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위조와 스캔들로 한국 사회를 뒤흔든 신정아·변양균 사건은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유명 인사들이 줄줄이 학력위조 사실을 고백했고,미술계·관료·대학·기업·은행들이 두루 엮인 터라 황색저널리즘과 '카더라방송'의 도배거리가 됐다.
그러나 이 사건은 그저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그칠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들의 종합선물세트이자 대입 논술에서 주문하는 다양한 사고의 재료도 된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학벌주의에서부터 경제학의 신호보내기,심리학의 인식부조화,바보의 벽 등에까지 사고를 확장해 볼 수 있다.
⊙ 학벌·성형·명품은 닮은 꼴
경제학에서 말하는 신호보내기(signalling)은 '남들과 다르다'는 자신의 정보를 다른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는 행위를 말한다.
예컨대 자신의 높은 생산성을 보이기 위한 학위따기,미를 자랑하기 위한 성형·하이힐·노출패션,부를 과시하는 명품·고급 승용차 같은 것들이 이에 해당된다.
학벌주의 사회일수록 학벌은 신호로서 큰 효용가치가 있다.
단지 박사학위를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졸,대졸자들이 얻기 힘든 일자리를 구할 수도 있다.
신정아의 가짜 학위는 학벌주의 사회에서 학력이 주는 무거움과 학벌이 갖는 가벼움을 동시에 보여준다.
신정아는 학위를 위조했지만 실제 학위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보다 실력이 나은 게 없다고 여겼다는 얘기다.
성형수술도 영화 '미녀는 괴로워'처럼 한 여자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
이 정도면 자신에겐 충분히 투자할 만하다고 여기지 않을까.
⊙ 신호는 비쌀수록 잘 먹힌다
자신의 정보를 알리는 행위인 '신호'는 반드시 비용과 부담이 수반된다.
학위,성형,명품 모두 막대한 금전부담과 노력,고통 감내 등이 필요하다.
비용이 따르지 않으면 신호라 할 수 없다.
신정아가 내세운 예일대 박사라는 타이틀은 따기 힘들기 때문에 '비싼 신호'로 더욱 잘 먹혔다.
명품이 신호로서 기능하는 것도 비싸기 때문에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는 데 이유가 있다.
비싼 신호일수록 효과적인 것은 역사적으로도 사례를 많다.
정복왕 윌리엄(노르망디공)은 영국에 상륙한 뒤 병사들 앞에서 타고갈 배를 불태워 버렸다.
병사들에게 전투 독려만으론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따라서 싸워 이기는 것 외에는 달리 살 길이 없다는 강력한 신호가 된 것이다.
멕시코를 정복한 코르테스 역시 윌리엄과 똑같이 배를 불태움으로써 병사들의 투지를 돋워 몇 백 배 숫자가 많은 아즈텍인들을 제압했다.
전투 전에 배를 소각하는 행위는 엄청나게 비싸지만 신호 효과는 만점이었던 셈이다.
반면 자신의 정보를 알리는 데 아무런 비용·부담을 지지 않으면 신호가 아니라 허언(cheap talk)이 된다.
⊙ 인식부조화가 빚어내는 문제
신정아는 예일대 박사라는 허위학력을 내세웠지만 나중엔 본인이 진짜 그렇게 믿는 듯한 언행을 보였다.
의사들은 정신병의 일종인 '공상허언증'(엉뚱한 공상을 현실로 믿으며 헛소리를 하는 증상)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이는 일반인에게도 흔해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식부조화'(또는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의 심리상태로 봐야 할 듯싶다.
사회심리학자 리언 페스팅어는 1950년대 미국의 한 사이비 종교집단을 통해 인식부조화 이론을 관찰했다.
지구 멸망을 주장하는 교주가 종말일에 아무일 없이 넘어가자 "신도들의 신앙을 테스트해본 것"이라고 둘러댔고 다시 예언한 종말일이 지나자 "우리가 열심히 믿어 종말이 오지 않았다"며 되레 열성적으로 선교에 나선 것이다.
쉽게 말하면 자기합리화,자기정당화,책임전가 같은 것이다.
자신이 밟은 아메리카 대륙을 끝까지 인도로 믿고 행동한 콜럼버스는 미국에서 인식부조화의 첫 사례로 기록됐다.
⊙ 우리 마음 속의 '바보의 벽'
일본에서는 2003년 석학 오로 다케시의 베스트셀러인 '바보의 벽'이 대단한 유행어로 회자된 적이 있다.
'바보의 벽'이란 사람들이 자신이 알고 싶어하는 것이 아닌 것에 대해 스스로 정보를 차단하는 경향을 말한다.
원리주의자나 일원론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우리 사회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이런 경향이 있다.
극단적인 반공세력이 국제사회와 달리 북한을 여전히 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나,친북세력이 북한 정권에 대해 세세한 관심을 보이면서 북한 주민들의 인권에는 귀를 막는 것은 바보의 벽 또는 인식부조화로 설명할 수 있다.
신정아는 스스로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바보의 벽을 쌓았고 자신의 비판자들에겐 성 차별이라고 맞섰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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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답안은 신문기사체가 정답
신문기사체는 일반적인 에세이나 논문과는 정반대의 독특한 문장구조를 갖는다.
에세이나 논문이 대개 '기·승·전·결' 또는 '서론·본론·결론'의 구조인 반면 기사체 문장은 '리드·설명·부연'의 구조이다.
쉽게 말해,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결론)이 맨 앞에 나오는 것이다.
신문기사는 '6하 원칙'에 의해 간단하고 명쾌하게,감정을 배제하고 팩트(fact)를 전달해야 하는 데다 지면에 담을 수 있는 기사량에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간단하고 명쾌한' 기사가 되려면 사실의 큰 맥락을 알기 쉽게 첫 문장,즉 리드(lead)에 요약해내야 한다.
독자들이 리드 문장을 읽고 사건의 전반에 대해 대강의 정보를 얻을 수 있게끔 쓰는 방식이다.
또한 신문 한 면에는 대략 200자 원고지 25장 분량이 들어가므로 만연체로 늘어지게 쓴다면 그만큼 담길 정보량이 줄어든다.
신문기사체는 편집과정에서 글을 잘라낼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하므로 부연설명은 당연히 맨 뒤로 뺀다.
기사를 자를 때는 맨 뒤에서부터 쳐내면 되는 것이다.
신문기사체의 독특한 문장구조는 바로 대입 논술에서 요구하는 답안을 구성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다.
논술문제는 대개 400자 안팎의 문제들과 800자 안팎의 문제들로 구성된다.
총 답안분량은 1600~2000자 정도이다.
우선 400자 안팎의 답안이면 기껏해야 7~8문장이다.
여기에 서론·본론·결론을 나누는 것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고 무의미하다.
곧바로 언급하려는 핵심을 쓰고,이어서 이런 결론을 도출하게 된 이유와 배경을 설명해주는 것이 최선이 된다.
비교적 긴 800~1000자의 답안도 읽는 사람(채점자)의 처지를 고려한다면 논문 형식이 되어선 곤란하다.
신문기사처럼 본인의 논지를 첫 문장에 정확히 밝히고 이를 도출한 구체적인 논리와 내용을 풀어가는 방식이란 얘기다.
따라서 논술의 정답은 신문기사체에서 찾을 수 있다.
칼럼에서 논리를,스트레이트 기사에서 핵심을 찾는 연습을 해보자.
이 사건을 계기로 유명 인사들이 줄줄이 학력위조 사실을 고백했고,미술계·관료·대학·기업·은행들이 두루 엮인 터라 황색저널리즘과 '카더라방송'의 도배거리가 됐다.
그러나 이 사건은 그저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그칠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들의 종합선물세트이자 대입 논술에서 주문하는 다양한 사고의 재료도 된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학벌주의에서부터 경제학의 신호보내기,심리학의 인식부조화,바보의 벽 등에까지 사고를 확장해 볼 수 있다.
⊙ 학벌·성형·명품은 닮은 꼴
경제학에서 말하는 신호보내기(signalling)은 '남들과 다르다'는 자신의 정보를 다른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는 행위를 말한다.
예컨대 자신의 높은 생산성을 보이기 위한 학위따기,미를 자랑하기 위한 성형·하이힐·노출패션,부를 과시하는 명품·고급 승용차 같은 것들이 이에 해당된다.
학벌주의 사회일수록 학벌은 신호로서 큰 효용가치가 있다.
단지 박사학위를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졸,대졸자들이 얻기 힘든 일자리를 구할 수도 있다.
신정아의 가짜 학위는 학벌주의 사회에서 학력이 주는 무거움과 학벌이 갖는 가벼움을 동시에 보여준다.
신정아는 학위를 위조했지만 실제 학위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보다 실력이 나은 게 없다고 여겼다는 얘기다.
성형수술도 영화 '미녀는 괴로워'처럼 한 여자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
이 정도면 자신에겐 충분히 투자할 만하다고 여기지 않을까.
⊙ 신호는 비쌀수록 잘 먹힌다
자신의 정보를 알리는 행위인 '신호'는 반드시 비용과 부담이 수반된다.
학위,성형,명품 모두 막대한 금전부담과 노력,고통 감내 등이 필요하다.
비용이 따르지 않으면 신호라 할 수 없다.
신정아가 내세운 예일대 박사라는 타이틀은 따기 힘들기 때문에 '비싼 신호'로 더욱 잘 먹혔다.
명품이 신호로서 기능하는 것도 비싸기 때문에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는 데 이유가 있다.
비싼 신호일수록 효과적인 것은 역사적으로도 사례를 많다.
정복왕 윌리엄(노르망디공)은 영국에 상륙한 뒤 병사들 앞에서 타고갈 배를 불태워 버렸다.
병사들에게 전투 독려만으론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따라서 싸워 이기는 것 외에는 달리 살 길이 없다는 강력한 신호가 된 것이다.
멕시코를 정복한 코르테스 역시 윌리엄과 똑같이 배를 불태움으로써 병사들의 투지를 돋워 몇 백 배 숫자가 많은 아즈텍인들을 제압했다.
전투 전에 배를 소각하는 행위는 엄청나게 비싸지만 신호 효과는 만점이었던 셈이다.
반면 자신의 정보를 알리는 데 아무런 비용·부담을 지지 않으면 신호가 아니라 허언(cheap talk)이 된다.
⊙ 인식부조화가 빚어내는 문제
신정아는 예일대 박사라는 허위학력을 내세웠지만 나중엔 본인이 진짜 그렇게 믿는 듯한 언행을 보였다.
의사들은 정신병의 일종인 '공상허언증'(엉뚱한 공상을 현실로 믿으며 헛소리를 하는 증상)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이는 일반인에게도 흔해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식부조화'(또는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의 심리상태로 봐야 할 듯싶다.
사회심리학자 리언 페스팅어는 1950년대 미국의 한 사이비 종교집단을 통해 인식부조화 이론을 관찰했다.
지구 멸망을 주장하는 교주가 종말일에 아무일 없이 넘어가자 "신도들의 신앙을 테스트해본 것"이라고 둘러댔고 다시 예언한 종말일이 지나자 "우리가 열심히 믿어 종말이 오지 않았다"며 되레 열성적으로 선교에 나선 것이다.
쉽게 말하면 자기합리화,자기정당화,책임전가 같은 것이다.
자신이 밟은 아메리카 대륙을 끝까지 인도로 믿고 행동한 콜럼버스는 미국에서 인식부조화의 첫 사례로 기록됐다.
⊙ 우리 마음 속의 '바보의 벽'
일본에서는 2003년 석학 오로 다케시의 베스트셀러인 '바보의 벽'이 대단한 유행어로 회자된 적이 있다.
'바보의 벽'이란 사람들이 자신이 알고 싶어하는 것이 아닌 것에 대해 스스로 정보를 차단하는 경향을 말한다.
원리주의자나 일원론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우리 사회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이런 경향이 있다.
극단적인 반공세력이 국제사회와 달리 북한을 여전히 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나,친북세력이 북한 정권에 대해 세세한 관심을 보이면서 북한 주민들의 인권에는 귀를 막는 것은 바보의 벽 또는 인식부조화로 설명할 수 있다.
신정아는 스스로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바보의 벽을 쌓았고 자신의 비판자들에겐 성 차별이라고 맞섰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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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답안은 신문기사체가 정답
신문기사체는 일반적인 에세이나 논문과는 정반대의 독특한 문장구조를 갖는다.
에세이나 논문이 대개 '기·승·전·결' 또는 '서론·본론·결론'의 구조인 반면 기사체 문장은 '리드·설명·부연'의 구조이다.
쉽게 말해,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결론)이 맨 앞에 나오는 것이다.
신문기사는 '6하 원칙'에 의해 간단하고 명쾌하게,감정을 배제하고 팩트(fact)를 전달해야 하는 데다 지면에 담을 수 있는 기사량에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간단하고 명쾌한' 기사가 되려면 사실의 큰 맥락을 알기 쉽게 첫 문장,즉 리드(lead)에 요약해내야 한다.
독자들이 리드 문장을 읽고 사건의 전반에 대해 대강의 정보를 얻을 수 있게끔 쓰는 방식이다.
또한 신문 한 면에는 대략 200자 원고지 25장 분량이 들어가므로 만연체로 늘어지게 쓴다면 그만큼 담길 정보량이 줄어든다.
신문기사체는 편집과정에서 글을 잘라낼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하므로 부연설명은 당연히 맨 뒤로 뺀다.
기사를 자를 때는 맨 뒤에서부터 쳐내면 되는 것이다.
신문기사체의 독특한 문장구조는 바로 대입 논술에서 요구하는 답안을 구성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다.
논술문제는 대개 400자 안팎의 문제들과 800자 안팎의 문제들로 구성된다.
총 답안분량은 1600~2000자 정도이다.
우선 400자 안팎의 답안이면 기껏해야 7~8문장이다.
여기에 서론·본론·결론을 나누는 것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고 무의미하다.
곧바로 언급하려는 핵심을 쓰고,이어서 이런 결론을 도출하게 된 이유와 배경을 설명해주는 것이 최선이 된다.
비교적 긴 800~1000자의 답안도 읽는 사람(채점자)의 처지를 고려한다면 논문 형식이 되어선 곤란하다.
신문기사처럼 본인의 논지를 첫 문장에 정확히 밝히고 이를 도출한 구체적인 논리와 내용을 풀어가는 방식이란 얘기다.
따라서 논술의 정답은 신문기사체에서 찾을 수 있다.
칼럼에서 논리를,스트레이트 기사에서 핵심을 찾는 연습을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