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문학작품 속의 유토피아 vs 디스토피아
문학작품은 유토피아를 꿈꾸기 가장 좋은 환경이다.

동서고금의 수많은 작가들이 이상적인 세상,사회체제,공동체적 이상을 꿈꿨던 때문이다.

이는 현실세계의 모순과 갈등,싸움과 범죄,전쟁과 죽음 같은 것들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하다.

이런 작품들은 낙원을 꿈꾸는 사람들의 지지를 업고 '유토피아 문학'이란 장르로 자리잡았다.

유토피아 문학은 있을 법한 현실을 상정하는 리얼리즘 소설의 대척점에서 오늘날 공상과학 소설로 명맥을 잇고 있다.

[Cover story] 문학작품 속의 유토피아 vs 디스토피아
문학에서의 유토피아적 상상력은 철학,사회학,심리학 저술에도 영향을 미쳤다.

유토피아 문학은 공허한 상상력인가,인류의 꿈인가.

유토피아 문학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유토피아를 다룬 문학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 근대를 연 두 편의 유토피아 소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Utopia,1516)와 경험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쓴 소설 '새로운 아틀란티스'(Nova Atilantis,1627)는 여러모로 대조적인 작품이다.

모어의 유토피아는 국왕이 없고 계급이 없으며 소유,차별,화폐를 철폐하고 하루 6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교양을 쌓는 사회다.

사유재산 불인정,계획적인 생산·소비 등 공산주의적 색채를 풍긴다.

그래서 '존재하지 않는 곳'이란 의미의 유토피아를 제목으로 붙였다.

모어의 유토피아는 그 이상(理想) 자체보다 당시 영국의 현실에 대한 비판에 의미가 있다.

반면 베이컨의 '뉴 아틀란티스'는 새로운 과학문명과 기술로 이룩되는 과학적 유토피아를 그렸다.

인간의 지식에 대한 확신과 과학의 통제,문명의 진보에 대한 신뢰와 낙관을 담고 있다.

이 두 작품은 중세를 마감하고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쓰여 이후 많은 작가와 철학자들에게 상상력의 원천이 됐다.

⊙ 다양한 유토피아적 상상력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였던 B.F.스키너(1905~1990)의 공상소설 '월든 투'(Walden Two,1982)에선 행동주의적 심리통제술로 실현되는 이상향 '월든'을 그리고 있다.

태어난 아이들이 공동으로 양육되고 교육받으며,구성원은 고도의 효율적 행동을 위해 심리학자들의 행동공학에 의해 통제되고 개조된 새로운 인간들이다.

월든은 완벽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구성원들이 '가장 행복하고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의미한다.

제임스 힐튼의 '잃어버린 지평선'(1933)에 등장하는 샹그리라(Sangri-La)는 티벳어로 '푸른 달빛의 골짜기'라는 뜻의 상상 속 낙원이다.

히말라야 산맥 어딘가에 위치한 유일하게 따뜻하고 늙지도 죽지도 않는 불로불사의 이상향이다.

사무엘 버틀러의 '에레혼'(Erehwon,1872)은 아무데도 없다는 뜻의 'nowhere'의 철자를 뒤집은 것으로,소설 속에 나오는 미지의 나라 이름이다.

모든 것이 정반대여서,질병은 죄악이어서 처벌받고 죄인은 병자여서 따뜻한 치료를 받는다.

17세기 영국사회에 대한 역설적인 풍자로 읽힌다.

⊙ 현대는 반(反)유토피아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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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문명과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3대 반유토피아(anti-utopia) 작품으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1932),조지 오웰의 '1984'(1948)와 러시아 작가 자마친의 '우리들'(We,1924)을 꼽는다.

이들 작품은 플라톤의 이상국가,마르크스의 공산사회 같은 정치적 유토피아를 맘껏 조롱한다.

'멋진 신세계'는 인간이 인공적으로 제조되는 미래사회를 역설적으로 그리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전체주의가 밀착됐을 때 어떤 인간적 비극이 초래되는지를 보여준다.

'1948'는 반유토피아 소설이자 정치소설로,현대 정치에 가장 영향이 큰 작품으로 꼽힌다.

자마친의 '우리'에선 30세기 미래 전쟁에서 살아남은 인간들이 유리로 된 단일제국을 세우는데 개인은 이름 대신 번호(알파벳+숫자)로 불리며 모든 행동이 공동체(우리)를 위한 것이어야 하는 세상이다.

⊙ 우리나라의 유토피아적 상상력

우리나라에서 유토피아적 상상력이 들어간 소설로는 허균의 '홍길동전'과 박지원의 '허생전'을 꼽을 수 있다.

홍길동이 세운 '율도국'이나 허생이 도적들을 데리고 간 섬 같은 설정이 그렇다.

최근 젊은 작가 김종광은 소설 '율려낙원국'(2007)에서 이런 유토피아적 설정을 여지없이 비튼다.

허생이 도둑,기생 등을 데리고 홍길동의 율도국을 재현한 '율려'(조화라는 의미)라는 나라를 세운다.

신분도,빈부도,범죄도 없는 일부일처제의 모범적인 낙원이다.

그러나 정작 먹을 게 풍족하니 모범적인 일상생활이 흐트러져 태생적으로 게으른 자가 나타나고,무료한 사람들은 술,도박,간음에 빠진다.

허생이 이를 막으려고 경찰을 조직하고 손목을 잘라 처벌하지만 반목,고발,형벌이 되풀이되는 공포국가로 변해간다.

결국 이런 작품들은 인간이 머리로 이상향을 설계할수록 그 실제 모습은 철저히 디스토피아가 되고 만다는 역설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그게 바로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 아닐까?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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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에 투영된 유토피아 … 매트릭스, 플레전트빌, 아일랜드, 나우시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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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중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 장르인 영화 또한 유토피아적 상상력의 보고라 할 수 있다.

수많은 유토피아 소설이나 공상과학 소설이 영화로 제작됐고 지금도 제작되고 있다.

그러나 현대의 유토피아 문학과 마찬가지로 영화 속 이상세계도 외견상 유토피아이지만 본질은 철저히 반유토피아적인 모습을 띤다.

그래서 유토피아의 역설을 다룬 영화에는 ①완벽한 세상 ②일탈자 등장 ③의심을 품는 주인공 ④극한의 위협과 충돌 ⑤진실 폭로 ⑥유토피아는 디스토피아였다는 결론으로 연결되는 영화의 공식이 있다.

누구나 한번쯤 봤을 '매트릭스'의 가상현실 세계를 보면 모든 것이 완벽하고 조화로운 기계적 이상향이다.

하지만 주인공 네오나 저항군에게는 고도로 통제되는 거짓이자 허상일 뿐이다.

하지만 네오와 스미스 요원 간의 대화에선 마치 장자의 '나비의 꿈'처럼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가상세계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톰 크루즈 주연의 '바닐라 스카이'에서도 주인공은 꿈과 현실을 오간다.

'스파이더맨' 토비 맥과이어가 주연으로 나온 '플레전트빌'(1998)의 설정도 흥미롭다.

주인공이 빨려들어간 TV 시트콤 속 마을인 플레전트빌(Pleasantville)은 욕망도 분노도 슬픔도 없는 질서정연하고 모든 것이 흑백인 유토피아이다.

그러나 이곳에선 일탈(예컨대 사랑,욕망 등)한 사람들의 피부가 흑백에서 컬러로 변한다.

질서정연한 유토피아의 흑백 인간과,이런 생활을 거부하는 컬러 인간 간에 첨예한 대립을 겪게 된다.

마이클 베이 감독의 '아일랜드'(2005)는 자마친의 反유토피아 소설 '우리들'과 비슷한 설정이다.

생태적 재앙으로 일부만 살아남은 21세기 중반,부족한 것이 없지만 빈틈없는 통제 속에서 행복하다고 여기며 살고 있다.

이들의 희망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오염되지 않은 유토피아인 아일랜드로 뽑혀가는 것.

하지만 아일랜드의 실상은 복제인간의 장기를 적출하는 병원일 뿐이고,이들은 실제로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복제인간일 뿐이었다.

이 밖에 '가타카''이퀴블리엄''마이너러티 리포트'나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같은 영화들에서도 유토피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