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게임이론으로 복기해 보는 아프간 인질사태
게임이론의 고전인 ‘죄수의 딜레마’ 상황(도표 1)을 보자.

죄수 A,B가 강력범죄로 체포돼 각기 분리된 방에서 심문을 받는다.

검찰은 증거가 불충분해 죄수들의 자백이 필요하다.

죄수 한 명만 자백하고 다른 한 명이 부인하면 전자는 석방,후자는 가중처벌로 징역 10년이다.

둘 다 자백하면 징역 5년씩,둘 다 부인하면 확보된 증거로 징역 1년씩만 구형된다.

이때 죄수 A,B는 모두 부인하는 게 최선(징역 1년씩)이지만,죄수들은 고민 끝에 각자 자백해 징역 5년씩을 구형받게 된다는 것이다.

즉,A는 B가 어떤 선택을 하든 자백이 유리하고 B도 마찬가지다.

만약 B가 자백한다면 A는 ‘자백(징역 5년)〉부인(징역 10년)’,B가 부인한다 해도 ‘자백(석방)〉부인(징역 1년)’으로,모두 자백이 낫기 때문이다.

B의 입장에서 봐도 결과는 같다.

⊙죄수의 딜레마와 인질사태

죄수의 딜레마를 아프간 인질사태에 대입해보면 한국정부는 탈레반과 협상해 인질을 석방케 하느냐,요구를 무시하고 강경대응 하느냐의 딜레마(도표 2)이다.

‘협상’전략은 몸값 비용과 국제사회의 비난을,‘무시’전략은 인질 처형의 위험이 있다.

하지만 인질사태 초기부터 정부는 가진 패를 다 읽혔다.

탈레반의 요구에 대통령은 조급하게 아프간 파병부대 철수를 언급했다.

‘무조건 살려내라’는 국내 여론에다 인질 몸값 모금운동까지 벌어졌다.

한국정부가 ‘무시’ 전략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안 탈레반은 협상 와중에 인질 2명을 죽이면서 더욱 압박했다.

아직도 인질은 19명이나 남아있으니까.

탈레반으로선 협상에 응하되 몸값을 최대한 받아내는 꽃놀이패가 된 것이다.

⊙ ‘남한산성의 딜레마’

[Cover Story] 게임이론으로 복기해 보는 아프간 인질사태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때 막강한 청나라 군대에 밀려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조선 정부가 항전할지,항복할지 고민하는 딜레마 상황(도표 3)이다.

조선의 선택보다는 전력이 압도적인 청의 선택에 따라 결과가 정해진다.

서로 동일한 입장이 아닌 경우엔 경우의 수와 유사한 게임트리(game tree)로 전략 선택의 결과를 분석할 수 있다.

1단계에서 조선은 항복·항전을,2단계에서 청은 전쟁 중단과 전쟁 계속을 각각 선택할 수 있다.

가능성이 낮은 것부터 지워가면,우선 조선이 항복하면 청이 전쟁을 계속할 이유가 없고,조선이 항전하면 청이 전쟁을 중지하지도 않을 것이므로 ③과 ②는 가능성이 없다.

①과 ④가 남는데,이에 따른 청의 보수(결과)는 엇비슷한 반면,조선이 얻을 보수는 똑같이 패배이면서 ④에선 더 큰 굴욕,백성들의 죽음,청의 강압적인 점령정책이 뒤따른다.

그렇다면 조선은 ①로 갈 수 밖에 없다.

⊙인질사태와 게임트리

[Cover Story] 게임이론으로 복기해 보는 아프간 인질사태
인질사태의 딜레마(도표 4)에서도 한국정부는 협상과 무시(강경대응),탈레반은 인질 석방과 처형 중 전략 선택이 가능하다.

한국정부가 협상하자는데 탈레반이 아무런 소득없이 인질을 처형할 가능성은 거의 없으므로 ②를 먼저 지운다.

한국정부가 강경대응하고 탈레반이 인질을 처형하는 것(④)도 모두에게 최악이므로 서로 피하려 한다.

남은 ①은 탈레반의 칼자루를 쥔 게임이고,③은 한국정부가 우월한 지위에 있는 게임이다.

탈레반은 한국정부의 초기대응과 한국내 감정적 여론을 보면서 ③이 거의 불가능했음을 확인했다.

남은 것은 ①뿐이고,탈레반은 몸값을 극대화하기 위한 인질 두명을 처형하는 ‘신빙성 있는 위협’을 가했다.

탈레반의 목적이 처음부터 인질 몸값임을 간파했다면 ③의 전략도 병행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인질사태가 반복되는 게임이라면

죄수의 딜레마로 보든 게임트리로 보든 한국 정부는 비용이 들고 인질협상 금지라는 원칙을 깼다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무릅쓰더라도 인질 구출이 최우선 목표였다.

그렇다면 정부의 전략 선택은 타당한 것이고,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
인질사태가 이번 한 번뿐이라면 정부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인질사태의 딜레마는 앞으로 얼마든지 되풀이되는 반복게임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데 문제가 있다.

반복게임에서 최선의 대응전략은 눈에는 눈,이에는 이 같은 ‘팃 포 탯(tit for tat,되갚기 전략)’이지만 정부는 이런 전략을 펴볼 생각조차 못했다.

아프간 인질사태 해결과정은 수많은 납치범들에게 한국인이 ‘짭짤한 돈줄’이란 그릇된 믿음을 심어줬다.

따라서 세계 곳곳의 위험지역에서 한국인의 안전을 담보하기 어려워졌다.

국민들이 위험지역에 가지 않는 것이 해법이지만,민주국가에서 국민들을 일일이 통제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종교적 신념까지 더해지면 문제는 더욱 꼬이게 된다.

이런 복잡다단한 문제가 지금은 거의 잊혀진 사건이 된 것은 어쩌면 한국 사회 나름의 집단 스트레스를 견뎌내는 방어기제라는 지적도 있다.

수시로 대형 사건·사고가 터지는 나라에선 쉽게 잊는 게 최선의 전략이 아닐까.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