스 센텐스'는 눈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연인/아들)이 흉포한 범죄자에게 무참히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한 주인공들이 직접 복수에 나서는 내용이다.

사형제에 반대하더라도 이런 상황이라면 사적보복에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형제도를 직접 다룬 것은 아니지만, 이창동 감독의 '밀양'은 "피해자가 미처 용서하지 못했는데 신(神)이 먼저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는가" 하는 색다른 질문을 던진다.

주인공(전도연)은 하나뿐인 아들이 유괴살해된 뒤 종교에 귀의해 범인을 용서하려고 교도소로 찾아가지만 범인은 이미 '하나님'께 용서받아 평안을 얻었다는 것.

피해자의 고통과 형벌의 교화기능이 미묘하게 오버랩되는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